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페이지 과학 : INSTANT SCIENCE - 한 페이지로 넘기는 과학의 역사·원리·발견
제니퍼 크라우치 지음, 박성래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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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심도 있고, 깊이 있는 전문적인 지식보다 가볍게 이해할 수 있는 개론적인 수준의 폭넓은 다양한 지식을 가지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느끼게 되었다. 물론 지식이라는 것은 당연히 많이 아는 것이 좋으므로 깊게 파고들어 전문성을 가지고 디테일하게 아는 것이 가장 좋지만 자칫 한우물만 파다보면 그 외의 것엔 무지한 상태가 되기도 쉽고, 굳이 필요 이상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봤자 일상에선 그다지 써먹을 데도 없다. 그리고 모든 방면에 전문적인 깊은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어렵다. 반면 얕아도 넓은 지식이 있으면 어떤 대화에서도 끼어서 말을 할 수가 있고, 다양한 지식이 밑바탕이 되어 편협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그런 식의 지식 추구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최근에 유행한 지대넓얕이나 알쓸신잡 같은 미디어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하겠다. 지대넓얕이나 알쓸신잡은 깊이 있는 내용보다 짧게 핵심만 간추려서 소비할 수 있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런 식의 짧고 핵심만 간추려서 정보를 알려주는 방식은 숏폼 플랫폼에 익숙한 mz세대의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SNS 시대가 되면서 동영상과 사진, 짧은 글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 이젠 긴 콘텐츠는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핵심만 간결하게 전하고 짧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숏폼 콘텐츠는 짧고 핵심적인 지대넓얕 지식을 전하는데는 최적화된 방식이기도 하다. [1페이지 과학]은 어렵고 복잡한 과학 지식을 1페이지로 요약하여 짧고 간단하게 핵심만을 쏙쏙 짚어준다. 


많은 분야 중에서 특히 과학 분야는 워낙에 어렵기도 하거니와 철학, 문학, 예술 분야와는 달리 과학은 실생활에서 상대적으로 쓰임이 적고, 대화의 소재로 언급되는 빈도도 낮기 때문에 굳이 지식대화를 위해서나 상식차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학교도 졸업한 지금 쓸데도 없는 과학을 배워서 뭐하냐고 생각하고 과학 쪽으로는 아예 눈도 안 돌리고, 없는 세계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도 많을텐데 하지만 과학만큼 우리 생활에 깊게 파고들어있는 것도 없다. 다만 대부분이 과학적 원리는 모른채 그 결과물만을 취하고 있어서 인식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지금도 과학은 계속 발전하고 그것이 기술이 되고 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과학이란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상식을 키운다면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질 것이다.


과학은 많은 섹션이 포함된 집합적인 학문으로 책에서는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지질학, 생태학, 기술로 분야를 나누어서 다루고 있다. 과학에 수학이 포함되는 것이 의아했지만 과학이 설명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학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므로 과학과 수학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책은 책의 제목처럼 하나의 페이지에 하나의 지식을 압축하여 설명해놓은 형식이다. 모든 주제가 한 페이지로 설명이 되고 있어서 설명하고자 하는 과학 지식의 핵심만을 요약해서 한눈에 볼 수 있다. 모두 독자적인 내용이므로 관심있는 분야부터 읽어도 되고,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도 되겠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페이지의 레이아웃이다. 책의 페이지 구성이 깔끔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한눈에 내용이 들어온다. 페이지 전체에 걸쳐 한줄씩 써내려가는 일반적인 구성이 아니라 잡지처럼 다단나누기를 해놓아서 공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가독성도 높혀서 전체적으로 매우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다. 마치 잘 정리된 대학노트 필기를 보는 것 같다. 컬러풀한 그림과 글박스도 적극 활용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어서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최대한 쉽고 잘 정돈된 형태로 취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어서 책으로 접할 수 있는 지식들도 다양한데 백신과 예방접종, 세균학과 미생물학 같은 요즘 한창 관심이 많은 내용도 있고, 오랜만에 만나는 주기율표나 화학반응 같은 내용도 있고, 슈뢰딩거와 케플러의 법칙, 상대성이론, 힉스보손, 입자가속기 같은 어디선가 들어는 봤는데 정확히 내용은 모르고 있는 것들도 다루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내용들은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고 예전에 열심히 외웠던 기억도 떠오른다. 새롭게 대두되는 과학 원리도 나오고, 관심은 있으나 너무 어려워서 그냥 넘어간 내용들도 있어서 하루 한 페이지씩 부담없이 읽다보면 다양하고 폭넓은 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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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의 정원 - 빨강 머리 앤이 사랑한 꽃, 나무, 열매 그리고 풀들
박미나(미나뜨) 지음, 김잔디 옮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 지금이책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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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처음 앤이 기차역에서 매튜 아저씨를 만나 마차를 타고 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 도중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지나는 장면이다. 그 길은 앤에겐 희망과 행복으로 가는 통로였다. 앤은 그 길에 기쁨의 하얀길이라는 자신만의 이름을 붙이고 쉴새없이 수다를 떨었다. 물론 원작은 벚꽃이 아니라 벚꽃과 닮은 사과나무지만 어릴 적 봤던 TV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앤과 벚꽃의 이미지가 깊게 각인되어버렸다. 어쨌건 만개한 사나과무 꽃길 사이를 지나는 그 장면은 마침 벚꽃이 만개한 지금 이 시기와 딱 맞아떨어진다. 거리 곳곳에 피어있는 벚꽃나무 아래를 거닐다보면 그곳은 나만의 기쁨의 하얀길이 되고, 앤처럼 괜시리 희망과 행복에 젖어들게 된다.



앤은 손가락에 키스를 담아 벚꽃 너머로 날려 보낸 다음,

양손으로 턱을 괴고 바다 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황홀한 공상에 빠졌다


빨강 머리 앤 소설에는 유독 꽃과 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가 시골인 이유도 있겠지만 나무 한그루, 작은 꽃 한송이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며 자신만의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처럼 소통하는 앤의 몽상가적 기질 때문에 소설 속 정원과 초원의 꽃과 나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앤의 성격과 감정,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외로운 앤에게는 꽃도 나무도 이름 모를 들풀까지도 모두 식물 이상의 존재였다. 그런데 식물과 마음을 나누고, 대화하며 기뻐하고 위로받는 모습을 단지 상처받은 인생이 지금을 견디는 방법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정서가 담겨 있다. 앤이 식물과 교감하며 친구로 지내는 모습은 앤의 외로움이 아닌 앤의 감수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어디선가 영혼은 꽃과 같다는 글을 읽었어." 프리실라가 말했다.

"그럼 네 영혼은 골든벨수선화일 거야." 앤이 대답했다


이런 이유로 빨강 머리 앤에는 많은 식물들이 등장하고, 앤이 식물들을 특별하게 생각했던 것만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그저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처럼 다가오게 된다. 이 책에는 빨강 머리 앤 시리즈에 나오는 식물들 중 총 72개의 꽃과 나무, 열매와 풀들이 수채화로 그려져 있고, 앤의 대사와 풍경을 묘사한 문장들이 한 편의 시처럼 함께 담겨 있다. 식물들의 수채화 그 자체도 너무 예쁘게 그러져 있지만 소설 속의 대사와 글귀들도 인스타 감성글처럼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보통 소설 속의 풍경을 묘사하는 문구는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접해야 느낌이 사는데 꽃이나 나무의 일러스트와 함께 그것을 묘사하는 글귀를 함께 보니 텍스트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감성이 쏟아진다.



​헤이즐은 다락방에서 앤에게 영혼을 나누어 주었다. 

이 방에서는 항구 위에 드리운 초승달과 늦은 5월 창문 아래에 핀

진홍색 튤립에 쏟아지는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소개된 식물 중엔 어떤 장면에서 등장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들도 많지만, 기쁨의 하얀길의 사과나무 꽃처럼 매우 인상적인 꽃과 나무도 보여서 책에서 읽었던 장면이 떠오르며 마지 오랜 친구와 재회한 것처럼 반갑고 아련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기억에는 없는 구절이지만 예쁜 꽃 일러스트와 함께 글을 읽고 있자니 머리 속으로 그 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떠오르는 것 같다. 앤이 온 마음을 담아 가느다란 자작나무 줄기에 뺨을 갖다대는 장면, 흔들의자에 앉아 꽃을 피운 푸크시아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앤의 모습, 화려한 참나리 화단 옆에서 서로 수줍게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는 앤과 다이애나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꽃의 일러스트가 그 장면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다이애나가 숲 뒤편에 검정백합이 피는 곳을 보여주겠대요.

다이애나의 눈은 정말 그윽하지 않나요?

제 눈도 다이애나처럼 그윽했으면 좋겠어요."


책에 나온 문장이 기억에 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빨간 머리 앤은 앤이 초록 지붕 집으로 와서 매튜 아저씨, 마릴라 아줌마와 함께 살며 다이애나와 우정을 나누고 길버트와 툭탁거리는 소녀 시절의 앤으로만 기억하는데 사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앤을 주인공으로 하여 유년기, 중년기, 노년기에 이르는 연작을 썼다고 한다. 우리가 TV 애니메이션으로 접하기도 했던 그 빨강 머리 앤은 앤 시리즈의 첫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이후의 앤 시리즈도 다루고 있어서 처음 보는 문장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미처 몰랐는데 이렇게 글을 읽어보니 몽고메리의 글들은 마치 시와 같아서 감성적이고 참 예쁘다고 느껴진다. 감수성이 넘치는게 극중 앤의 감수성이 작가 몽고메리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첫눈에 반하셨어.

손님용 방에 머무르셨는데 이불에 라벤더 향기가 배어 있었대.

아버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어머니를 생각하셨다고 해."


재미있게도 책을 펼치면 꽃향기가 난다. 생생한 꽃 일러스트 때문에 꽃 내음이 느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페이지에서 향이 난다. 책은 비닐커버가 씌여져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향수를 뿌린 건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처음부터 향기가 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기분 탓일까? 하지만 정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봄바람에 향긋한 꽃내음이 날려오듯 좋은 향이 페이지를 타고 풍겨와서 괜히 가슴이 설레인다. 언젠가 책에 있던 향이 다 날라가버린다면 꽃향기가 나는 향수를 살짝 뿌리고 책을 읽어야겠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꽃향기가 퍼지는 것이 너무 좋은 기분이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말이야. 초록색 지붕 아래 도랑에서 

보라색 제비꽃이 피고 연인의 길에서 고사리가 머리를 내미는 모습을 떠올리면

에이번리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표지에 미나뜨 일러스트라고 써 있어서 일러스트의 한 장르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박미나 작가의 필명이 미나뜨라고 한다. 미나뜨 작가의 일러스트는 부드럽고 섬세하다. 꽃잎 하나하나, 잎사귀의 잎맥과 꽃술 하나까지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했고, 잎의 말라버린 흔적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마치 백과사전에 삽입된 삽화처럼 현실감이 넘친다. 색감도 부드럽고 은은해서 포근함을 전해주는게 참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이다. 요즘처럼 꽃이 활짝 피는 봄날엔 앤의 정원을 거닐며 주근깨 소녀 앤처럼 소녀감성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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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생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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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벌레보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마치 벌레처럼 작고, 하찮은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미 벌레에는 하찮다는 무시, 괄시, 천시,멸시, 등한시하는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벌레를 대하는 현대의 인간들의 스탠스는 주로 박멸하고 죽이는 행태를 많이 보인다. 그로 인해 도시에서는 벌레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예전엔 도시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벌레를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젠 그 흔한 나비, 잠자리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곤충들은 다른 생명체와 서로 공존하고 있지만 인간은 벌레는 하찮다는 인간의 시선으로 해충과 익충으로 구분하여 생사여탈권을 쥐고 생명체에게 고통을 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린 그 작은 생명체에게서 삶에 대한 큰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충선생]은 한자 이름에 벌레 충虫자가 들어가는 벌레 21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라는 것이 파브르 곤충기 같은 단순한 곤충에 대한 자연과학적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 철학과 문학 등이 가미된 인문학적 접근을 하고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충선생은 한국의 고전 문학에서 자주 보이는 가전체소설의 느낌도 준다. 서양식 자연과학적인 관찰이 아니라 곤충과 인간을 함께 두고 인간과 함께하는 그 어울림 속에서 곤충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충선생들은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충선생,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는 충선생, 지상에 사는 충선생, 해충으로 알려진 충선생 그리고 충선생이 아닌데 이름에 벌레 충 虫자가 들어가는 개구리, 두꺼비, 지렁이, 뱀과 같은 파충류까지 다섯 그룹으로 묶어서 소개하고 있다. 곤충의 형태, 행동과 생태 등 가장 기본이 되는 자소서부터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충선생의 흔적이나 문학과 고사에 등장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알아보기도 하고, 곤충이 가진 특징과 연결되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말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곤충과 관련된 온갖 장르의 인문학적 내용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는 곤충에 어원이 있는 것들도 있는데 책에는 그런 단어를 하나 소개하고 있다. 고혹하다는 말은 아름답고 매력적이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고는 접시 속 벌레라는 뜻이라 한다. 접시 속의 벌레와 매력적이라는 의미는 전혀 매치가 안되는데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한자 蠱(고)는 접시 위에 벌레가 놓여있는 형태인데 글자 모습대로 지네, 독거미, 전갈 같은 독충을 접시에 담고 뚜껑을 덮어두면 서로 배틀로얄을 벌이다 한마리만 살아남는다. 이 최후의 승자를 고충이라 불렀고, 고충에게는 주술의 힘이 있어서 고충을 통해 주술을 걸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질일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고혹이란 주술로 마음을 움직일 정도의 매력이란 뜻.


속담이나 고사성어에 등장하는 충선생도 있는데 그중 유명한 것으로 형설지공과 낭형조서에 나오는 반딧불이가 있다. 부잣집 자제분들은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지만 가난한 아이는 주머니에 반딧불이를 넣고 그 빛으로 공부했다는 고사이다. 일본에는 '우는 매미보다 울지 않는 반딧불이가 몸을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입으로 왈가왈부하는 사람보다 조용히 실천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왜 하필 매미와 반딧불이를 비교했냐면 이 둘의 생애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매미는 땅 속에서 7년을 보내다 어른이 되면 땅 밖으로 나와 바로 며칠만에 죽고 만다. 짧은 전성기 동안 짝짓기를 하기 위해 그렇게 울어재끼는 것이다. 반딧불이도 성충이 되면 입이 퇴화되어 이슬만 먹고 2주를 살다 단명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짝짓기를 해야 하는데 반딧불이는 매미처럼 우는 대신 불을 깜빡이며 짝짓기 상대를 찾는다. 녀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목숨을 다해 살아가는데 매미가 낫네 반딧불이가 낫네하며 재단하면 안된다.


반딧불이가 입이 퇴화되었다면 눈과 발이 퇴화한 충선생이 있는데 바로 지렁이 되시겠다. 지렁이를 토룡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로는 토룡이 아니라 구인(蚯蚓)이라고 한다. 우선 지렁이는 곤충이 아니다. 이름에 벌레 충 虫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충선생에 끼워줬을뿐 곤충이 아니다. 그럼 왜 지렁이를 뜻하는 구인이란 글자에 벌레 충 虫자가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지렁이 蚯자가 지렁이가 쌓아놓은 배설물 덩어리를 의미한다니 똥무더기(丘) 옆에 벌레(虫)가 꼬인다는 느낌을 표현한 것 같다. 어쨌건 지렁이는 햇빛이 안 드는 축축한 땅속에 사는 동물이다. 비가 오면 땅 밖으로 나오는데 지렁이는 피부로 호흡하는데 비가 오면 땅속에 있는 집이 물이 차서 숨쉬기가 힘들어서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란다. 지렁이는 오직 1차원적으로 직진밖에 하지 못해서 장애물을 넘거나 U턴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지렁이지만 땅속에서는 땅을 헤집고 다니며 산소가 공급되어 식물이 잘 자라게 된다고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지렁이를 빗대어 지도자로서의 안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벌레 한 마리를 두고 다양한 영역의 인문학적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지며 벌레와 인간에 대해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앞에서 지렁이 똥 얘기가 나온 김에 똥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똥하면 떠오르는 충선생은 말똥구리, 쇠똥구리다. 심지어 낙타똥구리도 있다는데 이 선생들은 주식을 뭘로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딱정벌레목 풍뎅잇과로 족보가 같다. 1980년대 초까지도 시골에 가면 쇠똥구리를 심심치 않게 봤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대가 끊어진 것이다. 쇠똥구리는 소똥을 떼어서 공으로 만들어 묻어놓고 그 안에 알을 낳는다고도 한다. 소똥은 쇠똥구리에게 일용할 양식이자 아늑한 보금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소들이 여물이 아닌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서 똥이 물러지다보니 공을 만들기 어려워졌고, 사료에 질소 성분이 많으면 소똥 속에 가스가 생겨 유충이 살기 어렵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쇠똥구리는 쇠똥을 만들지 못하는 실업상태가 되고 결국 가정이 무너진 것이다. 인간은 뭐든 유기농으로 먹으려 하는데 정작 친환경 유기농 여물이 필요했던 건 쇠똥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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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여행한 식물들
카티아 아스타피에프 지음, 권지현 옮김 / 돌배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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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정적인 생물인 식물이 세계를 여행한다는 가장 동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은 아주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그런데 식물의 의미를 꽃이나 나무에 국한시키지 않고 곡물이나 과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지금도 식물들이 전세계를 여행하며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장 한국만 해도 미국산 유전자 변형 콩부터 쌀과 밀, 열대과일까지 수많은 식물이 수입되고 있고, 담배나 커피, 차와 같은 기호식품도 식물의 범주에 들어가는 주요 수입품이다. 또 한국의 인삼은 멀리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식물이 바다를 건너는 일은 지금 시대에는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지금은 식물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일이 흔하고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세계 최초로 그 식물을 다른 나라로 들고 옮겨 간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예컨데 고려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온 문익점처럼 식물학자들은 목숨을 걸고 식물의 본고장으로 가서, 그 곳에서 그 식물의 쓰임새와 유용함을 발견하고는, 본국으로 그것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으로 식물은 세계를 누비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식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곳곳을 누빈 식물학자와 식물이 발견되고, 바다를 건너 이동하여 정착하게 된 과정과 이국적 식물종이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에게 친숙해졌는지를 알아보는 민족식물학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식물의 로드무비라 할 수 있겠다.



책에는 차, 모란, 딸기, 인삼, 담배 등 총 10종의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식물들은 탐험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탐험가의 나라로 퍼져나갔거나 다른 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식물을 자기 나라로 몰래 가져오기 위한 일대 모험을 통해 그들의 나라로 전해졌다. 식물이 세계로 퍼져나간 사건들은 서구 열강의 탐험과 정복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 그렇게 들여온 식물은 새로운 유행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영국의 식물학자 로버트 포춘이 중국에서 몰래 훔쳐서 영국으로 가져온 차나무는 이제 영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되었고, 프랑스의 탐험가 프레지에가 칠레에서 가져온 딸기나무 몇 그루는 전세계 디저트에서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이렇게 책에 나오는 식물들은 서양 열강들이 새로운 땅을 탐험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전리품이고, 책은 철저하게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중국이나 남미 등에 널리 퍼져있던 식물을 누가 발견하고, 어떻게 유럽으로 가져와서 자기들의 문화로 흡수하였는지를 소개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해도 되겠다. 식물의 여행기란 결국 굉장히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경로로 진행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유럽의 열강들은 자신들의 농작물을 식민지에 팔아먹기도 하고, 강제로 자신들이 소비할 농작물을 식민지에서 경작하게 하는 일도 있었으므로 식물의 이동이 폭력적이었다는 이런 시각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건 자신들의 시각에선 식물학자가 이국의 식물을 자신들의 나라로 가지고 온 것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모험이자 큰 발견이므로 그것 자체가 자신들의 역사의 한 조각으로 보여질 것 같다. 이중 아시아에서 건너간 식물로는 차나무, 키위, 모란, 라플레시아가 있고 남아메리카에서 건너간 식물은 딸기, 담배, 고무나무가 있다. 비록 약탈이나 전리품의 형태로 자신들의 나라로 가지고 갔지만 차와 담배 등의 식물은 다시 하나의 문화를 이루며 전 세계로 다시 퍼져나갔고, 고무는 현대에는 없어서는 안될 생필품을 이루는 주요 원재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대황이나 인삼 등은 약용식물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시작은 누군가의 탐험과 정복의 전리품으로 바다를 건너갔지만 지금은 전 지구를 통합한 하나의 문화와 산어으로서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문화라는 바탕에서 산업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책에는 식물에 대한 토막상식과 탐험가에 대한 트리비아, 당시 식물을 둘러싼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도 소개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책을 읽다보면 식물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역사적 지식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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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화가 되는 영어 - 미국 드라마로 끝장내는 영어 회화
Cozy 지음, 복창교 옮김 / 커넥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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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영어 교재들은 문법책 등에서도 회화적인 표현을 반영하여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의 교재들은 그런 것이 많이 없었다. 영어 교재에 나오는 단어들은 영어 사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대표적인 의미만을 나타내고, 단어의 그런 사전적 의미를 담아내는 문장들이 주로 소개되었었다. 말 그대로 영어 교재로는 사전적인 문어체만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식의 영어 표현이 틀린 것도 아니고, 오히려 문법적으로 굉장히 정확한 영어에 해당되지만 정작 공부를 해도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음에도 외국인과의 짧은 대화조차 되지 않는 것에 좌절하는 일도 많은 것 같다.


어느 나라건 실제로 사람들이 말하는 구어체는 책에 나오는 문어체와 많이 다르다. 꼭 신조어나 특정 계층이 사용하는 은어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표현에서부터 단어의 의미나 뉘앙스 등 많은 곳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령 우리가 많이 쓰는 쉬운 단어이지만 우리는 사전에 나오는 대표적인 의미로만 기억하는데 그것이 대화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사전적으로는 똑같은 의미를 가진 표현이지만 뉘앙스적으로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은 일반적인 교재만으로는 구어체를 정확하게 잡아내고 대응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대화 중에 나오는 문장의 경우 전부 다 아는 단어이고, 각각의 단어의 의미도 아는데 정작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황당한 일도 발생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배웠던 영어 교육은 책에 나오는 문어체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데에만 적합한 방식이어서 진짜 대화가 되는 영어는 제대로 배우질 못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드를 보고 들으며 영어 공부를 하는데 막상 드라마를 봐도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원어민들의 발음이 빠른 탓도 있겠지만 간혹 들리는 표현들도 도무지 해석이 안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자막을 보면 다 알고 있는 쉬운 단어들의 나열인데 그것이 도무지 안 들리는 것이다. 가끔은 책에서 배웠던 의미와 전혀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일도 있다.


이렇게 대사에 사용된 단어들을 보면 다 아는 쉬운 단어들이 많지만 그것을 조합해놓으면 의미가 해석이 안되는 사태가 많다. 저자가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여섯 시즌 전체를 분석해본 결과 대사의 80%를 구성하는 단어 수는 350개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그나마도 그 단어들은 중학교 때 배운 비교적 쉬운 단어들이고, 이 단어들이 무한 반복되며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드를 막힘없이 듣기 위해서는 많은 단어를 알고 있어야 할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쉬운 단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쉬운 단어의 조합이지만 그게 무척이나 어렵다. 저자는 단어는 쉬운데 문장은 어려운 이유를 세 가지 포인트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동사와 전치사의 조합인 구동사, 주어·동사가 많은 복문, 조동사의 사용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말하면 이 세 가지가 영어를 영어답게 만들어주는 표현인 것이다. 이 세 가지 포인트를 잘 이해하고 원어민들은 어떻게 말하는지 비법을 터득하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미드도 들을 수 있게 되고, 원어민과 같은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대화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은 동사, 전치사, 조동사, 형용사, 부사의 다섯가지 파트로 나누어서 드라마에서 많이 사용된 순위별로 중요 단어들을 소개하며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선 동사, 전치사 등의 품사를 각 파트별로 간략하게 문법적인 설명이 들어가준다. 문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등을 간략하지만 핵심만 뽑아서 설명한다. 단순히 품사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이후 설명할 단어들도 포함하여 품사의 개념과 구조 등을 알려줘서 이해가 쉽고 조금 더 개념 정리가 잘 된다.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빈도수에 따른 핵심단어가 제시되는데 각 단어의 대표적인 사전전 의미 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상황까지 전부 알아보며 어떤 상황에서 그 단어가 사용되는지, 단어의 뉘앙스는 무엇인지, 기본 단어가 어떤 단어와 함께 사용되는지 알아본다. 다른 단어와의 연결형 역시 많이 사용되는 순서대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표현들이 실제 미드에서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드라마에 나왔던 표현들을 예로 들어 알아본다. 각 표현들이 사용된 드라마 회차도 꼼꼼하게 적어놓아서 직접 드라마를 보며 체크해보면 좋을 것 같다. 책에서 참고한 드라마는 영어 공부할 때 가장 많이 보는 영원한 고전 프렌즈, 섹스 앤 더 시티, 그리고 처음 들어본 How I Met Your Mother 세 작품이다.


단어는 쉬운데 문장이 안 들리는 것은 단어를 사전에 나오는 대표적인 의미로만 외워서 그런건데 영어의 경우는 저자의 말처럼 구동사와 조동사의 사용에 따라 의미가 엄청나게 많아지므로 단순히 그 단어의 의미만 안다고 영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어의 다양한 의미와 쓰임을 이해하려면 해당 단어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언제 어떻게 쓰이고, 어떤 뉘앙스를 가지는지를 알아야 변형도 가능한데 교재를 보며 공부할 때는 매번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조금씩 단어의 의미를 갱신하는 식이라서 전체적인 큰 그림으로 단어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처럼 단어 하나를 철저하게 조지는게 그 제대로 단어를 이해하는데는 더욱 효과적이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꽤나 정리가 잘되어 있는 편이다.


중학교 수준의 기본적인 단어만으로도 일반 회화의 상당수를 커버할 수 있다니 굉장히 효율적이고 가성비가 높은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단어를 보면 그 자체는 모르는 것은 없다. 전부 알고 있는 굉장히 쉽고 기초적인 수준의 단어이지만 그 쉬운 단어의 의미와 뉘앙스, 다른 단어들과의 조합을 통해 새로 가지게 되는 의미들은 상당수 모르고 있는 것들이어서 다 알면서도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특별한 문장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문장이라는 것이 충격적이다. 쉬운 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려운 단어만 외우려고 했다는 것을 반성하며 드라마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의외로 어렵게 느껴지는 쉬운 표현들부터 제대로 끝장낼 수 있는 효율갑의 영어 회화책이다. 다 아는 단어라서 거부감도 적고,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아서 공부하기도 좋고, 진도도 잘 나가진다. 미드가 들리고, 진짜 대화가 되는 영어를 배울 수 있게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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