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3
이중환 지음, 허경진 옮김 / 서해문집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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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는다. 구획된 도로는 차들이 달린다. 차가 멈추면 사람이 길을 건너고 차가 지나면 사람은 멈추다. 큰 길 양 쪽으로는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아파트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 마을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이 아파트에 모여 산다. 아파트가 있는 곳이면 사람들이 모이고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살기 좋은 곳이 된다. 도시에서 수평인 마을은 없어지고 수직인 마을만이 존재한다. 언제 아래로 침강할지 두렵다. 함께 사는 마을은 없어지고 , 사람들을 짓누르는 마을만 있다. 사람이 편안히 한 평생 살만한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택리지>를 읽었다. 이중환이 쓴 글이다. 사화 때문에 관직에서 멀어지고 전국을 유랑하고 쓴 <택리지>는 사대부가 살만한 곳을 찾아내기를 바라면서 쓴 글이다. 중환은 30대 이후에 전국을 떠돌다 60이 넘어서야 신원이 회복된다. 늙음 , 죽음 앞에서 신원이 회복되는 것은 늦은 감이 있다. 이중환이 품었던 풍운의 꿈들은 이미 식어 그 자취조차도 찾을 수 없다. 신원이 회복되고 3년이 지난 후에 이중환은 죽었다. 죽어서 <택리지>가 세상에 남았다.




  사대부가 살만한 곳이 없다는 이유로 조선 영조 시대를 살았던 < 택리지 >의 저자 이중환은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이 살만한 마을 ,사대부가 살만한 마을을 찾아 다녔다. 진정 사대부가 살만한 곳은 어디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택리지>는 채워져 있다. ‘팔도총론(八道總論)’편에서는 조선 팔도의 개략적인 지세와 물산을 기록했다.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 복거(卜居)의 기본 조건인 ‘지리(地理)’‘생리(生理)’ ‘인심(人心)’ ‘산수(山水)’에 대해서 기록했다.




‘필도총론(筆道總論)’에서 이중환의 서술은 군더더기가 없다. 산맥을 따라 내리 달리다가 들판을 만나면 평평하게 내달렸다. 때로는 치솟았다가 주저앉았다. ‘평안도’에서 ‘경기도’까지 내달리는 발걸음은 떠돌아다니는 자의 마음과 같이 무겁지도 않고 분분하지도 않게 보이는 것을 보고 보이는 것을 서술하였다. 한 가지 눈여겨 볼만한 것은 쌀의 생산뿐만 아니라 목화의 재배가 가능한 지역인지를 확인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죽고 책만 남았다. 그의 언어는 산맥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고 산맥이 이어지고 끊어짐과 함께 했다. 문장은 길 위를 유랑해야하는 나그네의 봇짐처럼 단촐했다. 단촐해서 고졸했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읽으면서 나는 불현듯 난세를 배에 의지해 바다에서 보내야 했던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 나타난 이순신의 문체를 생각했다. ‘장독을 묻었다.’ ‘장수를 베었다’라고만 적어서 , 무미하고 건조한 문장 - 지금 내 곁에 <난중일기>가 없어 명징하게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깝다  내 방이 그립다..- 이지만 과하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은 기술(記述)이었다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는 군더더기 없음을 버리고 자신의 생각을 문장 속에 풀어낸다. 문장이 조금 탁해졌다. 가장 치명적인 탁함은 ‘인심’을 설명하는 단락에서 총론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고 ‘인심’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넓게 생각해도 ‘사람의 마음’과 ‘당쟁’은 서로 연결될 수 없다




  이중환은 사대부가 살만한 곳을 찾아 나섰지만 사대부가 사는 곳치고 인심이 고약하지 않은 곳은 없다. 당파를 만들어 죄 없는 자를 거둬들이고 권세를 부려 평민을 침해한다. 자신의 행실도 단속하지 못하지만 , 남이 자기를 노하는 것은 미워하고 모두 한 지방의 패권 잡기를 좋아한다. (다른 당파와는)한 고장에 함께 살지 못하여 , 마을끼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헐뜯는다.고 쓴다. 팔도에 사대부가 살만한 장소는 몇몇 보이지만 , 사대부가 살면 인심이 고약해져서 , 사대붑 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조선 팔도 어디에도 사대부가 살만한 곳은 없다. 사대부이고자 했던 이중환이 편히 정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중환은 오랫동안 정주하지 못하고 떠돌았다. 떠돌다가 63세에 죽었다. 그는 죽어서 택리지(擇里志)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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