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의 삶과 욕망
박희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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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다 늦은 저녁 경매사들의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옥션하우스>라는 드라마인데 제목 중에 하나가 <올랭피아>였습니다. 그 때는 마네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고, 왜 '올랭피아'가 논란의 중심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대형 마트가 있는 지하철 역에 갤러리가 있는데 가끔 들러서 전시회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한중일 고류전 開  , 여타의 전시회들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림 전시회를 열심히 찾아다니던 사람이 아니어서 그림이 좋은지 나쁜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지요. 그저 그림을 보고 있으니까 따뜻해지는 그림도 있고 ,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그림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는 미술 -여기서는 좁은 의미로 그림-을 보는 법을 모릅니다. 유선생이던가 뉘던가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매번 그림을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번 되네이던 말입니다.. 뭐 보여야 보지요. 그림은 정지되어 있습니다. 그림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화가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화가들은 이미 고인이니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림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다르고 그 화법이 달라 외국어처럼 서로 교통하고 싶어하지만 할 수 없는 처지가 아니겠습니까? 외국인과 대화를 하려면 통역사가 필요하지요.그렇습니다. 그림과 대화를 하려면 그림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뭐 사람이 없으면 그림 읽어주는 책이라도 있으면 좋겠지요.

 

  한젬마의 <그림 읽어 주는 여자>가 젬마 씨가 좋아하는 그림과 그것에 얽힌 기억들을 술회 한 것이라면 이번 < 명화 속의 삶과 욕망>은 개인이 좋아하는 그림이 아니라 삶과 욕망이라는 인간의 본능에 중점을 두어 그림들이 하는 말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슬라이드를 보여주듯이 큰 사진 두 장을 보여주고 소주제 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큰 그림을 보고 설명을 읽어도 좋고 설명을 먼저 읽고 큰 그림을 읽어도 좋은 구성이라고 해야하겠습니다.

 

  명화들은, 특히 삶과 욕망이라는 중심어로 그림을 모으다보니 거의 누드화입니다. 누드라는 것이 신화의 탈을 뒤집어 쓰고 화가의 의식을 표현해는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누드모델을 누드모델처럼 그릴 때 그 사회에선 난리가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신화 속에 나타난 장면을 그리는 것은 허용되었으나 사실적인 누드는 금기시되던 때의 그림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그런 시대 상황 속에서 <올랭피아>는 매춘부를 모델로 신화가 아닌 사실적인 모습을 그림으로 옮겨서 당대에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총 39 개의 소주제에 두 개의 그림들 78 점들의 그림이 이 책에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화가들을 필두로 해서 생소한 화가들의 그림까지 다양한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화가라고 하면 으레 고흐  , 클림트 , 뭉크 정도 밖에 모르는 제게 다양한 화가들의 이름을 듣고 그들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 책이었습니다. 

 

   그림은 흔히들 본다고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평면 속에 구현된 인물이나 분위기가 하나의 짧은 단편 혹은 엽편 소설같이 서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평면 안에서 무한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을 맞습니다.

 

   문학에서 고전이라 함은 예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전하는 의미가 변질되지 않고 현실에서 재생산되어 읽히는 책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명화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과 화가의 생각을 오롯하게 담아낸 그림들이 현재에도 그 의미를 재생산해내는 것이 명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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