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여행한 식물들
카티아 아스타피에프 지음, 권지현 옮김 / 돌배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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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정적인 생물인 식물이 세계를 여행한다는 가장 동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은 아주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그런데 식물의 의미를 꽃이나 나무에 국한시키지 않고 곡물이나 과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지금도 식물들이 전세계를 여행하며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장 한국만 해도 미국산 유전자 변형 콩부터 쌀과 밀, 열대과일까지 수많은 식물이 수입되고 있고, 담배나 커피, 차와 같은 기호식품도 식물의 범주에 들어가는 주요 수입품이다. 또 한국의 인삼은 멀리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식물이 바다를 건너는 일은 지금 시대에는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지금은 식물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일이 흔하고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세계 최초로 그 식물을 다른 나라로 들고 옮겨 간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예컨데 고려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온 문익점처럼 식물학자들은 목숨을 걸고 식물의 본고장으로 가서, 그 곳에서 그 식물의 쓰임새와 유용함을 발견하고는, 본국으로 그것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으로 식물은 세계를 누비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식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곳곳을 누빈 식물학자와 식물이 발견되고, 바다를 건너 이동하여 정착하게 된 과정과 이국적 식물종이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에게 친숙해졌는지를 알아보는 민족식물학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식물의 로드무비라 할 수 있겠다.



책에는 차, 모란, 딸기, 인삼, 담배 등 총 10종의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식물들은 탐험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탐험가의 나라로 퍼져나갔거나 다른 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식물을 자기 나라로 몰래 가져오기 위한 일대 모험을 통해 그들의 나라로 전해졌다. 식물이 세계로 퍼져나간 사건들은 서구 열강의 탐험과 정복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 그렇게 들여온 식물은 새로운 유행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영국의 식물학자 로버트 포춘이 중국에서 몰래 훔쳐서 영국으로 가져온 차나무는 이제 영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되었고, 프랑스의 탐험가 프레지에가 칠레에서 가져온 딸기나무 몇 그루는 전세계 디저트에서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이렇게 책에 나오는 식물들은 서양 열강들이 새로운 땅을 탐험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전리품이고, 책은 철저하게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중국이나 남미 등에 널리 퍼져있던 식물을 누가 발견하고, 어떻게 유럽으로 가져와서 자기들의 문화로 흡수하였는지를 소개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해도 되겠다. 식물의 여행기란 결국 굉장히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경로로 진행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유럽의 열강들은 자신들의 농작물을 식민지에 팔아먹기도 하고, 강제로 자신들이 소비할 농작물을 식민지에서 경작하게 하는 일도 있었으므로 식물의 이동이 폭력적이었다는 이런 시각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건 자신들의 시각에선 식물학자가 이국의 식물을 자신들의 나라로 가지고 온 것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모험이자 큰 발견이므로 그것 자체가 자신들의 역사의 한 조각으로 보여질 것 같다. 이중 아시아에서 건너간 식물로는 차나무, 키위, 모란, 라플레시아가 있고 남아메리카에서 건너간 식물은 딸기, 담배, 고무나무가 있다. 비록 약탈이나 전리품의 형태로 자신들의 나라로 가지고 갔지만 차와 담배 등의 식물은 다시 하나의 문화를 이루며 전 세계로 다시 퍼져나갔고, 고무는 현대에는 없어서는 안될 생필품을 이루는 주요 원재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대황이나 인삼 등은 약용식물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시작은 누군가의 탐험과 정복의 전리품으로 바다를 건너갔지만 지금은 전 지구를 통합한 하나의 문화와 산어으로서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문화라는 바탕에서 산업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책에는 식물에 대한 토막상식과 탐험가에 대한 트리비아, 당시 식물을 둘러싼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도 소개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책을 읽다보면 식물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역사적 지식도 얻을 수 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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