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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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시간에 십자군 전쟁에 대해 배울때 교황의 권유로 시작된 십자군은 9차례(책에서는 8차례로 나온다)에 걸쳐 대군을 파견하였으며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으며 초기에는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았지만 점차 초기의 이런 생각들이 타락이 되었고 이슬람의 반격으로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십자군은 실패로 끝났지만 유럽에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이는 곧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고 황제의 권위가 높아졌다. 동서양간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대략 이런 식이었다. 당시에는 구체적인 역사적인 사실을 알 필요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3권의 책으로 방대한 분량을 차지한 200여년에 걸친 십자군 이야기가 역사교과서에는 '카노사의 굴욕'에서 '십자군 전쟁', '아비뇽 유수'까지 단 몇 페이지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해서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가르쳐주려고 하지도 않았기에 지겨운 과목일 수 밖에 없고 관심도 없었다. 만약 십자군 이야기를 교과서로 채택한다면... 아마도 많은 선생님들의 밥줄이 끊어질지도...

 

  나도 동양인이기에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인지 책을 읽으며 살라딘을 비롯한 이슬람의 영웅들이 십자군을 물리칠때는 한편으로는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십자군 병사들의 잔혹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처음에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을 해방시킬때에는 - 남의 땅을 무력으로 빼았았는데 해방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 살고 있던 이교도들인 이슬람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을 하였다. 하지만 이슬람 교도들은 세금만 내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살 수 있도록 하였는데 같은 일신교이지만 카톨릭 교도들은 이교도라는 이유로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는 미명하에 이슬람 주민에 대한 학살을 저질렀던 것이다. 게다가 성지를 외교를 통해 빼앗아오거나 성지 순례를 합법적으로 승인해주는 것을 신의 뜻에 반한다고 여기고 반드시 피를 흘려서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황을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역사를 알게 되고 종교 전쟁들을 보면서 나도 무신론자가 되었다. 아니 종교를 거부하기 위해 억지로 무신론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란 지배계층이 피 지배 계층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이 천년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일신교가 아닌 다신교를 숭배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신교란 말그대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종교 임에도 배척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양보할 줄 알았던 이슬람교도들이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싶다.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레판토 해전과 빈 공방전에서 투르크 제국이 승리했더라면 역사는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란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공존과 관용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대전 따위는 우리의 역사교과서에 등장하지 않았으지도 모른다고 상상해본다. 역사책에서 지나가는 문구였던 소년 십자군, 노예왕조와 몽고에 의한 바그다드 함락 등에 대해 상세히 그리고 실상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흥미와 무협지에서의 짜릿함, 역사 교과서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에 더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많은 지혜를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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