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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상실에 대한 153일의 사유
량원다오 지음, 김태성 옮김 / 흐름출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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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든 상처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원인이 있다. 원인이 있다보니 마음의 상처이건 육체의 상처이건 실연의 아픔이라거나 영광의 상처이건 모두 이름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얼마나 상실에 대한 상처가 컸기에 15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을까? 나에게 있어 그 정도의 시간은 사치이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하루 밤 자고나면 툴툴 털고 일어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색할 시간조차 가지지 못하기에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지 혹은 상처를 받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근데 알고보면 우리가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이유는 사랑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노래나 영화의 가장 많은 소재를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사랑에 관한 것인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치 않는 사실인가 보다. 사랑때문에 가장 상처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을 포기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동인지도 모른다.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몰래 써서 그 사람이 다닐만한 곳에 살짝 떨어뜨리고 가서 멀찌감치 숨어서 편지를 주워 가는지 조마조마하게 살펴보던 시절이 지나 편지를 보내고 받는 시간을 합하여 1주일 정도면 가능했던 시절까지 문명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 시절 한자한자 눌러가며 편지지에 밤 늦게까지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글을 적던 시절도 이제는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된 것 같다. 긴 장문의 편지를 키보드로 두들겨가며 적던 시절도 지나 이제는 몇초내에 답변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예전처럼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고 어떤 대답이 올까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설레임과 희망이 사라지고 말았다. 가슴에 두고두고 간직했던 설레임이 이제는 추억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상처만은 남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애당초 세상에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은 나와 관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났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있고 내가 사라진다면 모든 것이 끝일지도 모르기에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변화하는 것이고 상처도 아픔도 모두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란 원래 물 흘러가는대로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잘 돌아가는데 그 변화의 중심에 선 나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고적에는 상처니 상실이니 하는 것이 없었는데 나라는 존재가 '너'를 만들고 또 구별을 하면서 욕심을 부리고 그 욕심이 지나쳐서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허상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들은 나 없이도 잘 사는데 나 혼자서 헛된 망상을 하고 나를 사랑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인지...상실이니 사색이니 하는 추상명사들에 대해 사실 잊고 산지 몇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상처가 무엇이며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도 모른채 내가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뒤돌아본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내 욕심만 채우고 왜 살아가는지 이유도 모른채 살아왔던 내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나도 153일이라는 시간은 아니더라도 153분이라도 사색을 하는 여유를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