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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감성적인 존재인가?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친구와 헤어진 주인공은 배에서 운명처럼 조르바를 만난다. 그들은 원래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고 물리적 이별의 순간에서도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연결된 끈을 놓지 않는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p.22”
너무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 심지어 적지않은 나이차이로 인해 살아온 시대적 배경도 다른 이들 두 사람이 어떻게 (연인들의 사랑과는 다른)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둘은 원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성, 조르바=감성’ 이라는 수식에 이 모든 상황을 대입하면 책을 읽는 동안 품은 그간의 궁금증이 풀린다.
주인공은 항상 책을 가까이 하며 논리적 사고와 분석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이래저래 따져보고 계산해 봐야할 것들이 언제나 앞선다. 결국 그가 품게 된 여인이 주민들에게 죽음을 당하는 순간에도 그는 머릿속으로 앞, 뒤를 재어본다. “나는 불을 끄고 누운 채, 나 나름의 유치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재구성해 보았다. 말하자면 현실을 변조하고, 우주의 법칙에 따른 추상적인 것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그날 일어난 사건은 필연적인 사건이라는 끔찍한 결론이 나왔다. 필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우주의 조화에 대한 기여이기까지 했다. 그날 내가 내린 구역질나는 결론은, 일어난 사건은,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p.357-358”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너무나 이성적인 인간이기에 너무나 비인간적인 존재였다. 이에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소리친다.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p.322”
반면, 조르바는 상당히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즉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이성이 아닌 너무나 감정적인 사랑이 있다. 조르바는 언제나 과부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그런데 왜 처녀가 아닌 과부일까? 그에게 과부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전쟁 통에 목숨을 잃은 누군가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슬픔을 품고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다. 조르바의 여인이 과부 부풀리나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녀 주위의 사람들은 그녀가 남기게 되는 물질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 육체적 소멸은 곧 물질의 불필요를 의미한다는 논리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냉정한 머리로 생각을 굴리고 있는 동안, 조르바는 뜨거운 가슴으로 슬퍼했다. “부끄러웠다. <진짜 사내란 이런 거야.....>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p.359”
주인공은 조르바를 닮고 배우고 싶어 했다. 그의 자유를 동경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조르바와의 재회를 거부했다. 이성적이라는 놈에 이끌려 소유한 것을 놓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이후의 인류는 감성을 버리고 이성이라는 깃발을 들었다. 수식과 계산 그리고 논리라는 것이 언제나 모든 것에 앞섰다. 자연으로 부터의 해방, 굶주림으로 부터의 해방, 질병으로 부터의 해방 등을 외치면서.... 하지만 우리가 가지게 된 건 인간과 자연의 분리, 넘쳐나는 식량에도 불구하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유전자 복제 등과 같은 ‘이성’이라는 놈이 제시하고 있는 거짓된 자유와 해방이다. 지금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는 조르바의 ‘감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공감, 동정, 연민 그리고 사랑이다. 조르바는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은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p.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