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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대, 위기를 지배하라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폭풍우는 위대한 뱃사공을 만든다"라는 표지의 강렬한 문구처럼, 이 책은 거대한 위기 앞에서 조직과 국가를 구원해 낸 역사 속 리더들의 결단과 생존 전략을 박진감 넘치게 추적한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을 끌어와 현대의 비즈니스와 지정학적 위기에 접목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흥미롭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동력을 지나치게 '소수의 탁월한 리더'에게만 의존하여 해석하려는 뚜렷한 편향성은 있었다. 물론 요즘 인공지능이 화두가 되는 시점에 1,000명의 평범한 다수보다 뛰어난 천재 한 명이 세상을 바꾼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1,000명의 범재 중 한 명에 속하는 나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십의 이상향으로 삼는 뼈대는 다분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맞닿아 있다. 저자는 난세일수록 강력한 카리스마, 냉혹할 정도의 결단력, 그리고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리더의 개인적인 역량이 절대적이라고 역설한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흔들림 없는 결단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위기는 과거처럼 왕 한 명의 직관으로 돌파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거대한 조직과 정교한 공정 시스템이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에서, 마치 중세의 전제군주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고 이끄는 '초인적 리더'의 모습에만 집중하는 것은 복잡다단한 현대의 위기 극복 매뉴얼로는 다소 시대착오적인 낭만화로 다가온다.
이러한 영웅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참모와 시스템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역사 속 어떤 위대한 승리도 리더 혼자만의 독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겉으로는 강건해 보이는 결단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정하며 리더의 맹점을 보완했던 수많은 참모들의 치열한 헌신이 있었다. '위기 극복의 시스템'을 부제로 내걸었지만, 정작 그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실무진과 참모진의 가치를 깊이 있게 조명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조직 생활을 하며 리더와 참모의 역할을 모두 겪어본 이들이라면, 뛰어난 뱃사공 한 명보다 묵묵히 노를 젓는 선원들의 합과 유기적인 시스템이 배를 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 것이다. 이 책에서 참모들이 단지 리더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수행하는 체스의 말 정도로 비치는 점은 깊은 공감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다.
서구 중심적인 시각이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저자가 꼽은 위기 극복의 성공 사례나 리더십의 롤 모델들은 상당수 로마 제국이나 서양 근대사 등 특정 궤적에 치우쳐 있다. 물론 동양의 리더십에 대해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전을 미국이나 한국의 입장에서 기술한 점은 상당히 불편하였다. 과거 뚝심으로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포항 제철을 일의 킨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다른 칭찬 받을 만한 사례는 없었을까? 아직도 80년대식으로 '하면 된다' 정신으로 밀어붙이기에는 우리의 국민 소득이 많이 증가하였고 국민 의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본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리더가 가져야 할 투지와 책임감을 일깨워 주는 데는 유용한 자극제가 된다. 하지만 책에서 본 해답을 맹신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결코 무대 위의 화려한 주연배우 혼자서 써 내려간 독백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대한 리더십이란 카리스마로 무장하고 홀로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참모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기꺼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튼튼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임을, 독자 스스로 이 책의 빈칸을 비판적으로 채워가며 읽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