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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최영미의 글을 또 읽는다.<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라는 책 제명은 그 단어의 조합에서부터 인간의 내면을 엿보고싶은 관음의 심리를 자극한다. 비밀스럽게 드러내지 않은 것을 아무도 모르게 본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기쁨이 솟구치게 한다.
꽤 오랜 시간 일기를 써 왔다고 밝힌 최영미 씨는 일기가 자신의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언사만으로도 세인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기에는 적당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은 내용이 일기가 아니라 책의 제목에 일기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우연히 내 일기를 ......>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부분은 최근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고 , 또 한 부분은 예전에 발표된 책의 글과 새로 뽑아 엮은 글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우연히 내 일기를>을 읽으면서 가장 허망했던 것은 산문집 안에는 일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편의 글들마다 일상을 담고 있었지만 이 글들은 최영미 씨의 일기장에 쓰인 글들이 아니라 어느 지면을 통해 발표된 칼럼 원고들이다. - 이 것은 글의 말미에 밝혀둔 지면과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다. - 세상에 발표된 원고들을 우리가 일기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일기는 그대로 원고일 뿐이다. 그 순간 글에서 자신은 사라지고 그저 읽히기 위해 생산된 글이 되고 만다. 일기의 내밀한 심리 , 심리의 속내를 기대한 내게는 매우 아쉽다. 공선옥 씨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 어쩌면 나는 최영미 시인에게 소설가보다는 좀 더 풍성한 내면을 바랬지도 모르겠다. 최영미씨는 보기 좋게 그 기대를 무너뜨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건조한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에 가까운 느낌들이다.
속내를 보지는 못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 최영미가 어떤 식으로 생활을 하는지 시인이며 문학 작가라는 신화를 벗겨낸 인간에 대한 탐사는 가능하긴 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최영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있다. 축구를 매우 좋아하고 조카라면 두말없이 달려가는 30~40대의 시인 최영미를 만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돈밖에 모르는 천민이라고 선언한다. 살아보고 나서야 말할 수 있는 저 단호함이 문장과 삶 속에 그대로 베어 있는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