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보네거트 옹이 11일 돌아가셨다. 그렇게 가는 거지 .

산 자의 책을 읽다가 죽은 자의 책을 읽게 해준 보네거트 옹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렇게 가는 거지

   <제 5 도살장>이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잔인한 학살이 자행되거나 스릴러 물일줄 알았다. 책의 중반을 읽어가면서 이야기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이라 나는 한 번도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다. 전쟁의 참혹함이란 그저 겪은 이들의 입에서 듣는 소리이거나 언론 매체들이 보여주는 전쟁의 긴박한 사오항과 폐허가 된 영상들 뿐이다. 이러한 간접 경험만으로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구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이란 참혹한 것이다. <제 5 도살장>은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것을 전방위적으로 다루지 않고 전체의 비극을 개인의 비극으로 한정시켜 보여준다. 빌리의 상태를 엿보는 우리는 이미 지구인이 아니라 트랄파도어인이다.

   전쟁에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죽음을 애도한다. 인간의 통과의례인 생로병사의 네 단계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긴 것이 사 즉 죽음의 의식이다. 물론 이 것은 전쟁이 일어나는 시기가 아닌 평상시에나 쓰는 말이다. 전쟁 중에는 죽음이란 의미가 희석된다. 그저 흔한 일의 연속이라고 해야할까? 마치 공장에서 일하는 숙련공의 눈을 가지게 ㅗ딘다고 할까? 불량품과 정품을 골라내는 기계적인 눈을 가지게 된다. 이 책에서 죽음은 그저 <그렇게 가는 거지>라는 말로 마무리 된다. 누가 죽든 어떻게 죽든 그렇게 가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의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그저 일상다반사의 것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가는 거지" 라고 말함으로써 무의미하게 만들고 일상적으로 만들어 버린 죽음이란 행위는 읽는 독자가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가 아닐었을까? 어떤 사실에 대해서 세뇌적 작용이 일어나게 되면 그 것에 반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죽음이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생명이 그렇게 가는 거지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죽음이라는 형태를 대량 생산해내는 전쟁에 대해서 생각해보길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빌리는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가했다가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어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고 드라스덴이 폭격을 받은 상황에서 살아남아 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와서 안정적인 생활을 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것일 뿐이다. 빌리는 이제까지 연결되어 연속성과 서사성을 지닌 기억을 갈갈이 찢기는 상처를 받는다. 시간성과 공간성의 상실이다. 빌리는 이것을 시간여행이라고 부르지만 이 것은 기억이 단편적으로 깨어지고 규칙없이 재배열돼서 생기는 정신착란의 다른 이름이다. 글로 만난 빌리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빌리를 만났다면 흥미가 아니라 두려움이 가득할 수 밖에 없다. 현대를 살면서 과거를 살고 과거를 살면서 미래를 사라아야하는 천형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천형을 살도록 한 것은 무엇인가? 빌리가 원래부터 이러한 천형을 받아야 하는 악인이었던가? 그는 그저 검안학교에 열심히 다니고 있던 한 학생일 뿐이었다. 전쟁이란 외부적인 요인이 평온한 개인을 파멸로 몰고 간 것은 아닐까? 이러한 개인적 비극은 작게는 개인의 주위 가족의 비극으로 발전되고 국가 전체 인류 전체의 비극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개인적 비극이 멈추려고 하면 전쟁이라는 기저 요인이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트랄파도어인이 다시 쓴 성서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이 순간 이후 , 누구든 아무 연줄이 없는 부랑자를 괴롭히는 자는 무서운 벌로 다스리겠노라"

글을 읽는 동안 '국가의 거대 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구절이 계속 입가에 맴도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거대 권력 앞에서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있고 말그대로 권력이나 권위를 가진 자들은 전쟁을 피해가지만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인간들은 잔혹한 전쟁과 전쟁이 남기는 지독한 휴유증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내몬 자들은 개인이 겪는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전쟁으로 발생하는 이익이나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할 뿐이다. 정말 이런 자들은 트랄파도어인의 동물원에서 살아갈 가치도 없는 인간들이다. 이러한 인간들이 사라지지 않는한 두 번 째 빌리 , 세 번 째 빌리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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