-
-
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퀴즈쇼』(김영하 , 문학동네 , 2007)
김영하 씨의 『퀴즈쇼』를 읽고 혹시나 해설가들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서 금단의 열매인 - 나는 해설을 잘 읽지 않는다. 글맛만 버린다는 편견을 서른 세 해째 정성스럽게 기르고 있다. - 해설을 읽어보았다. ‘퀴즈쇼’가 성장소설이라고? 알 수 없는 말들이 가득하고 생경한 이름과 이론에서 불려나온 낱말들이 불려나와 사역(使役)했다. 던적스러운 일이다.
사실 김영하 씨의 말대로 컴퓨터 세대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만하긴 했다. 컴퓨터 피씨 통신 , 인터넷 카페 채팅을 한 번이라도 해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퀴즈쇼』를 읽을 때 모한한 동질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김영하 식의 시니컬한 송가(頌歌)다. 2007년에 출간되었던 『퀴즈쇼』는 2년이 지난 이후에도 유효하다. 유효하다 못해 발효되어 청국장처럼 진하고 강렬하기까지 하다.
민수는 외할머니인 최여사가 죽으면서 가정이라는 최소의 울타리에서도 내쳐진다. - 나는 사실 민수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 외할머니가 어민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기본 단위에서 내쳐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 유일한 보금자리마저 곰보빵 아저씨에게 최여사의 빛으로 넘겨버리고 기거할 곳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이 대목에서 내가 떠 올리는 것은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의 주인공이다. 책으로 침대를 만들어 생활하다가 책이 생활비의 대용으로 사용되는 장면을 기억하는데 , 『퀴즈쇼』에서는 최여사의 책들을 팔아 고시원 비를 마련한다.
현실에서 유기당하고 스스로 유폐되면서 , 현실이 아닌 현실 혹은 가상의 세계에서 ‘벽장 속의 요정’과 만나고 가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도 연인의 관계로 발전 된다. 벽장 속의 요정이 벽장을 나오면서 서지원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롱맨과 벽장 속의 요정이 아니라 민수와 지원이 되는 순간이다.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순간에 환상과도 같은 퀴즈 회사에 취직을 하고 그곳에서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 퀴즈를 풀면서 돈을 번다. 내쳐진 세계 속에서 비루하고 남루하고 남세스러운 삶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자기의 능력만 되면 돈을 벌 수 있는 세계다. 어떻게 보면 유토피아적 세계처럼 인식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은 단절되었다. 또한 퀴즈가 퀴즈 본연의 것이 아닌 도박으로 변질된 것을 알 수 있다 가상은 명멸한다. 명멸하다가 적막으로 떨어진다. 회사와 소석된 사람들의 존재가 희미해진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꿈같은 일이 벌어진다. 컴퓨터를 매개로 해서 알게 된 것들은 적막 속으로 사라져 갔다. 겨우 남은 것이라고는 지원 하나 뿐이다. 지원과의 관계도 영원할 것인지는 도무지 확신할 수 없다.
“잘 될 거야 모두 잘 될 거야”라는 지원의 말로 소설은 닫힌다. 대책 없는 긍정의 말이다. 무책인한 언사는 허공으로 심연으로 흩어진다. 젊은이들은 알 수 없는 오늘을 알며 불확실한 내일에 기대어 꿈꾼다. 오늘도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