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선생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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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만약 곤충이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물론 그런 시도를 실제로 한 소설가가 있었다. 17년 동안 개미를 관찰하여 인간과 곤충의 공존과 대립을 그렸는데 야생 동물은 보기 어려워도 곤충이나 벌레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차라리 보기 싫은데 나타나 성가시게 한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살고 있으며 수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나타나 살고 있던 동물들인데 한참 뒤에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인간이 임의대로 판단한다는 것이 저자의 말대로 참 우습기도 하다. 곤충을 표현하면서 곤충을 곤충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과 빗대어 표현한 것을 보며 책을 쓰려면 참 재주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삽화 하나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여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어릴 적에는 도시에 살더라도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시골에 농사짓고 사셨기에 여름 방학이면 시골에 가서 냇가에서 물고기도 잡아보고 개구리가 뛰는 모습도 구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 시절을 동경해서 아이들 손을 잡고 수목원이나 호숫가를 찾아가 산책도 하고 자전거를 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 파브르 곤충기를 보고 나도 저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곤충 채집도 하였다. 하지만 곤충 채집을 하고 관련된 책만 읽는다고 곤충 박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곤충에 대해 많이 알고 싶으면 곤충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언제 사냥을 하고 몸에 있는 감각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하며 좋아하는 먹이가 무엇이며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알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관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묘사를 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아는 것과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듯이 마치 곤충들이 말하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면 그들의 감정(?)을 묘사하듯이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지식만으로는 안되고 인문학적인 소양이 갖춰진 저자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곤충학에만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자로서 풀어내는 능력도 상당했다. 그만큼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이 풍부하기에 가능하리라. 세계의 수많은 언어 중에서 내가 알기로는 유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자가 한자인데 곤충 이름 하나하나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니 놀랍기도 하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한자 뜻을 이리저리 해석하는 능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친구들이 실제로 그렇게 많은 사고를 쳤거나 사건사고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어릴 적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물자가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보다는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업 마치고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다 보면 세상의 근심 걱정이 없었는데 초등학생 시절부터 학원 뺑뺑이를 도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차라리 먹고사는 걱정도 없는 곤충들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배운 먹이 사슬을 보면 곤충을 개구리가 먹고 또 개구리를 뱀이 잡아먹는다고 배웠는데 그 시절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인지 마지막에 개구리와 뱀에 대한 이야기도 추가해주었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딸아이도 어릴 적에는 곤충이나 개구리를 만지고 좋아하더니 이제는 끔찍이도 싫어하는데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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