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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평점 :
하루 일과 중 나를 지나쳐 가는 낯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서로를 지나쳐 가는 수 많은 낯선 '나'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나요? 대부분 눈빛 한번 마주치기도 힘든 상태에서 지나가는 순간 과거와 함께 잊히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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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샌드라 블랜드 사건으로 포문을 열고 같은 사건으로 끝을 맺습니다.
2015년 샌드라 블랜드라는 이름의 여자가 차선 변경시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관에 의해 정차한 후 갈등이 생깁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유치장에서 자살을 하죠.
단순히 몇 줄로 끝나고 말 수 있었던 하나의 사건은 크고 작게 이슈되었던 세계의 여러 사건들과 더불어 심층적이고 설득력 있게 분석함으써 타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까지 간과하고 있었던 새로운 사실도 일깨워주죠. 낯선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세 가지 도구가 그것입니다. 진실기본값, 내면과 태도의 투명성, 특정한 어떤 것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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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그러는 편은 아니지만 직업 특성상 낯선 이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에게도 내가 낯선 이겠죠.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저는 그 사람의 말투에 집중합니다. 어떤 어조를 사용하는지, 무심결에 내뱉는 단어를 살핍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낯선이와의 새로운 관계에 대해 두려움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럴 일은 별로 많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 새로 사귀는 친구는 각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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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할 때 가졌던 감정은 '아, 이제 그럼 어떤 사람도 못 믿고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거야? 저런 사건들을 피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고?' 하는 불안감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내던져주지만은 않습니다. 해결책도 당연히 제시해줍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하는 역설을 중심에 두고 타인을 파악하려 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첫째, 우리가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지 모사고 그의 대답을 해석하는 것에 지독하게 서툴다는 점을 인정하자.
둘째, 낯선 사람을 보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셋째,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는 대화 내용보다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감수사 中.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311p.
너무 뻔한 결론 같나요? 이 뻔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시면 결코 뻔하기만 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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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러디스가 살해된 방에는 내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다큐멘터리 <아만다 녹스> 말미에 녹스가 말한다. "그런데 당신들은 내 눈동자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있어요. 당신들은 나를 바라봅니다. 왜죠? 이건 내 눈이에요. 내 눈은 객관적인 증거가 아니에요." -본문 228쪽.
2007년 메러디스 커처가 살해당한 후 용의자로 몰리는 그녀의 룸메이트 아만다 녹스. 그녀는 친구의 죽음 이후의 태도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습니다. 도저히 슬픈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는 거지요. 뭔가 공감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녹스가 의심스러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속아 진실을 놓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면과 태도의 불일치. 인간이 과연 얼마나 투명한 존재일까요? 속과 겉이 다르다는 걸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그게 중요해지는 시점은 따로 있을거니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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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 자신이자 타인으로서 모두가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주저 말고 읽으세요. 타인으로부터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나로부터 타인을 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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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1-프라이멀 피어.
꽤 오래 전에(무려 20년 전?) 본 영화 『프라이멀 피어』가 떠오릅니다. 제가 꼽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 씬.
대주교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19살 소년. 그 소년은 살해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죽은 대주교는 소년과 소년의 친구들에게 변태적인 행위를 강요하며 포르노 테잎을 만들었다는 게 밝혀집니다. 살해 동기가 발견되었으니 소년은 벌을 받게 되겟죠. 하지만 정신감정결과 소년에게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은 한없이 천사같고 선합니다. 그러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인격의 죄를 선한 내가 책임져야 하는걸까요?........ 그리하여 마지막 씬이 영화의 99%라고 내내 생각했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진실기본값이 이 영화의 키워드로 추가되어야 겠구나 잠시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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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2-이방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그는 지중해의 태양 아래 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입니다. 빵야 빵야 빵야.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죠. 그는 사형 언도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재판하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언젠가 이 책으로 독서모임도 한 적이 있었는데 의견이 분분히 갈린 적도 있습니다. 각자의 잣대를 들어 '틀렸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고, 개인의 인권과 다양성을 들어 '다르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뫼르소는 어머니가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아요. 장례식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여자를 만나 섹스를 하고 바다에도 놀러갑니다. 그렇게 무미건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뫼르소의 인생을 전부다 알 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의 드러난 한 면만을 보고 판단합니다.
책에 소개된 아만다 녹스의 사건을 읽자마자 뫼르소를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진실일 것이다‘라는 가정을 깨부수어야 한다. - P9
때때로, 낯선 이들이 나누는 최고의 대화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도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끝나는 대화다. - P21
우리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갖고 있다. 우리의 가정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 P101
현대인의 삶에서 바보 성자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내부 고발자다. - P131
진실기본값과 거짓말의 위험 사이의 상충관계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따금 거짓말에 취약해지는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효율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조정이다. 이득은 대단히 크고 그에 비해 비용은 사소하다. 물론 우리는 가끔 기만을 당한다. 이는 일처리의 비용일 뿐이다. - P133
우리가 판단하는 사람의 태도와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형편없는 거짓말탐지기다. - P217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 P311
타인을 신뢰하는 우리의 본성이 모독을 당하는 사태는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대안, 즉 약탈과 기만에 맞서는 방어 수단으로 신뢰를 포기하는 것은 더 나쁘다.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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