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역사 - 인류의 기원에서 인공지능까지
호세 안토니오 마리나 지음, 윤승진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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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 부른다. 호모 사피엔스란 지혜가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생각, 지능이라는 개념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인류가 존재하는 영역을 문화라고 일컫고, 그 반대 급부를 자연이라 말한다. 자연은 무질서하고 규칙이 없는 혼돈의 세계인 반면 문화는 혼돈에 대항하여 질서를 향해 움직인다. 물론 자연은 혼돈상태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로 논리적 법칙이 존재하는 카오스 이론으로 자연은 혼돈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개념적으로만 생각하자. 어쨌건 문화란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인데 혼돈을 탈피하고 질서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은 '정의'와 '규범'을 만들어내었다. 인간의 삶의 터전인 문화란 사피엔스가 자신의 필요와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낸 발명의 총체이고 문화가 발전할수록 자연에서 멀어지게 된다.


지능은 이런 모든 문화를 생산하고, 문화는 다시 지능을 재창조하며 인류는 발전해왔다. 지능은 문자를 발명해 내고, 문자는 다시 지능을 설계하는 식인데 이런 메커니즘은 인간의 사회화라고 달리 부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이 지능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능과 문화는 하나의 루프처럼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류는 몇 차례 위대한 진보를 이뤄냈다. 책은 역공학의 개념을 대입하여 인간이 창조한 언어, 도구, 놀이, 종교, 예술, 과학, 법, 건축 등의 문화의 계보를 연구하여 인간의 지능과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문화를 4가지 핵심 키워드로 정리하여 인류의 시대의 변화를 구분한 후 인간의 지능을 분석하고, 사피엔스이 신비를 파악하고자 한다.


인류의 변화의 그 첫번째 축은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의 이전이다. 9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사피엔스는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이때만 해도 사피엔스는 선천적으로 DNA에 새겨진 생성지능에 따라 움직였다. 말하자면 아직 사회화에 따른 공진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다. 그러다가 더 잘 살고, 편하게 살고자 하는 사피엔스의 욕망에 의해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옮겨갔고, 저자는 이 사건을 인간의 모험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로 보며 첫 번째 축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과정을 통해 사피엔스는 큰 집단을 이뤄서 사는 법을 배웠고, 그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공진화를 통한 공간과 네트워크의 형성과정에 사피엔스는 자연스럽게 사회화를 이룩하고 문명을 쌓아올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사피엔스와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문명과 자연이라는 경계로 나눠지는데 농경생활의 시작이 문명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보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두 번째 축의 시대는 종교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첫 번째 축의 시대에서는 도시라는 외부 관계에서 공유된 사회적 지능의 확장이었다면 두 번째 축의 시대에서는 종교를 필두로 한 정치, 경제적 영역에서 자성에 관한 자신에게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그 특징으로 지혜의 축이 사회에서 내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테스형은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낼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많은 종교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들은 사회화와는 다른 형태로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종교는 경제와 정치라는 방면으로 확장되어 성찰과 보편성, 추상적 관념을 한 단계 끌어올리게 된다. 철학과 정치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아했는데 예컨데 정치의 보편적인 확실성을 확립하는데 철학적 이성이 활용되는 식이라고 한다. 철학적 성찰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 내면을 탐험하는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성적 보편성을 추구하며 법의 개념을 만들어내었고, 강력한 상징성을 부여한 집단적 창조물이 돈이라고 한다.


세 번째 축은 창조자로서의 변모이다. 이전까진 종교와 정치적 가치에 따라 신과 군주에 대한 복종이 가장 큰 미덕이었지만 신의 피조물이었던 사피엔스는 스스로 자유롭고 자주적인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며 스스로를 창조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반항심이 가져온 축의 전환이라고 말하는데 신에 의해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진 자연법이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되며 지능의 해방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카뮈는 현대의 인간을 반항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여기서 창조라는 것이 기계나 장치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과 군주 중심이었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사고로 전환하여 인간,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고 지식적 진화를 해나간다는 의미이다. 창조적인 생성지능을 가지는 것에는 그러한 생각을 선택하는 관리지능이 필요하고, 관리지능이 행동을 제어한다면 선택 기준은 가장 높은 차원의 지식 능력이라고 한다. 결국 지능의 역사는 선택 기준이 진화로 귀결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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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일본어 JLPT N1 (일본어능력시험) 한 권으로 합격 - 기본에서 실전까지 4주 완성 / 기본서 + 실전모의고사 4회분 + 단어·문형 암기장제공 해커스일본어 JLPT 한권합격
해커스 JLPT 연구소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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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N1 시험에 합격을 했지만 오랜시간 손을 놓았던터라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학원에 가기도 애매한지라

혼자 공부를 하고는 있는데 역시나 독학은 힘이 드네요

독학으로 공부를 할 때는 무엇보다 적당한 교재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해서

어떤 교재가 좋을지 검색을 하다보니 해커스에 대한 글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기본부터 실전모의고사, 단어/문형 암기장까지 책 한권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가장 실용적이고 편리할 것 같네요

예전엔 교재를 많이 보는 것이 좋다고 여겨서 기본서 따로, 단어집 따로, 모의고사집 따로

각각 교재를 사서 여러권으로 공부를 했었는데

책이 많다보니 집중이 안되고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했었죠

오히려 제대로 된 한권을 여러번 완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니

교재 한 권으로 준비할 수 있는 해커스로 간편하게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좋을 것 같네요

독학을 할 때 또 어려운 점이 자칫 설명이 부족해서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정답을 암기하는 수준에서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이 책은 수록된 모든 문제들에 대해 상세한 해석과, 해설, 어휘정리까지 잘 정리되어 있어서

내용과 설명이 부족하지 않고 꼼꼼하게 익힐 수 있을 것아서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mp3 파일로 가장 취약한 청해도 잡을 수 있고, 인강까지 제공하고 있다니

보고, 듣고, 읽으며 공부하면 효과도 두배 세배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힘들게 공부하는 만큼 꼭 합격하고 싶은데 해커스가 그 꿈을 이뤄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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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내 뼈 - 난생처음 들여다보는 내 몸의 사생활
황신언 지음, 진실희 옮김 / 유노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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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내 몸과 내 뼈를 주제로 써내려간 독특한 컨셉의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라고 하는데 생활인과 의사로서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일상의 순간을 몸 구석구석의 신체와 연결지어 일상 이야기와 신체 해부학, 의료 임상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 그다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32개 신체 기관에 대해 탐색한다. 얼굴, 몸 같은 외부의 신체기관 뿐 아니라 뼈, 자궁과 난소, 심장, 폐 같은 보이지 않는 속 이야기도 하고 있다. 우리 신체를 머리와 목, 가슴과 배, 몸통과 사지, 골반과 회음의 4부분으로 나누어서 구성하였다. 특히 신체 중에서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발가락이나 충수, 대망 같은 부위와 말하기를 터부시하는 포피, 항문 같은 기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서 평소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우리 신체 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신체에 대한 에세이라고 해서 대놓고 신체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에피소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체의 이야기로 넘어가며 신체 기관의 기능과 작용을 작가가 만나는 일상과 버무려서 풀어가고 있어서 책은 지나치게 의학적이라거나 기능의 설명에 치우쳐있거나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타의 에세이와 다르지 않은 형식을 보이고 있다. 모딜리아니의 전시회에서 만난 그림 속의 여인의 길다란 목, 텔레비전에서 본 카얀족 여인의 목, 해부학 교과서에서 하나의 챕터를 차지하는 목 등 생활인으로서의 일상과 의사로서의 일상에서 접한 목에 대한 각기 다른 인상과 이미지를 그려내는 식이다. 몸에 대한 에세이라고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몸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대해서 말하거나 세상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소위 일반적인 관점과 신체의 의학적인 관점에서의 고찰, 그리고 그 의미도 생각해보는 등 몸을 매개체로 하여 온갖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의학적인 지식이 있는 의사들은 평소에도 인체를 보고 관찰할 때 뭔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보통 사람들은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신체의 작은 징후들에서 신체의 신비를 잡아내고, 특별한 에피소드에서 신체에 대한 이야기가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되려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에서 몸의 기관을 연관지어 이야기를 한다. 통근 버스의 빈자리에서 이전 승객의 엉덩이의 뜨끈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엉덩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서 멋진 뒤태를 위한 엉덩이 보형물 삽입 수술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또 저자는 버스 빈자리에 남은 엉덩이의 온도를 몸 아래 짓눌린 열정이고, 엉덩이의 온도가 버스 좌석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표현한다. 의사의 입으로 이런 덜 전문적이고, 덜 의학적인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책은 전체적으로 튀지 않는 문체로 잔잔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러다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표현이나 재미있는 문구가 나오기도 해서 글은 어렵지 않게 읽히고, 지루하지도 않아서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와 전문적인 이야기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어서 생활 속의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들과 함께 신체 기관에 대한 몸의 구조적 지식도 얻을 수 있는 점도 좋다. 의사이자 작가라는 위치가 주는 전문성과 문학성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관점의 베이에이션을 폭넓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만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인간미가 많이 느껴지는데,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신체나 기능에 대한 이야기보다 사람에 대한 에피소드에 집중하기 때문에 저자의 생명과 인간성을 중요시 여기는 마음이 전해진다. 생각해보지 못한 여러 관점으로 우리 몸의 여러 기관에 대해 생각해보며, 몸과 삶, 인간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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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 고대·중세 편 - 고대·중세 철학자 18인의 삶과 철학 이야기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이즐라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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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철학을 참 좋아한다. 삶의 방식이나 인생의 방향성을 철학에서 찾기도 하고, 생활 속의 고민이나 내적 갈등의 해결에도 철학의 지혜를 빌려 해결하고자 한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약간은 중2병스러운 인간의 근원적인 고민에 대한 답 역시 철학에서 얻으려 한다. 심지어 영화를 보고도 그 속에서 철학적 함의를 찾고자 한다. 이렇게 우린 철학을 참 좋아하고, 실제로 인생의 굴곡진 순간순간마다 철학은 우리에게 응답을 했고,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철학은 그 효용성을 보여준다. 고민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며, 문제없는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잠못드는 새벽은 있기 마련이다. 우린 매시간, 매순간 철학을 필요로 하는 인생을 살고 있으며, 철학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철학을 공부하게 되는데 이 철학이라는 학문은 너무나 어렵고, 복잡하고, 양도 방대하다. 하지만 기껏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가도 철학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깊은 좌절감만 맛보고 책을 덮게 되는 일이 반복된다. 물론 철학자들의 어려운 철학 개념이나 사상을 몰라도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가질 수는 있지만, 실제 철학자들의 사상과 철학개념을 이해하고 거기에 사유의 시간이 더해지면 근본없는 개똥철학도 깊이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어렵더라도 한번쯤 철학사를 공부해보면 좋을텐데 이왕이면 어렵고, 무겁고, 방대한 서양철학을 좀 더 쉽고, 가볍게 이해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은 어려운 철학자와 철학개념을 쉽고 가벼운 만화로 전달해준다. 웹툰형식으로 스무명의 고대·중세 철학자와 그들의 철학개념을 소개하는데 가벼운 만화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 내용까지 가볍지는 않다. 만화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뿐이지 그 내용들은 여전히 깊고 심오한 철학의 지식을 잘 담고 있는데 실제로 만화라지만 텍스트도 많은 편이라 설명이 촘촘하게 잘 되어 있어서 내용 전달에 신경을 쓴 것이 느껴진다. 하나의 챕터당 한명의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주장한 대표적인 철학 개념과 그것을 풀이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어 하나의 웹툰을 다 읽으면 한명의 철학자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책의 특징은 철학자들의 철학 개념을 소개하는 것이 메인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질문, 호기심을 던져놓고 철학 개념으로 그것을 설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철학책은 철학 개념과 사상을 소개하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데 집중하는 반면 여기서는 그 개념들을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질문과 호기심을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챕터 첫머리에 사상과 이론을 먼저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하나의 질문과 호기심을 제시하고 그것을 철학의 개념을 활용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형식을 취하며 철학의 효용을 직접 보여주는 형태를 보인다. 이는 앞서도 말했던 우리가 철학을 배우려는 목적대로 철학적 사고를 통해 생각의 깊이를 확장시켜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저자는 철학책을 읽어도 의문만이 남을 뿐 철학이 답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인생에 정답은 없으므로 철학이 딱 떨어지는 답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배우게 된다. 올바른 답에만 연연해하다보면 정작 쫓아야 할 것을 놓치게 된다. 적절한 질문과 올바른 사고의 과정만 있다면 그건 옳은 답이고 그게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프로세스이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앞서 말한대로 철학을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도구로 활용하며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며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식이라고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

거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거의 모든 분야를 탐구했던 거의 모든 학문의 아버지.


철학자 중엔 철학이란 한 우물만 판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학문에 호기심을 느끼고 여러 학문을 탐색하는 철학자가 더 많다고 한다. 그 중 갑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탐구했으며, 체계적으로 학문을 정리하고 분류했다고 한다. 자연과학과, 논리학, 생리학, 물리학, 천문학, 수사학, 윤리학, 정치학, 예술이론에까지 많은 연구를 하고, 성과도 내었다. 그 중 논리학과 철학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논리학은 모든 학문의 예비지식이라 다른 분야를 공부하기 전 올바른 사유의 방식을 익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스승인 플라톤에서 시작했지만 당시 주류였던 플라톤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확립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반대한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호기심이 다양한 관점으로 이어지고, 다양한 관점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우리도 최근엔 깊고 좁은 지식보다는 얕고 넓은 잡학다식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게 되었다. 각각의 분야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라면 그 창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를 다른 관점으로 생각할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양한 시각과 새로운 생각의 실마리는 여러 창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철학사에서 플라톤에 비견할 유일한 사람으로 보는데 다양한 분야에 대한 끝없는 지식욕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는다면 세상을 보는 창이 많아지고, 그만큼 세상을 보는 관점도 한가지로 고정되지 않게 될 것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단순히 지적허영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큰 창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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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공감 안 되는 거였어? - 현직 대중문화 기자의 ‘프로 불편러’ 르포, 2021 청소년 북토큰 선정도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1년 세종도서 하반기 교양부문 선정作 파랑새 영어덜트 2
이은호 지음, 김학수 그림 / 파랑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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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은 가슴만 큰 멍청이고, 동양인은 수학을 잘하고, 한국인은 돈벌레에, 흑인들은 힙합 스타일의 옷을 입고 모두 총을 가지고 다닌다. 과학자는 산발을 하고 광기에 사로잡혀 있으며,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하나같이 뚱뚱하고 지저분한 오타쿠이다. 무리 중 뚱보 캐릭은 항상 어눌하고 행동이 느리며 먹을 것만 찾고, 마르고 키작은 아이는 말이 많고 까불거린다. 영화 등의 대중문화 속엔 이런 정형화된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인종이나 성별, 연령, 계급, 직종 등에 대한 고정관념인데 이런 특정한 이미지는 편견을 넘어 때로는 혐오의 텍스트로 쓰여지기도 한다.


물론 고정관념이란 것도 어느 정도의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인식이므로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이미지가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보다 과장되게 정형화되어 그려지며 그러한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 하는 부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기반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교육된 것이므로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이미지는 그 당시의 시대상에 국한되고, 시대의 변화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계속 바뀌게 된다. 그러나 영화 속의 스테레오 타입의 이미지가 그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영화가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괴리감을 가지게 될 때 공감받지 못하고, 누군가에겐 불편하게 느껴지게 된다.


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공감이란 말의 허상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봐야 하겠다. 애초에 공감이란 서로의 동일한 경험이나 공통된 것을 감지해내어 하나로 향해 가는 감정이다. 말하자면 공통된 경험을 기반으로 한 공통의 감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경험이나 공통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서로 공감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생리를 해본 적이 없는 남자가 여성의 생리의 고통에 어떻게 공감할 것이며, 출산의 경험이 없는 남자로서는 그 고통에 결코 공감할 수가 없다. 가져보지 못한 시간과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을 공감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은 마치 먹어보지 못한 음식의 맛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의 맛은 절대 느낄 수가 없다. 다만 설명에 의해 이해하게 될 뿐이다. 똑같이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동일한 감정, 공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병적으로 공감을 강요한다. 물리적으로 공감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까지 공감을 강요하니 자꾸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아이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공감하라는 것처럼 어떤 영역과 관계에서의 공감이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프로세스인 셈이다. 정말이지 공감이란 말에 나만 공감 안 되는 거였어? 라고 묻고 싶다. 그렇다고 상대와의 소통과 연대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너와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타인과의 동일시를 전제하는 공감이 아니라, 너와 나의 구분을 전제하면서도 너의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존중한다는 감정이입의 마음, 똘레랑스가 있다면 함께 연대하고, 화합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공감보다는 감정이입, 똘레랑스, 존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공감이 안되니 혐오하고 조롱하게 되고, 그것을 오락거리로 삼는 것이다. 공감을 버리고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고, 너그럽게 감싸는 똘레랑스를 가진다면 차별과 혐오로 발생하는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82년생 김지영]을 그동안 영화계에서 소외됐던 여성들의 서사들 담아내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김지영은 가장 보통의 한국 여성이며 한국 여성이 당하는 차별과 억압을 보여준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여성의 피해를 과장해서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 영화가 여성이 받는 극심한 차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과장하거나 부풀리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요는 차별이 실제로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실제하는 차별을 인정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남녀차별을 부정하거나 그것이 실제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진 않는다. 분명 한국은 남녀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차별의 정도와 수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이 영화의 주 타켓층인 2030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해보자. 과거 7~80년대 어머니 세대가 2030일 때 받았던 차별과 21세기 현재의 2030 여성들이 받는 남녀차별은 결코 똑같지 않을 것이다. 남녀차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정도와 수준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차별의 강도는 낮아졌으나 정신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차별의 강도는 똑같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있겠지만 차별의 절대적인 수준과 강도가 예전보다 약해졌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영화는 과거 어머니가 받았던 남녀차별을 현재의 그것과 동일시하여 모든 한국 여자는 어머니와 같은 피해자라고 말한다. 물론 남녀차별이란 측면에서 모든 여자는 피해자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지금의 2030들이 어머니 세대와 같은 수준의 차별을 받고 있나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7~80년대의 차별을 현재로 가져와서 현재의 2030이 그런 차별을 당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과장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런 수준의 차별을 당하고 있는 여성들도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저자가 말했듯 21세기 현재 '가장 보통의 한국 여성'이 겪는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동의하기 어렵다.


많은 여성들이 영화를 보고 '공감'했다고 하는데 적어도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들이 며느리의 고통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의 감정을 마치 내가 경험한 양 그 고통에 싱크로하여 분노하는 것은 한마디로 거짓이다. 딸의 입장에서 엄마가 당한 것을 기억하며 분노하거나,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통에 분노한다면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이입, 똘레랑스여야 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김지영이 엄마가 받은 차별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을 빙의라는 형태로 풀어내었다. 빙의, 다른 누군가의 영혼이 나에게 들어와서 내가 마치 그 사람인양 생각하고 느끼는 것. 이건 말그대로의 감정이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정이입이 아니라 공감을 키워드로 내세웠고, 심지어 남성에게까지 김지영에게 공감을 강요하며 그러지 않는 남성들을 적대시하였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의 영화인데 공감을 강요하니 당연히 트러블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가 여성이 받는 극심한 차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지 않는다. 또 그 차별을 과장하거나 부풀리지 않았다는 입장에도 크게 반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이 여성이면 누구가 겪게 되는 보편적인 것이냐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보편적이지 않은 경험을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는 다르고,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차별이 잘못되었고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격하게 동의한다. 다만 영화가 그것을 다루는 형식과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가 소위 '공감' 안된는 거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다른 영화에는 공감 못하면서, 유독 이 영화에는 공감하는 것에도 공감 못하겠다.


책엔 흑인, 뚱뚱한 사람, 장애인, 여성, 조선족 등의 특정 대상을 영화가 어떻게 다루고 있으며, 어떤 차별과 편견의 이미지로 그려지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그런 이미지가 형성된 원인과 그로 인해 촉발된 여러 사회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영화는 현실을 담고 있어서 사람들이 가지는 현실에서의 이미지가 영화에 투영되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차별과 편견을 가지게 된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런 이미지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실제보다 좀 더 극적이고, 과정되어 그려지게 되고 그런 재생산된 이미지를 통해 편견과 차별은 커져서 혐오의 수준으로까지 확장되며 차별과 편견이 가속화된다는 점이다.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인식이 널리 퍼지면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잡고 누군가 특정 집단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게 된다. 영화가 만들어낸 차별과 편견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게 되기 전에 끊임없이 불편해하고 이의를 제기해야 잘못된 혐오와 편견의 인식을 깰 수 있을 것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심플하다. 영화나 대중문화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지는 차별의 코드와 혐오의 테스트,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사회분위기에 딴지를 거는 것이다. 소위 삐딱하게 보기. 기존의 관성에 빠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차별과 혐오를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경계하고 잘못되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분명 책에서 문제제기를 하기 전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이건 공감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공감이라는 코드 때문에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희화화하는 그 대상은 타자이고 나와 동일시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애초에 나와의 교집합이 없는 타자에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저자가 말한 '공감이 안된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주장하는 바에도 적극 동의한다. 다만 공감이란 말 대신 감정이입과 이해의 코드로 접근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어쨌건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차별과 편견, 혐오의 코드를 살펴보고,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채 그런 잘못된 관념에 빠져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고, 그러한 이미지를 깨기 위한 노력을 위한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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