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칼 (유랑인 웃는 소리) 잘들 지내셨지요. 갈바람의 흔적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바람에서 사람들의 한숨보다 더 무거워진 바람만이 사람의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있는 요즈음입니다만 다들 지체평강하시고 만수무강하시고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열심히 사람농사 잘 짖고 계시리라고 유랑인은 믿습니다만 혹여나 노파심으로다가 인사를 대신해서 말입니다. 몇 마디 해봅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그다지 제 시선을 끌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 부제를 살펴보면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라고 되어 있고 말입니다. 『시학』이라는 것을 접목하여 영화와 이야기한다고 했더란 말입니다. 『시학』이 저의 시선을 잡아 끈 겁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직도 읽어보지 못한 『장미의 이름』에서 금서의 제목이 『시학』이었다는 스포일러 비슷한 풍문을 들었던 기억과 대학을 다녔을 적에 교양 수업으로다가 『시학』을 한 학기 들었던 기억이 겹칩니다. 그 중에서도 학교에서 배웠던 『시학』이 기억이 나긴하는데 몇 안되는 낱말의 편린들만이 둥둥 떠다닙니다. 한 번 뜬구룸 잡듯 잡아보지요. 카타르시스 , 비극 , 희극 플폿 정도가 기억에 납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고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말입니다. 발췌된 문장들을 보니 이런 문장이 있었나하는 의구심까지 들기 시작했거든요.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뭐 간단히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 아저씨가 쓰신 몇 줄 안되고 얄팍한 『시학』에 다 들어있고 그 시학에서 비롯되었고 약간의 변형이 되었지만 현대의 영화 속에서 여전히 유효한 힘을 알게 모르게 발휘한다는 이야깁니다. 자 그럼 여기서 뭐 스토리텔리이 뭐냐구요 그건 네이버 군이나 네이버 언니에게 물어보시면 되고요. 대충 시나리와라고 생각하시면 된다는 거지요 뭘 즉 글이지만 눈에 보여지기 위해서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여기 이 책에서는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 강의실에서 함께 읽던 『시학』이 생각났던 이유는 말입니다. 이 책이 딱 대학교재의 느낌과도 같았거든요 마이클 아저씨가 학생을 가르치나봐요. 수업시간에 강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말투입니다. 친근감도 있는데 조심해야 되죠 독자는 친한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너랑 친했었나라고 물어오는 경우가 간혹 있으니까 말이에요. 시학과 영화니까 말이에요 고전 영화를 제시하고 그 속에서 시학이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 살아있는지를 설명을 해주는데요. 이럴 때 유랑인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유랑인이 사는 곳 영화들을 예로 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하지만 뭐 저자 마이클 아저씨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니까요. 마이클 보고 한국어 공부 하라고 할 순 없지 않겠어요. 어서 빨리 마이클 아저씨처럼 설명할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등장하고우리 영화롤 이야기하는 날이 오길 바래보는데요. 사실은 유랑인이 본 영화라고는 세 편 밖에 없어서요. 좀 알아듣기가 살작 귀가 먹어지는 느낌이었지요.이럴 때 느껴지는 괴리감과 간극은 아흐 견딜 수가 없어요. 시학을 통달을 한다고 해서 시나리오 잘 써질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요 그 때 마이클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합니다. '시학은 영원불멸의 시나리오 쓰기에 관한 비경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말입니다. 맞아요 기본이에요 기본 발전은 뭐 스토리텔러를 꿈꾸는 자의 몫이에요 그리고 이 말도 하시는에요 '당신의 영호능로 글을 써라' 맞아요 올인하는 겁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거에요 노력하지도 않고 좋은 결과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에요 근데 말입니디. 영화의 스토리텔러들의 글들이 말이에요 시학의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닐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마이클 아저씨 시나리오가 잘 된 것들에서 시학의 모티브를 끌어와서 포장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어떻게 생각하냐구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전되는 거니까요. 항상 알게 모르게 말입니다 . 후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긴합니다. 여러분들은 읽어보고 판단해보세요 닭이 먼저 일까요? 달걀이 먼저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