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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내 뼈 - 난생처음 들여다보는 내 몸의 사생활
황신언 지음, 진실희 옮김 / 유노북스 / 2021년 2월
평점 :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내 몸과 내 뼈를 주제로 써내려간 독특한 컨셉의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라고 하는데 생활인과 의사로서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일상의 순간을 몸 구석구석의 신체와 연결지어 일상 이야기와 신체 해부학, 의료 임상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 그다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32개 신체 기관에 대해 탐색한다. 얼굴, 몸 같은 외부의 신체기관 뿐 아니라 뼈, 자궁과 난소, 심장, 폐 같은 보이지 않는 속 이야기도 하고 있다. 우리 신체를 머리와 목, 가슴과 배, 몸통과 사지, 골반과 회음의 4부분으로 나누어서 구성하였다. 특히 신체 중에서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발가락이나 충수, 대망 같은 부위와 말하기를 터부시하는 포피, 항문 같은 기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서 평소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우리 신체 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신체에 대한 에세이라고 해서 대놓고 신체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에피소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체의 이야기로 넘어가며 신체 기관의 기능과 작용을 작가가 만나는 일상과 버무려서 풀어가고 있어서 책은 지나치게 의학적이라거나 기능의 설명에 치우쳐있거나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타의 에세이와 다르지 않은 형식을 보이고 있다. 모딜리아니의 전시회에서 만난 그림 속의 여인의 길다란 목, 텔레비전에서 본 카얀족 여인의 목, 해부학 교과서에서 하나의 챕터를 차지하는 목 등 생활인으로서의 일상과 의사로서의 일상에서 접한 목에 대한 각기 다른 인상과 이미지를 그려내는 식이다. 몸에 대한 에세이라고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몸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대해서 말하거나 세상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소위 일반적인 관점과 신체의 의학적인 관점에서의 고찰, 그리고 그 의미도 생각해보는 등 몸을 매개체로 하여 온갖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의학적인 지식이 있는 의사들은 평소에도 인체를 보고 관찰할 때 뭔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보통 사람들은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신체의 작은 징후들에서 신체의 신비를 잡아내고, 특별한 에피소드에서 신체에 대한 이야기가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되려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에서 몸의 기관을 연관지어 이야기를 한다. 통근 버스의 빈자리에서 이전 승객의 엉덩이의 뜨끈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엉덩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서 멋진 뒤태를 위한 엉덩이 보형물 삽입 수술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또 저자는 버스 빈자리에 남은 엉덩이의 온도를 몸 아래 짓눌린 열정이고, 엉덩이의 온도가 버스 좌석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표현한다. 의사의 입으로 이런 덜 전문적이고, 덜 의학적인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책은 전체적으로 튀지 않는 문체로 잔잔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러다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표현이나 재미있는 문구가 나오기도 해서 글은 어렵지 않게 읽히고, 지루하지도 않아서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와 전문적인 이야기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어서 생활 속의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들과 함께 신체 기관에 대한 몸의 구조적 지식도 얻을 수 있는 점도 좋다. 의사이자 작가라는 위치가 주는 전문성과 문학성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관점의 베이에이션을 폭넓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만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인간미가 많이 느껴지는데,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신체나 기능에 대한 이야기보다 사람에 대한 에피소드에 집중하기 때문에 저자의 생명과 인간성을 중요시 여기는 마음이 전해진다. 생각해보지 못한 여러 관점으로 우리 몸의 여러 기관에 대해 생각해보며, 몸과 삶, 인간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