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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팽팽한 긴장 속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 개정판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6월
평점 :
책의 초반에 조선의 개국 영웅인 정도전 편에서 한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한나라가 다시 천하를 통일하며서 자신이 필요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장량은 정계에서 물러나서 화를 피한다. 즉 낄낄빠빠를 잘했고 한신의 경우 그런 정치적인 역량(?)이 부족하여 결국 토사구팽을 당하고 만다. 500년 조선 왕조를 이끌었던 참모들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거친 파도를 타는 서퍼들처럼 시대 흐름을 잘 타는 선비와 끝까지 자신의 정당성과 주장을 굽히지 않는 선비들과의 차이는 역사가 말해준다. 물론 사후에 평가를 받음에 있어 역적이나 간신 배로 몰리기도 하지만 이는 정도를 벗어난 경우이고 위대한 이인자로 역사에 남은 위인들을 보면 그때 조금만 더 굽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왕에 대한 믿음이라거나 의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던 선비들의 최후는 너무나 비참했고 가족들도 노비 신분으로 강등되어 버렸다. 실리를 중요시하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맞지 않지만 내가 역사를 배우던 시절에는 물론 그런 정신을 이어받아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반역자로 낙인찍히는 것이었다. 물론 역사란 승자 혹은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므로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왕조 실록의 경우 생생하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 반박의 여지는 없다. 책에서 소개된 참모들은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한 신하들의 이야기이므로 우리가 간신배 혹은 역적이라 부르는 인물에 대해서도 빼놓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장녹수나 김개시 등이 있다. 그들도 왕의 총애를 받았고 사후에 왕이라는 칭호 대신 OO군으로 강등되었지만 어쨌든 조선의 왕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책에서도 밝혔지만 광해군의 경우 정말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수 있지만 조선왕조가 끝나고 대한민국이 들어선 이때 다시 O조(종)이라고 추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역사 속 사건이나 인물들을 보고 지혜를 얻거나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것도 포함된다고 본다. 조선을 개국하는데 일등공신이었지만 역적으로 몰리고 숙청당한 정도 전부터 개혁의 아이콘은 조광조, 정약용 등 수많은 인재들이 있는데 정치의 희생양이라고 본다. 어쩌면 당시 왕이 생각하기에 나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짧게 혹은 길게 살았어도 100년을 넘기지 못하지만 역사는 반드시 기억하고 그들의 작품이나 사상이 전달된다. 그냥 평범하게 혹은 부귀를 누리며 한 평생을 살기보다 역사 속에서 길이 남는 방법을 택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교는 불교처럼 사후 세계보다 현실을 더 중요시한다는데 타협할 줄 모르고 끝까지 고집을 부려야 했던 것일까? 조선 후기로 가면서 예송논쟁으로 당쟁을 벌였는데 차라리 실용적인 학문에 더 집중하고 백성들을 보살피고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주력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니면 우리가 그때의 과오를(?) 교훈 삼았기에 지금과 같은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를 침범한 적 없고 강대국을 섬기는 사대외교의 사상이 지금껏 남아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속에서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어느 한쪽 편만 들며 의리를 지키는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말로만 역사를 공부하라고 떠들어 대고 정작 본인들은 실천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한 번쯤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지금 부를 축척하여 자손들에게 재산을 남기는 것과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길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