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와인 이야기 - 개정판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나이토 히로후미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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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매혹적인 음료를 꼽으라면 단연코 술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서양사에 집중하여 와인에 대해 소개하였다. 서양 중심의 세계관이다 보니 유럽 역사가 세계사이고 그래서 와인이 가장 매혹적인 음료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붉고 투명한 액체가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인류 문명의 결정적 변곡점마다 어떻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는지 추적한다. 표지에 적힌 '와인이 없었다면 고대 그리스 민주정도 프랑스혁명도 없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는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단숨에 자극하기 충분하다. 물론 그 정도의 역사적 지식은 갖추고 있어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온(Symposium)' 문화에서부터 와인의 진가를 조명한다. 철학자와 시민들이 모여 포도주를 물에 희석해 마시며 격의 없이 토론했던 이 문화는, 훗날 서양 철학과 민주주의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술기운을 빌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교차하던 그 잔 속에, 사실은 세상을 바꾸는 자유로운 사상과 정치적 합의가 담겨 있었다고 할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철학적 담론을 펼치던 그 자리에도 언제나 와인이 함께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당시에는 주류 제작 기법이 발달하지 않아서 지금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훨씬 낮아서 그런 토론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중세 시대에 이르러 와인은 기독교와 결합하며 '신의 피'라는 신성한 지위를 얻게 된다. 수도사들은 와인 양조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이는 유럽의 권력 및 경제 구조와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갔다. 중세 귀족과 수도원은 포도밭을 소유하고 와인 생산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와 권력을 축적하게 만다는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지만 와인은 지배층만의 전유물로 평화롭게 남지는 않았다. 항상 과도한 세금이 문제가 되는데 역시나 부당하고 과도한 와인 통행세에 분노한 파리 시민들의 불만이 결국 프랑스혁명의 중요한 도화선 중 하나가 되었다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낭만과 신성함을 넘어, 억눌린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로서의 와인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점이 무척 돋보인다.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와인은 국가 간의 자존심을 건 치열한 패권 다툼의 무대가 되었다. 보르도와 샹파뉴의 명품 와인들이 유럽 귀족 사회의 외교적 무기로 쓰인 이야기부터, 1976년 콧대 높은 프랑스 와인이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에 무릎을 꿇은 이른바 파리의 심판 사건까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 쏟아진다. 이 과정에서 와인의 역사가 곧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이어지는 권력 이동의 역사이자, 근대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축소판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와인 애호가에게는 자신이 마시는 와인의 가치와 풍미를 배가시켜 줄 풍성한 지적 안줏거리를, 역사 애호가에게는 세계사를 바라보는 색다르고 향기로운 렌즈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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