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1 - 일타 큰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작가정신에서 <인연>이라는 이름을 달고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정찬주 작가가 일타 스님의 일대기를 소설적 감수성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소설적 감수성으로 재구성했다는 이야기는 일타스님의 일생을 함께하지 못했으며 그 당시 심리상태를 일타스님이 아니므로 알 수 없다는 전기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상상력의 개입을 이야기한다. 전기문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스님의 이야기다. 선승의 이야기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타인의 삶을 봐야할 대 우리는 큰 숨 한 번 쉬고 읽어야 한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에 대해서 익히 들어 알고있거나 한 번 쯤 친견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 등장인물에 관심과 존경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 그냥 읽어도 좋을 것이지만 사전에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글을 읽게 된다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반인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닌 종교와 관련된 신성과 관련된 부분이 틈입하기 쉬운 분야는 더욱 그렇다. 편향되는 기술은 미혹이다. 덤덤하게 종교인의 일생을 펼쳐내야 하는 것이 작가의 본분이다.

 

    한 종교인의 일대기를 따라 읽는 것은 힘들다. 간간히 눈물도 적셔주고 간간히 목도 막히고 간간히 코끝도 찡해지고 말이다. 감정의 틈입이 많은 책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발심을얻어낼 수 있을까 ?  그렇다면 왜 우리는 발심을 얻으려하는가. 왜 지표를 삼아야 하는가? 삼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표는 삼으라고 삼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찾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개인적 삶이 모두에게 지표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 손가락을 연비했다는 일타의 가족들의 태반 이상이 불가에 귀의한 인물들이다. 결국 환겨이 그러했다는 이야기다. 싹수가 노란집에서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면 험한 말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환경은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을 받아들이는 개인의 재량이 아닐까

 

    인생사 공수레 공수거라하였으나 일타라는 이름을 남기고 한 한 유정과 어떤 인연이 있어 나는 또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 읽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들리는 말에 옷깃이 스치는 데에도 많은 억겁의 시간에 걸린다고 해던데 글로나마 만나는 나는 그 억겁보다는 짧은 시간을 한 세상 일타라는 스님으로 살고간 유정과 인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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