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에 대한 풍문을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독서가 들 사이에 필독서이기도 하면서 금독서이가도 하다던 책이었습니다. 저 또한 약간의 두려움과 기대가 항상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역시 꺼려한다는 책을 읽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입니다.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에 대해서 듣기만 들었을 뿐 아니죠 정확하게 이야기해보면 소설에 대해서 들은 것이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가 결국엔 자살을 했다는 것과 연관되어 회자된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소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무서워서 읽지 못했다는 지인과 읽으면서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지인들의 다양한 반응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 요조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지요. 스스로 쓴 수기의 형태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그리고 한 소설가의 윤색이 더해지죠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구효서의 『비밀의 문』이라는 책을 읽어보셨나요 구성이 매우 흡사합니다. 소설가의 소설 속에 다른 소설이 들어있는 - 여기서는 다른 일기입니다만 - 형식이었습니다. 어린시절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어있었습니다. 대화체를 사용하니까 말입니다. 독자와 이야기꾼의 거리가 살뽀보를 하는 연인만큼이나 가깝습니다. 하지원의 황진이를 기억하십니까 장근석이었던가요 하지원이었던가요 '오즉여 여즉오"를 읊조리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말하는 사람은 없어지고 , 읽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요조에게 다가가지 마세요 죽고싶음을 앓고 있는 인물이니까요. 파멸되어가는 인물이니까요. 스스로 처해진 파멸의 종지부를 향해 달려가야하니까요 요조르를 보내세요 독자들은 점잖은 양반인척 느긋하게 한 발 물러서서 걷는 겁니다. 요조의 길을 말입니다. 인간에게도 실격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 좀 우습기는 합니다만 그 우스움의 문제는 아마도 누가 실격을 판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있지 싶습니다. 하느님이요 하느님 바쁘십니다. 수많은 유정들의 실격을 판정하고 있을 시간이 없지 않겠습니까 해도 제 시간에 걸어두어야 하고 달도 제시간에 띄워야 하고 지구도 24시간 돌려주셔야 되고 계절도 바꿔주셔야되고 말입니다. 피고낳게 만들면 좋을게 없어요 하느님 파업하시면 가끔 쓰나미에 기상이변 일어납니다. 아주 그냥 죽여줘요 그러니 인간 실격을 판정할 만한 존재가 없다고 생각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인간 실격을 판정할 수는 없다고해도 자아 실격을 판정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지요. 스스로 처해진 앓음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겁니다. 실격이라고 생각되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응당 실격된 제품은 쓰지 못하지 않스닏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요조는 그 스스로 앓아온 문제에 대해서 작 풀어나가고 있어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인데요 저기 프랑스의 프랑스와즈 사강이었던가요? 법정에서 한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었지요 - 시간이 흘러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제목으로 김영하 씨가 이야기를 출간하시기도 한 그 대목이기도 합니다. - 스스로 점점 아래로 향해가는 요조의 모습을 보면 딱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죽었단 말이에요 요조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말씀이에요 아참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에요. 다시 한 번 오즉여 여즉오를 외쳐야 할 모양이에요. 연인과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군요. 요조도 기어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완성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지금은 요조 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 작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중이니까 말이에요. 작가들 중에 자살한 사람들 생각보다 많다고 하지만 제가 아는 사람은 한 사람 정도 입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를 쓴 로맹가리 뿐이지요. 책을 읽어봤더니 죽을만 하더구뇽 기발한 이야기들을 생각해내고 써내려면 그 댓가로 죽음을 선물 받을 수 있는 것은 작가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는데 다자이 오사무하고는 또 다른 경우라고 생각해요 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잊을 뻔 했군요 『인간실격』이라는 책 안에는 『인간 실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소』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아주 짧은 소설인데 말입니다. 꼭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유다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유다의 심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찬 심리가 아주 잘 표현되어있어요 아주 잘 된 소설인 것 같은데 당시에는 한 소리 들었을 것 같은데요 왜 유다는 영원한 배신자의 대명사 스승을 팔아먹은 놈이리는 이미지로 전해져 내려오니까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 종교신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지는군요. 유다 유다라 그렇습니다.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직소』가 예수가 잡혀가기 전의 유다의 심리 상태를 나타낸 것이라면 유다가 예수를 은 서른냥에 넘기고 난 이후의 심리 상태를 형상화한 소설이 있었더랬어요 박상륭이 쓴 『아겔다마』가 그것인데요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좋았는데 사실 다른 분들의 반응까지는 예상할 수 없어요. 개인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말을 요즘 제 생활의 근간으로 삼고 생활하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