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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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앉아 외부 출입을 자제하며 지낸지 이 주가 지나가고 있다. 특별히 볼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지만 ,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은 그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드는 만성적 우울 때문이었다. 혹자는 가을을 타는 것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이불 속에서 번데기처럼 꿈적도 하기 싫은 날들이 계속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밥먹는 것과 보는 것 뿐이다. 보는 것은 능동성이 필요없는 수동성이 강한 것들 밖에 없다. 틀어두기만 하면 보는 사람의 생각은 아랑곳 없이 짜여진 각본대로 정해진 대사를 읊어주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수동성과 수동성에 수반되는 시간의 흐름은 정비례한다.

 

찬바람머리의 햇살은 사람을 밖에서 한 번쯤 걸어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따갑지 않고 간질거릴 것 같은 햇살은 생글거리기만 해서 문득 밖으로 나가 짧은 시간이라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적당히 익은 바다와 많은 시간을 견뎌내어 이제는 한산한 거리가 나를 그대로 받아줄 것만 같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할 때는 떠난자의 기록을 읽어봄으로써 자기를 위로하는 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시대의 우울>에서 유럽의 미술관을 돌며 유럽의 화가들을 이야기했던 최영미 씨의 최근작 <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를 읽는다. 길 위에서 길을 잃은 나는 최영미 씨의 말에 동의한다.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두려움 뒤로 밀려드는 긴장감을 알지 못한다.

 

'예전에는 고생이 고생스럽지 않았는데 어느덧 나도 중년이라 체력이 딸렸다. 가방의 무게를 더느라 하나 둘 짐을 버'린다고 고백을 한 최영미 씨는 여행의 목적을 '나를 재생산하는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유라고 말한다. 최영미 씨에게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탈피이며 도피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시 일상적인 노동 속에서 살기 위한 개인이 만들어낸 믿음이다

 

문학과 예술의 언저리에 대한 고백은  '예술을 알면 문학을 좋아하면 인생이 복잡해진다. 좋게 말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보통 사람들은 밖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미추를 논하는데 예술가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사람들이거든 자신이 남다른 생을 살아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드리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래서 위대한 인생이 위대한 예술을 낳는다는 예술가는 모두 불행하다는 신화가 성립하지" 에서 여과없이 드러난다.

 

이번 책은 지나간 것에 대한 기억이다. 이미 출간되었으나 희미해진 기억들을 다시 선정하고 재배열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조밀하고 아련하기만 한데 안타까운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최영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매래의 최영미의 흔적도 찾아지지 않는다. 조각들 과거의 조각들을 꿰어만든 누더기 같은 글들은 개인의 과거를 기억하기엔는 더할나위 없이 좋을지 모르지만 그 누더기는 타인에게 그저 더러워지고 헤진 옷, 더이상은 입지 못할 옷일 뿐이란 걸 알았어야 한다. 현재성을 가지지 못하는 과거는 그저 동물원에서 늙어가는 동물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서른 잔치를 끝냈을 때 그 날카로움과 시대의 우울을 흥얼거리던 최영미의 글은 어디로 갔을까? 도착하지 않은 삶처럼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을 잊은 것일까? 돌아오는 길을 잊을 여행이라면 길을 잃을 필요는 없다. 길을 잊기 위해서 여행을 할 필요도 없다. 길 위에서 잠시 쉬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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