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 남경태의 48가지 역사 프리즘
남경태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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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산업혁명을 지나 21세기 4차 혁명에 이르기까지 서양이 세계 문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 시작하는 시점, 즉 고대에는 서양보다는 동양이 더욱 앞서 있었다. 도시국가에서 시작해서 아우구스투스에 이르러서야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게 되는 서양과는 달리 이른 시기부터 왕이 중심이 되는 국가를 형성해 발전한 동양은 여러 면에서 앞서 있었다. 그러나 (결과론적 이야기이지만) 잠재성에서는 서양이 앞서 있었던 같다.

 

서양의 도시국가라는 체제는 그들에게 유연성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그렇기에 동양보다 빠르게 시민혁명등을 통한 의회의 설립이 훨씬 빨리 이루어졌으며, 그에 따라 한 사람에 의한 통제와 다스림보다는 개방과 다양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그에 반해 동양의 왕권정치는 하늘아래에 두 태양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처럼 언제나 일인통치를 추구했으며 모든 정치사상과 생활은 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움직였다. 당연히 폐쇄적, 통제적 분위기를 이루며 다름보다는 같음을 변화보다는 정체 또는 안정을 추구하게 되었다.

 

두 세계의 선택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왔다. 시대적 변화, 시간적 흐름에 따라 움직일 수 없는 체제의 고수는 고여 있는 물과 같다. 그렇기에 서양은 발 빠른 대처를 통한 변화를 추구했지만 동양은 그 변화에 발맞추지 못했다. 또한 서양은 외부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탐험하기를 원한 반면 동양은 내부를 다스리고 관리하고 안정됨을 원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너무 서양 중심적이지 않느냐라고 반문하게 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내용 또한 팩트이다. 이런 장, 단점 때문에 서양이 정치 경제적인 힘을 누리고 있다. 자기 변명적인 진술과 자기 위안적인 생각은 오히려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이제는 순종이 아닌 잡종의 시대이다. 충돌과 정복을 통한 순수함을 지키기 보다는 변화와 수정을 통한 융합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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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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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무협지에 빠진 적이 있었다. 현실적인 학교 수업이나 공부보다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무협지의 세상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능력이 출중하고 수려한 외모, 그리고 여성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화려한 말솜씨와는 대조적으로 주인공은 어눌하고 무능력하며 자기의 의견도 제대로 말 못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만큼 열심히 하려는 의욕과 의지를 타고났다. 출발점은 비록 평균이하이었지만 우연성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통한 스승과 친구들 그리고 여성과의 만남은 그를 변화시킨다. 그 변해가는 과정,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그의 모습에 나를 대입해 나도 그처럼 부족하지만 조금씩 성장해 언젠가는 마지막 계단을 밟아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무협지의 주인공들 그리고 채사장이라는 열한 계단의 저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무능력이라는 시점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 채사장에게는 책이라는 요소가 그의 성장 호르몬을 자극했다. 거기에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던 타고난 성품이 더해져 한 단계씩 올라간다. 거기에 더해 둘 다 본질적으로 편안함이나 현실의 안주보다는 불편하지만 나를 깨울 수 있는 무언가를 갈망한다. 두려움, 좌절감, 실망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한 기폭제가 된다.

 

주인공에 반해 무협지에서 손을 떼지 못한 것처럼 인생이라는 길에서 작가가 마주한 여러 굴곡과 고개들을 책이라는 도끼를 이용해 넘어가는 그의 모습은 나를 끌어당겼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가지지 못했던 질문들을 던지며 답을 찾아가려는 그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책은 얇지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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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 - 학력도 스펙도 나이도 필요없는 신왕국의 코어소리영어
신왕국 지음 / 다산4.0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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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어렵다. 영어와 스파링, 그 시작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100100패였다. 이 책은 영어라는 적을 어떻게 쓰러뜨리는지를 설명한다. 기존 영어공부법인 문법, 읽기의 방법이 아닌 저자 스스로 경험으로 깨우친 방법을 이야기한다.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도 있고 진짜 이게 돼?”라고 물음표를 날리게 되는 것도 있지만 분명 설득력이 있다. 거기다 저렴한 가격으로 재미라는 양념이 껴들여 있으니 금상첨화다. 문제는 나의 의지. 한 문장 한 문장을 100 번이 넘게 듣고 따라 읽는 것이 핵심. 저자는 강조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나도 해 냈는데 충분히 독자들도 할 수 있다고.....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그와의 스파링을 준비해 이번에는 승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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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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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본다. 떨어지지 않는 눈을 가까스로 뜨고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며 힘차게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 품에 안겨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배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부모의 품에서 시작된 인생은 다 자라서는 부모의 품을 대신할 반쪽을 찾아서 방황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신체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인 동시에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정서적으로도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 존재의 불완전함은 불안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개인의 불안은 가정의 불안을 그리고 사회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불완전함에서 오는 그 불안을 작가는 철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1. 인기 없는 존재를 위하여 :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는 이들은 무시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기에 인기 없는 존재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에게 힘을 준다. 너무도 명백한 것이라거나 당연한 것으로 선언된 것들 중에서 실제로 그런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는 이 세상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는 진리를 배우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기존의 확고한 견해들도 완벽한 추론 과정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종종 몇 세기에 걸친 지적 혼란 상태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여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 p.34”

타인에 의한 불쾌한 평가와 비평은 두 가지에서 나온다. 첫째는 그들의 찬성과 동조로 인해 나에게 물질적, 정신적인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다른 이들과의 의견의 차이는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려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논법을 고려해야 한다. p.44,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느냐 않느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당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p.62“

 

2.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난이 행복에 걸림돌이 될까? 알랭 드 보통은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불러와서 가난이 불편할 수는 있지만 행복의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에피쿠로스의 행복=쾌락의 등식에서 쾌락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품목이 제시된다.

 

*우정: 우리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켜봐줄 누군가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다른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지낸다는 말은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받는 것이다. 친구들은 우리를 알아주고 돌봄으로써 우리에게 무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다. p.80”

 

*자유: 그들(에피쿠로스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들에게 치욕을 안겨줄지도 모르는 변덕스러운 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 위해서 아테네 상업 세계의 고용관계에서 자신들을 제외시키고 독립을 누리는 대가로 보다 검소한 생활방식을 택하면서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이 가진 돈은 보잘 것 없었을지 몰라도 대신 그들은 다시는 불쾌한 상관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p.82”

 

*사색: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p.83”

 

3.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 좌절은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결과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심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철학자 세네카는 주장한다.

 

동물은 자신의 목을 맨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지만, 오히려 밧줄을 더 단단히 조이는 결과가 된다..... 멍에에 저항할 때보다 순응할 때 묶여 있는 동물을 더 다치게 하는 멍에는 이 세상에 결코 없다. 저항할 수 없는 악에 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숙명에 굴복하고 인내하는 것이다. p.146”

 

자신의 의지와 충돌하는 숙명에 수긍하고 복종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질 때를 아는 것. 그것이 좌절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4. 부적절한 존재를 위하여: 근 현대의 가장 큰 역사적 유물은 이성이다. 이성에 반하는 모든 것들은 옳지 않으며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기에 감성은 언제나 이성의 통제 하에 존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언제 그 야만성을 드러낼지 모르기 때문에... 몽테뉴는 그런 생각에 도전한다. 그리고 외친다. 이 세속의 감옥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는 순전히 육체적이거나 순전히 영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어떤 존재를 둘로 나누는 것은 해로운 짓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p.177”

 

5. 상심한 존재를 위하여: 삶은 고통과 상심으로 가득 차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나만의 고통인 것처럼 느껴지며 이런 불운을 가져다 준 운명을 저주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나와 같은 이들이 존재한다.

 

“..... 그러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사랑을 거부당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한다. 그는 더 이상 혼자서만 고통 받고 외로워하고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인류사에 종의 번식을 위해서 애 쓰느라 다른 인간을 사랑했던 수많은 인간군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의 고통은 약간 통증이 누그러지면서 보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되고, 개인적인 저주는 조금씩 빛을 잃게 된다. 이런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그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그리고 삶의 불행에서 그는 이제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보다는 전체로서 인류의 운명을 더 돌아볼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고통받는 존재로서보다는 세상을 아는 존재로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p.273-274“

 

6.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어려움과 성취는 함께 온다. 하나를 밀쳐내고는 다른 하나를 이룰 수 없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알찬결실을 남긴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그대 자신에게 악천후와 폭풍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들이 자라에 거목으로 훌쩍 자랄 수 있을지 한번 물어보라. 불운과 외부의 저항, 어떤 종류의 혐오, 질투, 완고함, 불신, 잔혹, 탐욕, 폭력, 이런 것들이 호의적인 조건에 속하지 않는지 곰곰이 따져보라.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고는 어떤 위대한 미덕의 성장도 좀처럼 이룰 수 없다. p.289-290”

 

쉽고 편안한 길, 풍요와 만족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현대인들은 여러 불안요소를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불안한 삶의 여행자인 우리에게 알랭 드 보통은 6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면서 그런 삶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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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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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덧  겨울의 한 중턱에 있는 조선. 온 마을과 고을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와 그 주위를 짖어대는 개들,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떠들썩한 모습들은 추위와 배고픔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주위는 청군으로 둘러싸인 성벽에 갇혀 옴짝달싹할 곳 없다. 줄어드는 먹을 것과 뼈 속까지 미어지는 추위에 조선군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기는 남한산성이다. 정묘호란이후 본격적인 청의 침입을 피해 택한 곳. 지금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다.


 그러나 임금은 남한산성에 없다. 분명 수백의 신하들과 군대를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지만 남한산성 어디에도 임금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 명분만을 내세우며 현실을 외면하는 자, 자신의 자리만을 내세우며 자신의 의무는 과감히 버리는 자들뿐이다.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느냐?  - 먹고 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 -이러지 마라. 네 말을 내가 안다. 나중에 네가 사대부들의 죄를 묻더라도 지금은 내 뜻을 따라다오. p.227" 시끄러움. 잡음. 변명. 행동이 아닌 입만으로 조정을 이끌던 이들의 목소리가 왕의 심장을 관통해 서글픔을 이끈다. 

”아침에 김상헌은 서날쇠를 묘당에 천거했다. 품계없는 대장장이에게 임금의 문서를 맡길 수 없으며......문서를 맡겨 멀리 내보내려면 먼저 품계를 내려서 보내야 한다는 말과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알 수 없으므로 돌아온 후에 품계를 내려야 한다는 말이 부딪쳤다.....p230"


 제대로 된 전투 한 번해 보지 못했다. 단지 기다림. 그 기다림 속에서 오가던 것은 성문을 열어야 된다는 최명길을 욕보이는 일. 칼이 아닌 말로 전투를 하는 그들은 단지 명에 대한 충정과 조선을 위한다는 명분만을 보이면 된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 말 속에는 굶주림에 배를 움켜쥔 백성,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루를 이겨내는 병사들은 없다. 애초에 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그들의 명성과 목숨만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뿐 이다. 그렇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오직 그들만이 존재한다.


 봄비가 치럭치럭 내리는 성 너머로 녹아내리는 눈과 얼었던 강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얼은 강에 얽혀있던 시체들도 다시 흘러내리는 강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내려간다. 겨울내내 어는 손과 발을 동동구르며 지킨 성은 화이포 한 방에 날아가고 없으며 인조는 쓸쓸이 청의 칸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수척해진 얼굴과 어딘지 모르게 기죽은 모습에서는 지낸 인조반정 때의 당당함과 자신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으로 칸에게 절을 하고 주위의 왕자들은 눈물만을 흘린다.


 삼전도의 굴욕 다음 날 남한산성의 농부들은 다시 곡괭이를 집어 들고 농사를 지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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