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구려의 섬 - 상 - 멸망의 얼굴
배상열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역사시간에 백제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연개소문이 죽은 뒤 아들들의 권력다툼에 의해 내분을 겪으며 고구려도 멸망하고 만다. 태종무열왕의 뒤를 이어 문무왕이 김유신이라는 훌륭한 장수에 의해 삼국을 통일하는데...근데 삼국을 통일은 했지만 대동강 이남의 영토만 확보하고 나머지는 당나라에 빼앗긴 반쪽도 못한 통일이었다. 역사책을 펼칠때마다 그 광대한 고구려 영토를 빼앗기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나마 한반도도 두 토막이 난 지금 고구려의 영토는 고사하고 통일이 되어 북한만이라도 아울렀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고 아픈 과거를 들추어봐야 뭣하겠냐만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일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길들어져 백제의 의자왕은 타라하였으며 고구려는 넓은 영토를 가졌음에도 내분에 의해 스스로 화를 초래하였다고 배웠다. 신라는 승자의 역사이니 왜곡될 수밖에 없었고 어린 소년을 화랑이라는 명목으로 전쟁터로 내몬 것은 병력이 부족함을 만회하기 위함이 아닌 강인한 나라를 상징하는 상징처럼 여겨지고 세속오계니 하는 것은 필히 암기해야할 내용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잊혀졌던 고구려와 백제 역사 다시 알기를 실천하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된다. 수년 전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임금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나 서적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덕분에 삼국사기나 조선왕조실록만 읽던 나같은 필부도 역사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최근들어 삼국사기에 대해 비평을 하는 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인 김부식은 자신의 조상인 경주 김씨에 대해 최대한 좋게 평가하였기에 자연스레 고구려와 백제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를 하였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고 부흥운동이 일어났지만 내분에 의해 진압당하고 삼국을 통일하고 백제의 영토까지 넘보려는 당나라를 몰아냈다고 당당하게 적고 있지만 삼국통일이 맞는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외적을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시켰기에 김춘추라는 인물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사실 민족주의니 하는 것이 태동한 것은 그보다 1세기는 지난뒤의 일이니 그 시절에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 민족이고 당나라만 이민족이라는 생각이 있었겠는가? 신라의 내물왕도 흉노족의 후예라는 말도 있고 백제에서 건너간 왕족들이 일본을 세웠다고 하니 굳이 민족을 따진다는게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고구려가 당나라의 공격을 여러차례 막아내고 백제가 망한 이후 부흥운동이 일었났지만 사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그저 역사책에 몇줄 끄적일 뿐이었고 김부식의 영향을 받은 위인전기의 작가들도 김유신이라는 인물은 당당히 주인공으로 올리면서 계백이나 연개소문과 같은 장수들에 대해서는 부록에 실을 정도로 천대했다. 패자가 당하는 설움은 죽어서도 계속되나보다. 유명한 황산벌 전투에서 관창의 희생으로 신라가 승리로 이끌 수 있었지만 김유신 장군도 국가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무서울 정도로 냉혹했던 것이다. 훌륭한 장수 밑에는 당연히 훌륭한 부하들이 많지만 왜 아들은 그렇지 못했을까?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냉혹하리만큼 절제하였지만 자식들에게는 관대하였던 결과였을까? 그래도 연우라는 잊혀진 이름이 있다. 홍길동전의 허균이 그랬듯이 서자라는 설움을 떨쳐버리지 못했지만 후대에 누구보다도 더 강인하게 기억될 것이다. 물론 고구려를 팔아먹은 연남생도 전혀 다르게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역사서와 소설의 경계를 아찔하게 넘나들며 연개소문의 사망후 고구려가 멸망한다는 결론을 알고 있음에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이유는 무엇일까? 스토리의 전개상 독자의 상상에 맡긴 후 뒤에 적당히 이야기를 풀어놓은 기법도 한몫 하였고 내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이 세세하게 서술되어 더욱 흥미를 갖게 만들었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마치 내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같은 꿈을 꾸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