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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풍문이 자자했던 책을 이제서야 읽어봤습니다. 비슬산에서 남의 품으로 갈 책이었으나 다시 제 품으로 돌아온 책입니다. 그렇게 인연은 이어가는가 봅니다. 이 글을 잊고 있다가 읽을 계기를 마련해준 대구 모임 지인들과 멀리서 온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한 남자 삼관 씨의 전생애를 관통하고 있는 피팔이의 기록입니다. 피팔이를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 뒷치닥거리를 하고 늙어갑니다. 삼관 씨의 삶의 고비때마다 피팔이는 가진 것이라고는 육신밖에 없었던 삼관 씨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었습니다. 자신의 피를 삼십 오원이라는 금전으로 교환하는 행위는 많고 많은 아버지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닮아있습니다.
처음으로 피팔이를 하던 날 방씨와 근룡이를 만나서 피를 파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강물을 한껏 들이켜서 피를 희석시킨다음 병원에 피를 팔고 삼십 오원을 받아 나왔습니다. 그리고 근룡이와 방씨와 함께 승리반점에서 호기롭게 돼지 간 요리와 따뜻한 황주를 마십니다. 보혈과 혈액순환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 장면은 매우 희화적입니다. 피의 양의 늘리고 희석시키기 위해 물을 방광이 터질 때까지 마시고 어지로운 채로 피를 팔았다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승리반점에서 혈액순환과 보혈 - 피를 생성시키는 작용-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황주와 돼지 간 요리를 먹는 모습은 분명히 미신적이면서 희극적인 부분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웃음은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 횟수가 더해갈 수록 웃음은 눈물이 되어 눈가에 맺히게 되니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삼관씨는 피팔이를 합니다. 이것은 아버지라는 가장의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바뀝니다. 아이들에게 고기라도 먹이기 위해서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아이의 빠른 전근을 위해서 피팔이를 합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피팔이를 하는 장면에서는 눈물겹습니다. 석 달에 한 번으로 정해진 것을 도시를 옮겨가면서 죽을 각오로 피를 팝니다. 점점 쇄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점점 빠지는 힘이 돈이라는 보이는 현물이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몸 밖에 없었던 삼관 씨는 자신의 목숨을 팔아 자신의 아들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편안한 일자리를 위해서도 다시 한 번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해서 감독관에게 담배며 술을 대접합니다. 모든 것이 이 세상의 가장된 자의 무게이겠지요.
삼관 씨는 평생 내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피팔이를 했습니다. 늙어서 아이들이 다 장가갔을 때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돼지 간 요리와 황주가 먹고 싶어서 피를 팝니다. 이것은 평생 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피팔이를 하는 것입니다만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자기처럼 늙은이의 피는 살아 있는 피보다 죽은피가 많아 원하는 사람이 없으니 가구에나 칠해야 한다고...... 사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피를 팔지 못한 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기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니...... 집에 또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325)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피를 팔려고 했는데 그것은 늙었다는 이유로 거부당합니다. 이것은 가장의 자리가 소멸되는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이제 가장으로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남지 않은 삼관씨 발가벗겨진 삼관씨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돌아오는 삼관 씨의 뒷모습은 어땠을까요 분명히 쳐지고 굽은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쓸쓸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삼관 씨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 아니 아버지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화신(化身)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관 씨의 이야기는 어린 청소년 소녀들보다는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을 한 사람들이 읽으면 더욱더 와 닿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를 넘어서 어머니까지 즉 부모님의 모습이겠지요. 부모님의 삶을 지켜본 사람들에게선 눈물이 날지도 모르니 수건을 준비하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