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황진이 - 주석판 - 역사와 소설의 포옹
김탁환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신화를 벗은 인간 황진이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김탁환의 <나 , 황진이>는 대중판과 주석판 두 가지 형태로 출간되었다. 대중판은 김탁환의 글과 더불어 그림이 무장과 문장 사이에 배치되어 문자가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어 - 문자의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 그림을 통해 상상으로 재현해내는 -외부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 주석판은 김탁환이 써 낸 문장들의 속살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볼 수 있어서 내부로 집적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두 가지 책 중 이번에 읽은 것은 주석판이다. 김탁환이 창조한 황진이의 속살을 들여다 볼 대이다.

 

<나 황진이 > (주석판) - 이하 <나 황진이> - 의 첫 장을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주석판임을 상기시키는 각주 번호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요철처럼 솟아나있다. 흔히 주석이라고 하면 글을 쓰는데 도움을 받은 책의 제목과 페이지 저자등의 간략 서지정보를 기독해두는 것인데 박상륭의 일련의 소설들 - 죽음의 한 연구와 칠조어론 등에서 나타나는 주석들이 이러하며 간간히 박상륭의 사유의 단초들을 볼 수 있다 -의 주석달기에서 <나 황진이>는 벗어나 있다. 아니 그 넘어에 있다고 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럼 그 주석이 어떤 주석인지 보자

 

<나 황진이>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한 번 보기로 하자. 우선 첫 문장이다. '산빛 짙은 창에 기대어 잠을 청한 탓일까요'의 주석에는 이렇게 표시되어있다. 1) 서경덕의 <봄날>을 염두에 둔 듯하다. 성곽  밖이라 속된 일 없고/ 산빛 짙은 창 안에 자니 늦게 일어나네/ 봄 찾아 골짜기 시냇물 가 거닐면서 / 예쁜 꽃가지를 눈에 띄는 대로 꺾어보네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그 위로 아득히 흘러가는 복사꽃잎처럼'의 주석은 34) 이백의 시 <산중문답>을 염두에 둔 듯하다 무슨 생각으로 푸른 산에 사느냐구요/ 글세올시다 웃을 수 밖에요/물 다라 복사꽃잎  아득히 흘러가는데 / 이곳이 딴 세상 속세가 아니리오 그렇다 <나 황진이>의 주석은 책과 저자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소개하고 있다. 주석판이니 주석을 좀 자세히 살펴볼 필요는 있다.

 

처음 살펴볼 것은 주석에 자주 등장하는 "~을 염두에 둔 듯하다'라는 표현이다. <나 , 황진이>의 서사 구조는 황진이가 허태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구술하는 구성이므로 주석이 달린 문장은 황진이의 이야기에 대한 주석이다. 즉 황진이가 '산빛 짙은 창에 기대어 잠을 청한 탓일까요'라고 말한 것은 서경덕의 <봄날>이라는 시를 생각하고서 한 말이다라는 것이 주석의 설명이다. 황진이가 정말로 '산빛 짙은 창에 기대어 잠을 청한 탓일까요'라고 말을 했을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 황진이>는 역사 속에 실존했던 황진이가 자서전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 즉 주석을 단 김탁환에 의해서 만들어진 황진이의 언사라는 점이다. 즉 김탁환이 소설 < 나 황진이>를 쓸 때 만든 문장을 시에서 유추해냈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 주석의 요체다

 

두번 째 살펴볼 것은 주석이 대부분 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로운데 소설의 문장은 소설인 이상 허구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시라는 것은 문집이든 , 어떠한 형태의 책에 남아있는 사실의 기록 -기록으로 존재하는 실재라는 의미이지 표면적 의미의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표면적으로 말하자면 감성과 느낌의 기록이라는 말을 써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 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허구적인 인물의 일대기를 재구성해낸 것이 된다. 김탁환은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역사이자 시이고 소설인  작품을 쓰고자 했다. 시를 기반으로 한 소설의 문장은 시의 편린들이 소설의 문장이 되면서 서정성이 소설의 서사의 근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시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하자 황진이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기생이며 가인(佳人)이다. 이름은 알려졌지만 황진이에 대한 것들은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책이나 역사에 기록된 이야기 즉 정사의 기록보다 "~카더라'식의 야사에 의존해서 재현해 낸 것- 많은 일화들 화담선생과의 일화 벽계수의 일화 기타등등 - 이 대부분이다. 황진이의 삶을 반추하고 되새기는데 있어서 황진이와 연관된 동시대 인물 동시대 역사서들의 문집에 나타나 이야기나 시들 그리고 역사적 기술들을 가지고 재구성한 것이 <나 황진이>에서 김탁환이 하려고 했던 작업이 아닐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신화를 벗고 인간 황진이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쓰인 것이 주석에 등장한 시이며 문집의 기록들이다.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여 황진이를 만들어낸다.이렇게 드러난 황진이는 이제껏 우리가 알던 황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080314 완유세설령에서 유랑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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