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주성철 지음 / 흐름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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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때 007미팅이라는게 유행했는데 여자가 사전에 정의한 복장을 하고 지정된 장소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 나에게 떨어진 미션은 '장국영 브로마이드를 예쁘게 포장해서 시계탑 앞에서 기다릴 것' 이었다. 당시 장국영이라는 배우와 가수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는 생소한 미션이었다. 여학생이 좋아할 만한 브로마이드를 고르고 골라서 파트너를 기다렸다. 이야기를 나누고 편지를 몇번 주고 받으면서 장국영의 열렬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장국영이라는 가수에 대해서도 상당히 생소했으며 영웅본색의 주제곡이 당년정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레크드 점에 가서 장국영 테이프를 사서 듣고 또 듣고를 반복하면서 광동Pop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아울러 홍콩영화 매니아가 되어 주말마다 홍콩영화를 보러 2편 동시 상영관을 찾았다. 80~90년대를 주름잡던 장국영, 주윤발,유덕화, 장학우, 양조위, 심청하, 매염방, 관지림, 장만옥 등은 나의 우상이었고 그들이 나오는 영화는 거의 빠지지 않고 보았다. 따지고 보면 그 내용이 그 내용인 듯하였지만 볼때마다 새로웠으며 보고 또 봐도 전혀 지겹지가 않았다.

장국영은 악당 역할이 어울리지 않아 주로 영웅이나 경찰 역할을 맡았는데 우리의 영웅들은 대부분이 그렇했다. 6연발 권총에 얼마나 총알이 많이 들어가는지 쏘고 또 쏴도 총탄이 떨어지는 일이 없으며 쐇다고 하면 백발백중이며 악당이 쏜 총은 주인공을 맞추지를 못하고 몇 발을 맞아도 죽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방에 쓰러진다. 하지만 장국영이 출연했던 영화는 이런 단순함을 벗어나는 듯하다. 홍콩영화에서 빈번히 등장하던 포커판은 보기어려우며 화려한 무술은 볼 수 없었다. 천장지구나 쳔녀유혼에서 본 그의 매력은 살인 미소가 아닐까. 감미로운 목소리와 유창한 중국어로 부르는 영화 삽입곡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러면서 중국 노래가 수록된 테이프를 모으기 시작했고 시간 날때마다 듣게 되었다.

겨울 방학을 전후하여 잠시 여유를 만끽할때면 영화속 주인공을 따라하기 위해 트럼프를 가지고 와서 내가 주인공이 된 양 카드를 가지고 이것저것 묘기를 부리는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학교에서 영어와 불어는 배웠지만 중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많지 않았기에 좋아하는 중국노래의 뜻을 알지는 못했다. 가끔 비슷하게나마 따라부를 수 있는 친구들은 장기자랑할때면 모든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중국어 발음과 가사의 내용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말 그대로 미스터리 였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그래서 중국어를 한번 공부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중국어는 어떻게 배웠다고 하지만 가사를 확인할 길이 있어 그렇게 시간은 흘러 10여년이 흘러갔다. 그사이 홍콩은 아편전쟁으로 영국으로 할양되었다가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고 중국과 수교가 시작되어 중국으로 여행이 가능해졌고 홍콩 영화는 헐리우드에 완전히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러다가 꿈에 그리던 첫 중국 출장. 노래방에서 당년정을 어렵게 찾아서 외우다시피 했던 가사로 설레임반 기대반으로 불렀다. 동행한 중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하는 말에 자신감에 넘쳤다. 중국인 친구에게 부탁해서 가사를 찾아 다운받아보니 내가 배웠던 중국어랑 발음이 완전 다르다. 한참뒤에 알게 되었지만 내가 공부한 것은 북경어이고 장국영은 광동어로 불렀다고...To You가 광동어 버젼은 천사지애이고 당년정이나 영웅본색2의 주제곡이 분향미래일자 역시 북경어 버젼도 있다고...

그러던 어느날 출근해서 메일을 확인하는데 중국인 친구가 보낸 메일에 'Last night Leslie Cheung commited suicide..'라는 말을 듣고 이게 왠 날 벼락인가 하는 생각에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보았다. 4월 1일 만우절에 정말 거짓말처럼 호텔에서 투신 자살한 우리의 우상 장국영. Two Job으로 카페를 운영하고 동성연애자라고도 했지만 도대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것은 무엇일까? 항상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그에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10년이 지나고 더 많은 세월이 흘러도 그는 영원히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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