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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날개 속의 김훈은 검은 머리의 젊은 장년이다. <풍경과 상처>는 김훈의 그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다. 풍경은 모든 상처의 풍경일 뿐이라고 쓴다. 풍경은 기록으로 남고 그 기록은 내면에서 재배열되어 글이 된다. 풍경을 기록하는 일은 자신의 생각에 상처를 내어 각인 시키는 일은 고되다
‘나는 말되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다 . 말할 수 있는 있는 것을 겨우겨우 말하기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한다.“고 쓴다.<풍경과 상처>의 글들은 김훈이 말할 수 있는 것만 쓴다. 김훈이 말할 수 있는 것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절대 말되어질 수 없는 것 같은 것들도 김훈의 문장과 의미 안에서는 살아나 말되어진다. 김훈이란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범위는 다르다. 슬픈 일이다.
<풍경과 상처> 기행 산문집이다. 기행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기행은 한 곳 한 곳 멈추어 서서 풍경을 세밀하고 정밀하게 살핀다.멈추어서서 바라보는 것은 유랑하는 자의 시선이 아니라 정주하는 자의 시선이다. 멈추어서 바라보는 시선은 그 이면을 보고 있다. 이면에 대한 서사는 곡진하다. 메마르다 메마른 문장들이 모여들어 군락을 이루었다. 군락을 이룬 것들은 메마른 것을 버리고 육즙 가득한 문장들이 되어서 글을 읽는 사람에게 풍경이 아닌 상처를 보게 했고 그 상처에 드러난 깊이는 때에 따라 얕았고 때에 따라 깊었다. , 때로는 순간을 기록하기도 했고 때로는 영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문장은 값싸게 가볍지도 않았다. 문장은 값비싸게 치장되어 있지도 않다.
기행을 하며 쓴 글들 속에 시와 소설에 대한 김훈이 생각이 들어있다. 기행 산문이기도 하고 비평집이기도 하다. 풍경은 소설과 시에 잇닿아 있기도 했고 소설과 시가 풍경에 잇닿아 있기도 했다. 언젠가 읽었던 <내가 읽었던 책과 세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읽었던 책과 세상>에서 김훈이 소설과 시에 대해서 서술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풍경과 문학이 만났을 때 문학과 풍경은 개별자였으나 서로에게 감응했다. 감응은 새로운 감성을 불러 일으키고 전혀 새로운 것이 되었다. 말되어지 지지 못하는 것을 말을 하려니 힘들고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