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은희경의 소설집입니다. 은희경 작가는 <새의 선물>을 시작으로 <타인에게 말 걸기> < 아내의 상자> <마이너 리그> 등의 작품을 쓰신 분입니다. <타인에게 말 걸기>는 <새의 선물>이라는 소설 다음으로 출간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이 출간되던 1996년- 아마 1995년에서 시작해서 2000년까지가 아닐까 합니다. - 은 아마 제 기억에 문학계에서든 문화계에서든 쓰나미 같이 포스트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이 밀려오던 시기로 기억됩니다. 그 시대의 글쓰기는 그 전과 후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고 제겐 재간도 없으므로 그저 넘어갈가 하는데 굳이 알고 싶어하는 분이 있으실것 같아 제 나름대로 풍월을 읊어본다면 내밀한 글쓰기라는 말로 마무리 지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은희경 작가가 있습니다.
소설집 < 타인에게 말걸기>는 표제작을 비롯해서 9편의 소설들이 촘촘히 들어 차 있습니다. 그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제가 읽은 것을 풀어내는 것이니까 가타부타하시지 마시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세번째 남자>는 한 여인의 잊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첫사랑으로부터 반지까지 받고 결혼까지 약속했으나 그 남자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버립니다. 남자와 여자는 헤어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불륜의 형태로 관계를 지속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지만 사랑은 계속 되고 있는 것이지요. 허상과도 같과 허울과도 가은 사랑입니다. 반지를 받았던 영추사에서 천도제에 첫사랑 남자의 이름을 영가천도제에 써 태워버림으로써 처음이라는멍애가 벗겨지고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것들도 풀려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 둘 많다의 어법처럼 사랑이란 하나 둘을 지나면 많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없는 많고 많은 사랑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녀의 세번째 남자>에서 가장 마음에 닿는 문장을 꼽으라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아야해"라는 문장과 "지금보다 훨씬 나쁘더라도 지금보다 나은 거야"라는 문장이 아닐까 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게 절절히 다가오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인지하는 저 문장을 만나면서 저는 뜨끔하고 말았습니다. 소설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같더라도 다르게 읽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은 현대의 시대적 트랜드인 '연상녀 연하남'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외부적 화자가 처음에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가 헤어짐의 순간을 다시 두 사람의 심리 상황으로 좁혀 치밀하게 구성했던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어짐이라는 것은 폭풍과 버낵처럼 찾아오는 것입니다. 딱히 헤어짐의 이유가 없더라도 하나의 요인이 거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나비효과'처럼 말입니다. 이 단편의 또 다른 재미는 사멸해버린 그 시대의 유행어들을 살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왕-'일던지 '캡-' 등의 단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소설은 시대를 반영한다던 그 말을 증명하듯이 책 속에 활자로 밖혀 있습니다.
<짐작과 다른 일들> 이 이야기는 한 남자의 죽음과 그의 부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도 일방적인 생각들 얼추 그려려니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맞춰져서 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남자는 술에 취해 이사간 집을 찾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 덕에 그녀는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랑을만나 결혼을 약속하지만 사소한 오해 - 짐작과 다른 일들-을 겪으면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다시 이혼하고 암웨이 외판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남자가 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짐작과 다른 일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순서를 만들고 순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연미와 유미>는 제일 마지막 문장이 이 글의 주제가 아닐까하는데요 '연미는 연미고 유미는 유미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집안에서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언니 연미와 집안에서 빛을 보지 못한 유미의 이야기입니다. 유미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연미는 좋은 대학 졸업하고 선봐서 돈잘버는 사람과 결혼하고 그럭저럭 잘 삽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유미에게 전해진 한 권의 노트를 보면서 유미는 연미가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버립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서 간단히 오렌지를 먹으면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는데 연미는 연미고 유미는 유미다라고 말입니다
< 연미와 유미>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 만나지 않는다고 사랑이 사랑이 사라지는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곁에 있다고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위를 좀 크게 생각하면 됩니다. 같은 집이라거나 같은 장소가 아니라 같은 도시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거라고 이 세상 어딘가에 당신은 살아가고 나는 그 어딘가의 당신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요즘 시대의 사랑 어법으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말입니다. 사실 저 문장은 정신적 불륜에 속하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이란 것이 꼭 보고 눈에 밟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빈처>도 재미있는 상황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일기장을 훔쳐보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그 조각들을 맞춰가는 내용입니다. 일기로 연결된 것들을 보면서 최근 도끼(도스토예쁘스끼)의 책을 읽은 여파인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중편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편지 아홉통으로 이루어진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빈처>에서는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을 이루고 나니 이렇게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화려한 비탄이라도 있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이렇게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인가"
사랑해서 결혼한도고 하고 그 사랑이 식고나면 정으로 산다는 말을 하시는 어른들이 많은데요 정으로 산다는 말은 남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비유어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 사람을사랑하지 않는 일상을 여러분들은 지켜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열쇠>에서는 한 상황이 제시됩니다. 영신이라는 여자가 전 남편의 처를 만나 인터뷰해야하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영신은 긴장하거나 몰입하거나 하면 열쇠를 잃어버리는 기벽이 있스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에 있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마링ㅂ니다. 그러나 결국 상황을 타계할 열쇠를찾아간다는 내용입니다.
<타인에게 말 걸기>는 예전에 잠시 마주쳤던 여자에게서 찾는다는 전화를 받은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한 밤중에 전화를 받는 것이지요 그것도 병원이라고 말입니다. 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겠지요 물론 그년느 일방향적 일방적 소통을 하고 있는 것처럼보입니다. 여기서도 눈에 들어 오는 문장은 있습니다.
"나는 타인이 내 삶에 개입되는 것 못지않게 내가 타인의 삶에 개입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겨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편견을 품게 되었다는 뜻일 터인데 나로서는 내게 편견을 품고 있는 사람의 기대에 따른다는 것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할일이란 그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되도록 빨리 알고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요즘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 이런 기분이 아닐까요 집단은 해체되고 집단 간의 소통은 지리멸렬해지고 오롯하게 자신 즉 개인만이 존재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에서는 타인에게 말 것는 것이 매우 피곤한 일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만 개인을 넘어서 집단을 형성하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동류의식을 가지는 것 정도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에게 말 걸기는 꼭 필요한 작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중주>입니다. 어머니와 딸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말입니다.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표제처럼 이중주입니다. 아버지의 바람기를 참고 견디고 결국에는 떠나보내는 자리에까지 옆을 지키는 어머니 그런 상황 속에서 자란 딸은 남편과의 부로할로 친정 부모님 몰래 이미 이혼을 해버리고 종장에서야 그 사실을 밝힙니다. 그 사이 새로운 남자가 다가오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결혼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여인의 삶의 심플하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은희경의 <타인에게 말 걸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은 바로 사랑이란이름의 판타지를 제거해 놓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녀들이라면 예전부터 아니 유전적으로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발기발기 찢어 놓은 것입니다. 사랑이란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을 은희경의 소설들은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