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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좋아하는 ㅣ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평점 :
김사인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은 멀리 있는 지인이 보내 준 책이다. 자신이 읽어봤는데 제법 읽을만 했다는 말을 함께 전했다. 소설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소설보다는 더 극명한 세계가 있는 것이 시'판'이다. 시의 감성은 독자들의 개인성을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김사인을 읽으면서 - 소설가의 글을 읽는 것은 소설가가 만들어 낸 가공의 세계를 향유하는 것이지만 시는 이상하게도 시인이 말하는 세계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이 보인다. 시인과 소설가의 극명한 차이점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것은 그 시인을 읽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 거대한 풍경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임우기 씨가 '집없는 박수의 시'라는 소릴르 걸어놓았다. 시의 행간과 행간을 걸어보면 유랑하며 정주하지 못하는 시인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이러한 모습이 신파스럽지는 않다. 치우치지 않음이라는 중도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
김사인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먼 곳을 바라보고 이상향을 노래하는 것은 다른 이의 몫이다. 김사인의 시선은 모든 것에 걸쳐 있지만 - 그는 주변에 펼쳐진 풍경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풍경의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 거대한 것을 말하거나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시인의 눈에는 보이는 거대한 것을 이미 보는 눈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보여주려해도 보지 못하는 탓이다 '새끼발가락과 마주치'는 아주 작은 일에서 그 작은 지나침이 가지고 있는 극대의 것을 이야기한다.
김사인을 읽으면서 나중에 글을 쓰면서 인용하려고 붙여둔 포스트 잇을 본다. 어떤 것은 시 제목 옆에 붙어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어느 시 구절에 붙어 있기도 하다. 제각기 붙여둔 것들이 상처처럼 보인다. 순정한 김사인의 마음을 난도질하는 것이 나의 헛된 손들이다. 헛된 생각들이다. 그저 시는 읽고 느끼면 그 뿐인 것을 어찌하여 나는 부질없음을 알지도 못한 채 그의 언어들을 박제하려고 했던 것인지 부끄럽다. 시인의 시에 붙이는 수사들은 아름다운 보석과 같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처럼 남이 짊어지게 한 십자가와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한 구절 인용해보도록 하자
"자 한 잔 / 눈물겨운 것이 어디 술뿐일까만 / 그래도 한 잔 "
비가 올 것 같기만 한 날에는 그저 술 한 잔 하는 것이다. 그 술잔에 가득한 것이 눈물일 뿐이라도 술 한 잔 마시고 그 눈물이 기억하고 있는 삼라만상의 이치를 몸 속에 사려 넣어 두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별 다른 것 있을까? 그저 몸속에 사려넣고 삭이는 것일 뿐이다. 세상사 처음에는 상처처럼 부어오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아 평온한 상처처럼 다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