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진다. 날이 더우면 차 생각이 간절하지 않지만 날이 추워지면 추워지는 것과 비례하여 차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쉬운대로 인스턴트 커피나 녹차 티백이 있으면 한 잔 마시고 우려 마시는 차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녹차도 좋고 백련잎차도 좋고 , 두충차도 좋고 보이차도 좋고 허브차도 좋다. 차라면 다 좋다. 마른 찻잎에서 베어나오는 향을 음미하는 것은. 차라고 하면 이름난 차들만 생각한다. 녹차의 다양한 종류들과 중국차 홍차들이 그 대표적인 차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 곁에는 우리가 마시는 물도 보리차라고 부를만큼 친숙한 것이 차인지도 모르겠다.차의 개념을 조금만 확대해 간다면 물에 우려내어 마실 수 있는 것이 차의 범주가 되지 않을까? <애샹초 차>를 읽어보면 이용성은 차를 만드는 사람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에 맞는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야생초들로 차를 만든다. 어떤 것들은 찌고 , 데치고 , 덖고 해서 차를 만든다. 차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재료를 채취하고 , 씻고 말리고 보관하면 된다. 히긴 말이 쉽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꽃은 하나 하나 따야하고 적당한 시간을 맞추어야 하고 , 말릴 때 채반이나 한지에 붇지 않도록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지키고 서서 뒤적여주어야 한다. 차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는 탄생한다. 아 한송이 차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뎌내야 하는가? 이용성은 차를 만들 때 배웠을까? 그의 글에는 과욕에 대해서 경계하고 공생을 이야기한다. 차를 만들 때 그저 즐기만큼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자연은 벌레들과 함께 하는 밥상과 같아서 재료를 채취할 때 벌레들이나 곤충들이 먼저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재료를 찾는다고 했다.그는 "꽃을 채취하다가 이미 나보다 먼저 다른 곤충들이 그 자리에 앉아 꽃들과 모종의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는중이라면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예의다. 그들을 힘으로 쫓아내면서까지 꽃잎을 채취한다는 차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를 만든다는 건 내가 몸으로 행할 수 있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행위라고 나는 믿는다. 그 사랑의 과정에서 오로지 예쁘고 아름다운 생각과 행동만이 첨가되어야 한다. 욕심과 폭력이 첨가되어서는 제대로 된 차 맛이 나지 않는다(238) 고 말하는데 . 그의 마음에서 차를 한 잔 마셨을 때의 훈훈함과 그 담담한 맛이 베어나온다. 차를 만들고 차를 즐기는 사람은 차를 닮는 모양이다. 이용성은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계절을 마시고 그 재료 자체를 마신다. 차를 마시면서 차가 담고 있던 계절의 기운과 꽃과 잎들이 가지고 있던 녹음을 즐긴다. 한 잔의 차로 계절을 즐긴다는 것 이용성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차 한잔으로 자연과 마주 않기엔느 아직은 그 깜냥이 부족해 보이지만 <야생초 차>를 한 번 혹은 열 번 가량 읽으면 신선의 '도술비기'를 훔쳐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은 자연과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