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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전혜린이란 이름은 대학을 다닐 때부터 책에 걸신들린 많은 여자친구들로부터 익히 들어왔다. 불꽃같은 삶을 살고 갔다고 하기도 하고 여성이면 한 번쯤 그녀의 글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던 기억이 새롭다. 불꽃같은 삶을 살고 간 전혜린을 몇 십년의 시공을 초월해 어느 허름한 헌책방에서 조우했다. 그렇게 전혜린과 나는 만났다.
그녀의 에세이를 읽는다. 독일을 그리워하는구나? 독일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향수병보다 한국에서 독일의 뮌헨을 더 그리워하고 슈바빙을 더 그리워하는 묘한 향수병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난다. 어쩌면 독일이 그녀의 고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세 가지 정도이다. 모두 비슷한 의미로 읽힐 수도 있는데 외로움 고독함 그리움이다. 이 세가지를 굳이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면 이렇다. 전혜린은 어디든지 한 곳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신은 다른 곳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속으로 삭히고 드러내지 않아서 외로움과 고독함을 스스로 감내해야 했다. 점점 그리움과 외로움 고독함은 깊어져서 자기 자신을 집어삼킨 블랙홀이 되어버렸다고 쓸 수 있겠다.
그녀의 글들을 읽으면서 최근에 읽은 정혜윤의 글이 떠올랐다. 전혜린과 정혜윤의 글은 엄연히 다르다. 전혜린의 문장은 소녀적 감성이 충만한 낭만으로 가득하 있다고 한다면 정혜윤의 문장은 소녀적 감성이 충만한 낭만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소녀를 넘어선 숙녀의 관능성으로 가득차있다고 표현하면 좋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서로 극명하게 다르지만 그 공통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개인적 의견이지만 전혜린과 정혜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분위기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친구들이 전혜린의 글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흔적을 <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면서 찾을 수 있었다. 전혜린이 숨줄을 놓은 해가 1965년인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실린 여성에 대한 개념을 대하면 작금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패미니즘적 요소가 짖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이 끌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이 진보하고 깨어있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것과 대립을 말하는 것이다. 당대 현실과 개인 사상의 괴리에서 오는 허탈감은 새장에 갇힌 새의 형국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전혜린이라는 한 마리 새는 한반도 한국이라는 좁은 새장에서 길들여지지 않을 야생의 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야생의 새는 아름답다고 새장에 잡아두고 볼 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놓아두고 볼 때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항상 일이 생긴 후에 후회를 한다. 하늘을 날고싶어하는 새에게는 새장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행복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