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기다'라고 하면 좋은 어감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거짓이 없이 낱낱이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TV를 잘 보지는 않지만 가끔 교양 프로그램을 보는 편인데 내가 애호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단순히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흥미가 덜하겠지만 말 그대로 별거 벗겼기 때문에 진실 속에 숨겨진 비리나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서 거침없이 파헤친다. 어릴 적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가 남아 수업 시작 전 반장이 일어나서 전원 차렷을 한 다음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수업은 시작되었고 종소리에 맞게 수업이 시작되었고 지각은 엄벌에 처해지던 시절이었다. 정해진 규칙에 맞게 역사를 배웠고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몰랐다. 단순히 시험에 나오고 중요하다는 이유로 밑줄 긋고 암기했었던 세계사이고 그 시절의 주입식 교육이 뇌리에 남아 단편적인 지식에 그치는 나의 역사에 대한 생각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역사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벌거벗은 세계사도 마찬가지이다. 결론은 뻔하고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미 알고 있지만 또 다른 해석이 존재하기에 역사는 그만큼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부흥을 이끈 메디치 가문의 경우도 엄청난 재력이 있었기에 예술을 지원하였지만 그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검은 돈들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 르네상스를 이끌었지만 종교개혁을 빌미도 제공했다는 사실. 알고 보면 더 재미가 있다.암흑의 중세라고 하면 흔히 페스트, 마녀사냥 등을 떠올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노예무역도 인간의 잔인함을 폭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론 노예무역을 일삼던 영국도 산업혁명을 거치며 또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상위 1% 부자들은 부를 향유하며 편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노예무역과 산업혁명으로 고통받던 민중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서 또 슬럼가를 형성하고 마약 카르텔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어디를 가든 힘없는 서민들의 삶은 괴로웠을 것이고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들은 많다. 어쩌면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면서부터 생긴 필연적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수난의 역사를 이겨내고 다시 반전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또 언제 입장이 뒤바뀔지 모르는 역사의 반복. 우리는 그것을 계속 지켜보아왔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오스만 제곡의 경우 지금은 튀르 키에라는 나라로 쪼그라들었지만 커피라는 기호식품을 전 세계에 남겼는데 그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보면 흥미롭다는 사실. 비엔나커피라고 부르는 브랜드에 숨겨진 이야기와 한국의 토종 음료가 된 아메리카노에 대한 이야기도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다르지만 모든 역사에 대해 한 가지 해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므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 지도 모르겠다. 경제에 대한 내용이므로 재미없는 경제에 대해서만 다루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가 봤던 영화 속 장면이나 배경에 대한 해설도 붙이는데 이것은 책을 읽는데 흥미를 더해준다. 경제사이므로 고대에 대한 이야기보다 주로 중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었지만 전쟁에 대해서도 빠질 수가 없다. 전쟁을 통해 인류는 발전해 왔기에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가 없는데 경제 편인 만큼 전쟁에 대해 자세히는 다루지 않았다. 다만 마피아 편에서는 마약 카르텔 들의 암투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었는데 학창 시절 영화를 통해 보아왔던 소재들이었다. 우리가 아주 많이 들어왔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기축 통화국인 미국의 위상에 얽힌 배경. 결코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는데 저자가 생각하는 미래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책에 이유가 잘 녹아 있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승자가 존재하면 패자도 존재하고 희생도 따른다.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찰나를 살아가겠지만 어제와 다른 내일을 꿈꾸고 승자로 기억되고 싶다면 승자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