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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어둠의 시대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국사시간에 수없이 외웠던 기억이 난다. 다산 정약용 - 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표..가끔은 퀴즈 프로그램이나 도전 골든벨 문제의 정답으로 출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황이니 이이처럼 지폐를 장식하는 인물이 아니다보니 그 이상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정조가 통치하던 시절에 살았던 인물이고 1권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수원화성을 설계하고 만드신분 그리고 실학자라는 정도외에는 잘 모른다. 물론 실학이 무엇인지 조차도..
1권을 다 읽고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를 읽다보니 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어느정도는 알 것 같다. 반대파들에 의해 탄압을 받고 역사적인 기록들이 삭제된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성리학을 숭상한 것이 아니라 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학을 집대성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성리학은 무엇이고 실학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는 못한다. 왜냐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니 어느 정도의 감은 잡히기는 한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는 양반사회이다 보니 물에 빠져도 개헤험은 치지 않고 바빠도 뛰지 않는 고상한 양반들이 지배층을 차지하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인문학을 숭상하고 과학이나 공학은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으니 말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라고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이공계를 졸업하고 IT업종에 일하고 있지만 사실 제조IT에 일하는 사람이 홀대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소위 조선시대의 중인 계급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런 것을 정약용 선생께서는 알고 계셨던 것일까? 자식들보고도 과거에 급제하여 정계로 진출하는 것보다 학문에 몰두하라고 편지까지 보냈으니 말이다. 부모로서 학자로서 그리고 선비로서 어느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정약용 선생 뿐 아니라 그의 형제들도 각자의 분야에서 많은 저서를 남기고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이 인용되는 것을 봐서 소위말하는 뼈대있는 집안은 뭔가 달라도 다른가보다. 특히 1권에서는 그다지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생태학자 정약전의 경우 지금처럼 잠수 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는데 어류의 생태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한 것은 어쩌면 미스터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대를 잘 못 타고난 탓일까? 사대주의니 유교를 숭상하니 하면서 서양에서 건너온 천주교를 배척하고 박해를 하였기에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조 사망이후 귀양 생활로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지만 서학을 그토록 배척하지 않고 굶주린 백성들 밥먹여 주지도 못하는 성리학은 접어두고 실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중용하였더라면 우리가 아는 조선의 역사는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 정약용과 형제들이 귀양지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지만 그 당시에는 수백년간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였기에 당파정쟁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한두명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기에 그토록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조께서 의문사(?)를 당한 뒤 힘든 시기를 견뎌야만 했다. 오늘날 맘 편하게 공부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우리들에게 지하에서 훈계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실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그칠것이 아니라 이공계생들의 든든한 후원자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