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글을 읽었다. <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굳바이 이상> 이후 세 번 째 글인 <네가 누구든 , 얼마나 외롭든>을 읽었다. 가장 최근 작품이면서 김연수 읽기를 시작했던 이유가 된 책이기도 하다. '유령작가'를읽으면서 조금 당황했었고 '굳바이 이상'을읽으면서 이야기꾼 김연수를 만나게 되었다. '얼마나 외로든'에서는 손으로 톡 건드리면 이야기가 흐드러지게 피어날 마술봉을 가진 마법사 김연수를 만났다 이 마술봉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물건들은 스치기만 해도 자기에게 얽힌 이야기들을주절거리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모양인지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주저리주저리 뱉어내는데 연속성과 상관성이 없어 보이는 무한한이야기의 타래를 풀어놓는다. 각자의 울림없는 이야기들이 일방향적으로 울려퍼진다. 김연수가 가진 마술봉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어쩌면 이 순간부터인지도 모른다. 수다스러워 보이는 이야기들을 시간성과 연관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배열하고 직조한다. 시간성과 연관성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만들어내는 옷감 안에서 독자들은 그 옭죄임을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 마술봉에는 인정이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치명적으로 독자의 목을 죄는데 불나방처럼 독자들은 그 독배를 향해 뛰어갈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만든다. 이야기는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다. 나신이 드러난 할아버지에게 받은 유물과도 같은 사진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데 나와 정민은 할아버지와 정민의 삼촌 이야기를 서로에게 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흐ㅡ러지게 피어나고 뒤에서 '그 누구의 슬픔'도 될 수 없었던 사나이의 이야기까지 거미줄처럼 얽히기 시작한다.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었던 일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얽히기 시작하면서 옷감을 만들어낸다. 서서히 드러나는 넓은 면적의 옷감에는 빈틈이 없다. 이야기가 진행된 후반에는 '그 누구의 슬픔'도 될 수 없는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할아버지와 정민 삼촌이라는 씨줄과 날줄이 그리고 그 누구의 슬픔도 될 수 없었던 사나이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한 인간이 겪어내야 했던 시대상으로 전이된다. 한 인간이 겪어야했지만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대표상에 대한 이야기로 집약되어 육면 큐브에 혹은 직조가 된 옷감에 그림을 퍼즐처럼 맞춰나간다. 한 인간이었으면서도 두 인간의 삶을 살아가기를 강요당했던 시대에서 모두이면서 하나이고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니었던 한 인간의 이야기는 개인이 겪는 문제를 넘어 사회가 겪어야 했던 대리적 희생제의의 기능도 함께 한다. 인성이 무너지고 다시 새로운 인성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살아가야 했던 한 사내의 이야기가 후반을 차지한다.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전체의 이야기로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진공엠프로 소리를 증폭시키는 것처럼 시대를 증폭시켰다고 해도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