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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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라는 작가의 이름은 내공이 중후한 독서가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는 이름이었는데 이제서야 그의 글을 만난다. 프랑스 태생 소설가인데 이번에 만난 그의 책은 소설이 아니라 외면 일기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판된 산문집이다.

 

일기라는 것은 대부분 내부로 침참하고 천착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이미 익숙해져버린 구성의 틀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면을 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뒤집어 외면에 치중하게 만드는 산문집이다. 내면이 자신의 깊은 생각의 사유로 실을 창조해낸다면 외면은 눈에 보이는 것을 기술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과 생각의 촉수를 잘라낸 것이다. 외면일기에서 미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 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그롤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125 페이지)

 

미셸의 외면일기는 참으로 오묘한 힘을 가진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외면의 사실들을 기록하지만 그 사실을 기록한 문장이 독자에게 읽힘으로써 사실이 주관적 감성과 만나 많은 생각의 곁가지들을 싹틔운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의 문장들을 보겠습니다.

 

    내게 알베르 뒤러 같은 죽음을 약속해주는 비장의 통증 , 그 어떤 물건도 잡을 수 없게 만드는 류머티즘 관상동맥 협착을 예고하는견갑골 사이의 격심한 아픔 그리고 나를 콧물바다로 만드는 감기 등을 치르고 나자 이번에는 좌골 신경통이 왼쪽 다리를 따라 허벅지를 고문한다. 내 몸뚱이는 제 역정을 토해내기 위해서 또 무엇을 지어낼지 알 수 없다. 어느 날인가는 결국 죽음을 지어내겠지

 

    확신하거니와 나의 경우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 즉각적인 자살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장님들은 살아 있는 죽음처럼 느껴진다.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견디려거든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사람의 필요불가결한 요소인 죽음 , 충만하고 온전한 삶은 그 스스로의 죽음을 내포한다.


 

이러한 문장들 외에도 건조한 사실들을 말하는 그의 문장에서는 죽음에 대한 마른 공포감이랄까 두려움이랄까 거부감이랄까가 느껴지는데 스스로 죽음을 마주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어 그의 문장들은 읽는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의 가지들을 싹틔우는 봄날의 빗방울과 같다.

 

미셸의 산문을 읽으면서 미셸의 소설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외면일기를 쓴다는 것이 어떤 형식으로 그의 소설에 반영되었을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절제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칼의 노래>로 알려진 김훈의 문체를 닮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사를 절제한 문장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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