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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안녕들 하 신지 모르겠습니다. 입만 살아서 뭐라고 뭐라고 말만 많은 유랑인입니다. 잘들 지내셨는지요. 찔레꽃머리도 아닌데 날은 이리도 더운지요. 한여름이 되면 정말 어찌 살까 싶습니다. 저는 보통 방에 틀어박혀서 이런 저런 글들을 읽으면서 보내는데 말입니다. 본격적인 읽기에 앞서 준비 운동 삼아 읽어본 - 무척이나 궁생한 변명 같습니다. 사실 변명 맞습니다. - 책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웃다>인데 말입니다. 제목이 일단은 저를 끌었지요. 뭔가 끌리는게 있으니 읽은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좀 웃어 볼까하고 읽어보았더랬지요. 요즘 유랑인 스스로든 주위든 웃을 일이 없었답니다. 그러면 최소한 유랑인은 유랑인을 위해 웃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뭐 흔히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지 모른다고 하잖아요. 칼칼칼
정한아의 소설집입니다. 소설집이니 당연히 소설들이 묶여져 나왔습니다. 8편의 글들을 모았어요. 표제작인 <나를 위해 웃다>를 시작으로 해서 <아프리카> <첼로 농장> <마테의 맛> <의자> < 댄스댄스> <천막에서> <휴일의 음악>까지인데 쉽게 읽을 수 있는 글들입니다. 잠시 카페 테라스에 앉아서 아메리카노보다는 카라멜 마끼아또나 카페 모카를 한 잔 하면서 눈이 아리지 않은 햇살 한 줌 타서 읽으면 좋을 글들인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라도 ~ 것 같아요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중인데 말입니다.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는 무득 튀어나오는 언술이랍니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유랑인이 오독한 것이겠거니 생각하시라는 것이기에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는 비겁함이기도 합니다. )
각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차미령의 해설에 잘 나와 있으니 유랑인이 가타부타 할 말이 없습니다. 이야기들을 부수고 그 편린들을 작위적 -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그러하겠지만 그 논리를 뒷받침 할 수 없는 문장들은 가차없이 절제되고 필요한 것들만 가져와서 이어붙이니 작위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못된 습관입니다. - 으로 배열해서 설명을 해두었으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유랑인은 해설 읽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꼭 제가 잘 못 읽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야기는 읽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유랑인의 생각이거든요. 그 이야기 속에 하고 싶은 말들을 숨겨두는 것은 글쟁이들이 할 몫이고 말입니다. 그것을 찾으면 다행인 것이고 다른 길로 빠져도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글들을 읽고 무엇인가 생각했던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 잡스러운 글을 쓰고 있는 이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덟 편의 글 중에 여성 주인공이 여섯 편이고 한 편은 성별을 알 수 없고 한 편은 남자 주인공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니구요. 정한아의 나이대에 쑬 수 있는 감성들을 가지고 썼다고 말하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정한아의 분신들 혹은 편린들 조금씩은 다 투영되어 있는 듯 합니다.
위안하는 글쓰기 , 20대를 살고있음을 견디는 글쓰기를 한 정한아의 고백은 나이가 들고 시간의 영속성 앞에서 좀 더 영글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랑인이 읽기에 20대의 정한아가 풀어낸 이야기는 이미지들을 스케치하는 느낌이었답니다. 이제 30대의 정한아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간의 중력성에 도움으로 정한아의 이야기는 채색이 된 그림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길 바라구요. 소설하기는 지난한 작업이니까요. 일생을 걸고 해 나가는거지요. 그 끝은 봐야되지 않을까 합니다.
칼칼칼 완유세설령에서 유랑인 잡스럽게 씁니다.
09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