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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으로 보는 세계사 - 자르지 않으면 죽는다!
진노 마사후미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20년 2월
평점 :
학창시절 배웠던 고사성어 중 기억에 남는 것이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게 가장 잘 들어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그토록 오래된 2천 년도 더 지난 고사성어라는 사실을 몰랐다. 유방이 한나라를 일의 키는데 일등공신인 한신을 나라가 태평해지니 그처럼 무자비하게 죽음으로 내 몬 것을 보면 잔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남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무너진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역사란 어차피 승자의 기록인데 영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는 것인지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숙청이라는 게 왕조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지금도 보이던 보이지 않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애당초 인간들이 무리를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평화와 공존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중국 역사상 가장 나약하다고 평가를 받는 송나라의 경우 돈으로 평화를 샀다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저자는 그 이유 중 하나를 송나라를 건국한 조광윤이 다른 왕조들 처럼 숙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화적으로 왕권을 확립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도 아니고 왕조 국가의 경우 강력한 중앙 통치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권력을 쥐기 위해서 그리고 그 권력을 강력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피 튀기는 전쟁을 하였을 것이다. 인간만이 가진 잔인함이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리 생활을 하는 사자들도 자신의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다른 사자들과 싸움을 하여 자신의 자손이 아니면 모조리 물어서 죽여버리지 않는가? 물론 정도의 차이겠지만 인간과 크게 다를 바는 없는 것 같다.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에 항상 주변을 의식하고 의심하면서 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통신 수단이 발달한 것도 아니기에 언제 어디서 반란이 일어날지 모르고 또 피해를 입은 자손들이 복수를 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3족을 멸한다거나 심한 경우 9족 까지 멸한 경우가 많았다. 추가적인 전쟁으로 인한 더 큰 피해를 막고 근본적으로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내가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는 없다.
숙청이란 정적을 제거한다는 의미 외에도 소위 말하는 인종청소라는 개념으로 20세기에 수차례 이루어진 것을 보면 개인의 욕심에 의해 단순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와 다른 종교를 믿는다거나 혹은 다른 피부색을 지녔기에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감행한 숙청들. 어쩌면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 저자가 숙청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하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에 대해 나름의 논리를 전달하고자 했을까? 아니면 숙청의 당위성에 대해서. 우리가 숙청을 하거나 혹은 당하거나 할 수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현명하게 위기를 대처하는지 알려주고 싶어 한다기 보다 현재 중국이 처한 위기에 대해 경고하고자 함이었는지 모른다. 중국이 지금은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무역전쟁을 하는 듯하지만 마치 명나라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고 한다. 지나간 역사를 보고 이야기를 끼워 맞추는 것은 쉽다. 얼마든지 논리를 지어낼 수 있다. 저자의 예언과도 같은 분석이 현실로 나타날지는 모를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