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순간들 - 마이 페이보릿 시퀀스
이민주(무궁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다수는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지만 그 만들어진 이야기가 누군가에는 현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영화 속의 장면이 나의 삶과 정확히 싱크로 되면 그 감동은 폭발하고, 그 이야기는 심금을 울리게 된다. 그래서 내 가슴을 울리는 장면, 뇌리에 박히는 대사 한줄은 잊혀지지 않고 마지 정지버튼을 누른 상태처럼 머리 속에 계속 각인된다. 영화는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그 장면, 그 대사는 계속 머무르며 가끔씩 그 장면이 불쑥 떠오를 때면 그에 관련된 나의 드라마의 기억도 오버랩되어 펼쳐진다. 그것이 영화의 힘이고, 우리가 영화를 소비하고 추억하는 방식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기억을 담는 무언가가 있다. 영화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노래나 책이 될 수도 있다. 내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위 인생영화, 추억영화. 그리고 나의 마음을 그렇게나 움직이고 잡아 끌었던 장면들. 영화를 보다가 그런 장면들이 나오면 실제로 정지 버튼을 눌러놓고 그 화면을 보며 그 장면을 곱씹어보거나, 영화가 끝난 후에도 머리 속에 정지 버튼으로 정지시켜 놓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그 속에 빠져드는 일이 허다하다. 영화 같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도 있고, 그 장면으로 돌아가서 내 마음대로 편집하고 스토리를 바꾸고 싶어하며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건 인생에서 정지 버튼을 누른 장면들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가슴 속에 기억된다. 그 기억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게 하는 반성이 되기도 한다.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이나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생각의 근원이 될 때도 있다. 영화에서 나의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이고, 영화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리와인드 하여 재생하여 봤기 때문이다.


책에는 26편의 영화 이야기, 혹은 누군가가 현실에서 직접 마주했을 이야기가 담겨 있고, 영화 속의 인상에 남는 대사와 영화장면을 담은 삽화 그리고 영화 소개글과 영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아놓았다. 책에 나오는 영화를 전부 보진 못했다. 그리고 본 영화들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영화가 아닌 것도 있다. 오히려 공감하지 못하고 악평을 쏟아낸 영화조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인생영화라는 것은 사람의 취향, 살아온 인생, 겪었던 풍파에 따라 전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허무맹랑한 소리가 누군가에겐 진실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공감이 안되는 지루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겐 격공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 다르기에 저자가 소개한 그 영화들을 저자가 느꼈던 똑같은 수준으로 감동하고 감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와 같이 나만의 영화 이야기를 찾아보고,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자와는 성별도 나이대가 달라서 그런지 공감대가 다르다. 저자가 초이스한 영화들도 내가 한창 영화를 많이 보던 시절의 영화와는 겹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난 옛날 사람이라 내가 젊었을 적의 감수성으로 그 때의 시대정신을 가지고 봤던 영화들과는 결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나오는 새로운 영화들은 지금의 젊은 감수성의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고, 그들이 주인공이고, 그들만이 공감하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이 조금 슬프게 다가온다. 말하자면 어쩌면 이젠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나이가 아니라 오래전 이야기를 회상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난 나만의 영화가 있고, 내 기억 속엔 정지 버튼을 누른 인생의 장면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다시 리와인드 해서 재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가치가 있다. 책이 주는 즐거움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리즈
야마나 테츠시 지음, 최성현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교가 아닌 사람도 반야심경은 한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경전이다. 하다못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부분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있다. 불교계 유치원에 다녔던 조카가 처음으로 배운 것도 반야심경이었다. 지명도로 따진다면 기독교에서의 주기도문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경전이라 하겠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많이 들어봤고 많이 읊는 경전이지만 그 속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의미도 모른채 마치 주문이나 방언처럼 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반야바라밀'의 의미도 모르는 경우조차 있을 것이다.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이 단지 문장의 해석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미를 안다는 것은 실제로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내용과 거기서 파생되어 얻을 수 있는 혜안과 지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을 뜻할 것이다. 불경을 100번 입으로 외우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더 큰 공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했던 반야심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가르침을 배워보자


반야심경의 뜻부터 살펴보자. 반야심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반야심경이란 그 말의 뜻부터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지혜를 '반야'라고 한다.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임말로 바라밀다는 '완성'이란 뜻으로 반야바라밀다는 지혜의 완성이란 의미이다. 심은 중심, 핵심이란 의미로 반야심경은 지혜의 완성, 그 핵심을 설한 경전 이란 뜻이 된다. 지혜의 완성이란 불교 자체를 말하기 때문에 반야심경에는 불교의 정수가 모두 들어 있고, 이것을 이해하면 불교의 본질을 알았다고 할수도 있다고 한다.


반야심경은 총 265자로 경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경이다. 작아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외우고, 쉽게 읊을 수 있어서 불교 신자라면 아마 누구나가 아는 경일 것이다. 그런데 반야심경은 짧지만 그 속에 불교의 정수가 모두 들어있다고 한다. 방대한 불교 경전을 가장 짧은 글 속에 줄여넣은 것이 바로 반야심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경을 읊는 것은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읊조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 경의 참뜻을 잘 이해한 후에 읊어야 한 것이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반야의 지혜를 완성하기 위해 깊이 수행하고 있을 때
오온, 곧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하다는 걸 깨닫고 그에 따라 모든 괴로움을 극복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반야심경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설서를 읽어도 애매한 표현과 이해가 쉽지 않은 불교 용어들로 설명을 하고 있어서 그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불교용어를 쓰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반야심경을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괴로움, 공(空), 반야바라밀다 세 가지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가 반야심경의 핵심으로 이 것을 이해하지 않고는 반야심경을 아무리 읽어도 소용없다고까지 말을 한다. 괴로움으로 벗어나서 행복해질 수 있는가 라는 문제의식이 붓다의 중심테마라고 한다. 그래서 불교는 행복을 찾는 과정의 종교이지 철학이나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행복해지지 않으면 불교는 무의미하다고 까지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면 가장 먼저 활을 뽑아서 독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활을 쏘았는지, 화살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화살의 깃털은 무엇인지 따위를 알려고 하는건 무의미하고 그런 것을 따지다가는 화살에 맞은 사람은 죽어버릴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주가 영원한지, 한계가 있는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생로병사, 슬픔, 괴로움의 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을 불태우고 있다. 사람은 가장 먼저 우리에게 닥쳐 있는 문제들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닦지 않으면 안된다고 붓다는 말했다. 붓다는 깊은 철학보다 당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번뇌에서 벗어나서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파하였다.


이렇듯 반야심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 길이다. 모든 괴로움을 털어내는 길은 만사가 공하다는 것을 아는 것에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야바라밀다를 수련해야 한다고 한다. 반야바라밀다를 수련하는 데는 이른바 8정도라는 여덟 가지 길이 있는데 그 중 책에서는 '정념'과 '정정'을 권한다. 정념과 정정을 일상의 언어로 바꾸면 바른 알아차림과 바른 마음의 통일이다.


우선 정념이란 일상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 일체를 의식화해 가는 훈련을 뜻한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고, 대소변을 볼 때도, 걸을 때, 설 때, 앉을 떄, 잠잘 때, 깨어 있을 때, 이야기할 때, 가만 있을 때도 살아서 하는 모든 모든 행동 일체를 의식해서 그것을 행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무자각한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이 얼마나 의식하지 못하고 일어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걸 알아채는 것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다. 그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를 통해 지켜보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훈련은 '지금, 여기'훈련이라고도 하는데,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집착과,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을 던지고 지금 현재 지금, 여기에 신경을 쓰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정은 명상을 뜻한다. 명상의 목적은 일상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흔히 잡념을 버리라고 하는데 잡념이란 버리려고 한다고 해서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머리속에서 멋대로 온갖 것을 끊임없이 생각해 내기 때문인데 조건 지어진 사고는 근본없는 논리로 진행된다. 그런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머리를 쉬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오는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 사실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상에는 잡념을 없애는 훈련도 있지만 잡념이 올라오는 대로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방법도 있다. 흘러가는 생각을 그저 물끄럼히 보기만 하면 생각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하던 행동을 멈출 수 있다. 정념과 정정. 이 두가지는 불교의 두가지 훈련법이다. 두 가지 모두 최종적으로는 반야의 지혜를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야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념과 정정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붓다는 '나'를 바꿈으로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바꾸는 시작이다. 저자는 반야심경을 외우며 자신에게 관한 부정적인 믿음을 지워가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조건 지어져 있던 무자각적이던 모든 부벙적인 사고와 감정으로부터 점차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을 받아들일 때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서는 안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라는 긍정적인 주문이 필요하다. 반야심경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주문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증상, 등 스트레칭이 해결해드립니다
요시다 가요 지음, 최서희 옮김, 가와모토 도오루 감수 / 비타북스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루종일 컴퓨터와 휴대폰을 하다 보니 어깨와 목이 결리고 뭉칠 때가 많다. 그리고 늘 마우스를 사용하고, 많이 사용하는 오른 쪽 어깨와 목은 항상 통증이 심하다. 그래서 오른쪽 목과 어깨엔 파스가 떨어지는 날이 없다. 그리고 하루종일 앉아있는 생활패턴으로 인해 허리와 등이 딱딱하게 굳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때론 수면장애도 있고, 두통이 있는 날도 있다. 물론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자고 일어나면 자는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자세로 가만히 있어서 그런지 더욱 몸이 굳는 듯한 증상은 심해진다. 책에 의하면 어깨 결림이나 목이 뭉치는 증상 이외에도 두통이나 수면장애, 만성피로, 그 외 냉증, 위장 질환 등도 등이 굳어있는 증상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근육은 몸을 움직이고, 신체 내부의 장기를 충격에서 보호하고, 열을 생성하고, 혈액의 순환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우리의 몸은 근육들을 잘 움직여 몸의 구석까지 산소와 영양소를 보내고, 불필요한 노폐물을 이동시킨다고 한다. 산소와 영양소를 흘려보내는 건 혈액의 역할인데 말하자면 그 혈액순환을 주관하는 주무부서가 근육이라는 논리인 것이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온몸에 다양한 이상이 발생한다. 특히 등이 굳으면 심장에서 보내는 혈액을 등에서 막아서 배출해야 하는 노폐물을 배출하지 못하게 되고, 근육의 긴장 상태가 이어져서 통증이나 결림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통증과 결림 현상이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혈관을 수축하면 혈액순환은 더욱 나빠지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피로, 스트레스, 냉증, 우울증, 혈당과 혈압을 조절하는 기능의 저하, 내장 기능 저하 등을 초래한다고 한다. 최근 들어 피로와 함께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기본이고, 혈당에 이상이 생기는 징조를 받았는데 단순히 식습관의 문제 뿐만 아니라 몸의 혈액순환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책에서는 굳은 등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면 혈액순환이 원활해져서 몸이 가지고 있던 자연치유력이 발휘된다고 한다. 질병을 막아내는 건강한 몸이 된다고 하는데 치유력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통증이나 결림현상은 줄어들 것이고, 그로 인한 두통이나 수면장애는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목디스크나 허리디스크를 예방하고 호전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등 스트레칭의 최종 목표는 등뒤로 악수하기다. 뭉친 어깨를 풀고, 딱딱하게 굳은 등 근육을 유연하게 해줘서 등 뒤로 악수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자는 것이다. 좌우로 등 뒤로 악수하기 자세가 가능해지면 몸 전체의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몸의 이상 증상이 사라진다는데 책에서는 하루 3분 3주면 이게 가능하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질 정도가 되면 몸의 이상 증상도 줄어들거나 사라질 거란 거다. 등 스트레칭의 좋은 점은 눈에 띄는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란다.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성취감과 함께 상쾌함을 느낄 수 있을거란다. 문제는. 난 이미 등 뒤로 악수하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좌우 양쪽으로 모두 가능하다. 오른쪽 어깨가 굳은 탓인지 오른손이 위로 올라갔을 때는 확실히 양쪽 어깨뼈의 뻐근함과 저항감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는 등 뒤로 악수하기를 목표로 할게 아니라 등 뒤로 악수할 때 느껴지는 저항감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다.


책에서 소개하는 등을 펴는 스트레칭은 총 4가지인데 첫째 양손으로 벽 밀기. 둘째 벽에 팔 대고 돌리기. 셋째 어깨뼈 풀어주기, 넷째 등 풀어주기이다. 굉장히 쉽고 다른 도구나 도움이 필요한게 아니고, 많은 운동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어서 의지만 있다면 어디서건 부담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같다.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 어렵거나 과정이 복잡하다면 중간에 포기하고,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도 수준이라면 나이가 많아 근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 결국 운동은 꾸준하게 계속 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어렵고 부담스러우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하게 되는데 이렇게 간단한 동작을 하루 3분만 해주면 된다니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그 효과가 바로 눈에 띄게 나타난다고 하니 3주를 목표로 먼저 운동을 해주고, 그 이후에도 계속 꾸준하게 해봐야겠다.


4가지 운동도 한번에 다 하는 것이 아니라 3주 프로젝트 중 매주 내용을 바꾸어 운동을 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짜놓아서 계속 똑같은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즉, 매번 똑같은 운동을 해야하는 지루함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준비운동 30초, 매일 스트레칭 60초, 주차별 스트레칭 90초. 이렇게 3분 구성의 운동이다. 스트레칭은 식사 직후만 피하면 아무 때나 상관없다고 한다. 이 루틴을 지속하기만 해도 효과를 본다고 하니 꼭 해봐야겠다. 3주후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이끄는 입보리행론
산티데바 지음, 하도겸 엮음 / 시간여행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절대자를 믿고 숭배하고 받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행하고 깨우쳐서 도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삶의 목적을 찾고, 고뇌를 벗어던지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불릴 정도로 깨달음이란 말을 많이 한다. 깨달음이란 말은 열반, 해탈, 성불, 득도 등의 다른 표현으로도 사용되는데 불교의 교리는 열반에 든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으며, 참다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주된 불교의 핵심이다.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성불하고 해탈할 수 있는가를 공부하는 것으로 믿음이라기보단 자아성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불교에선 깨달음을 중요시 하는데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보리심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대승불교의 본질이며 불도의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으로 널리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을 가르킨다. 보살은 보리심을 길러야만 성불할 수 있다. 보리심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책에서는 보리심을 강조한다. 보리심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보리심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마음인 원보리심이고 다른 하나는 보리심을 행하는 마음인 행보리심이다. 말하자면 보리심은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자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깨어 있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을 원보리심이라고 하고, 그런 마음을 기반으로 깨달음을 스스로 깨우쳐 실천하는 것이 행보리심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리행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과 유사한 내용이다.


윤회하면서 고통받는 중생의 불행을 모두 없애고 행복해지고 공덕을 얻으려면 보리심이 필요하다. 혹은 보리심만 있으면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남을 도우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덕보다 더 큰 공덕이라고 말해지는데 보리행을 통해 불행의 수렁 속에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행복하게 하려는 노력은 더 큰 공덕을 쌓게 되는 행동인 것이다. 악이를 품거나 나쁜 생각을 내지 말고,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선의를 베풀고 보리행을 행한다면 죄업은 일어나지 않고, 선업만 늘어나서 깨달음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불교인들의 최상의 목적은 결국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깨우치고 고통에서 벗어난 보살은 부처보다 덜 완성된 존재지만 우리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가능의 영역이므로 차라리 부처가 아니라 보살을 지향하여 범은들을 깨우쳐주고 이끌면서 보리행을 행하며, 선행을 쌓는 것이 더 가치있고, 보람있고, 의미있는 것이라고 새로운 시각과 목표를 제시한다. 책에는 보리행을 행하고 보살이 되기 위한 10가지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공덕을 쌓고, 악업을 행하지 않는 지혜와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범인과 함께 하는 보살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해봅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 고흐, 꿈을 그리다 - 반 고흐의 예술과 영성
라영환 지음 / 피톤치드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고흐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과 이미지는 아마 거의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늦은 나이로 입문하여, 살아생전 단 한점의 그림도 팔지 못한 비운의 화가,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병력, 동생 테오의 재정적 지원, 동생과 편지로 나눈 대화들, 같은 고씨 집안 친구 고갱과의 관계, 결국 자살로 생을 마무리 한 광기의 천재.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에, 해바라기, 자화상 등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고흐의 작품. 이런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우린 고흐의 이런 인생 때문에 고흐는 광기나 삶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작품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이 미술상이라 나름 노력을 했을텐데도 평생 작품을 하나도 팔지 못했고, 형이 되서 동생한테 신세나 지고, 정신병으로 귀까지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마지막엔 권총으로 자살까지 했다고 하니 참 기구한 팔자에 한이 많은 사람이고 고흐가 한이 많아서 그 한이 예술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고흐의 일생을 다룬 책이나 영화들도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사실 고흐는 화가로 전업하기 전엔 목회자의 길을 걸으려고 했었고 화가가 된 이후에도 믿음과 신앙의 마음으로 하늘의 소명에 따라 산 영성의 화가였다고 한다.


이 책은 고흐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과 비운의 천재화가라는 신화를 깨고자 한다. 책은 고흐의 생을 다각도로 돌아보며 인간 고흐에 대하여 한 발 더 다가가려 한다. 그리고 고흐의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인간성에 주목한다. 1부에선 고흐에 관한 다양한 '썰'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는지, 반 고흐는 정신병자인, 반 고흐는 그림에서 자신의 죽음을 암시했는지, 반 고흐는 기독교를 떠났는지. 네 가지 주제에 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풀어가며 고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고자 한다. 2부에서는 고흐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일생을 쫓아가며 고흐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마지막 3부에서는 고흐의 예술 작품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고흐를 이해하려 한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고흐는 광기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고 한다. 자연을 그릴 때는 창조주의 아름다움과 영원함을, 빈민이나 광부 농부 같은 사회적 약자를 그릴 때는 그들에 대한 긍휼의 시각을 잃지 안핬다고 한다. 이른바 소명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에선 고흐의 작품에 함축된 기독교적 세계관을 살펴보는 새로운 시점으로 고흐를 살펴본다. 한국에선 이러한 시도가 그다지 없었지만 서양에선 고흐를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다고 한다. 고흐가 늦은 나이에 화가로 데뷔하기 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그런 기독교적 세계관이 그의 작품에까지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 역시도 저자가 말하듯 고흐는 광기나 가슴의 한으로 작품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고흐의 작품세계를 잘못이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고흐에 대한 여러 이야기의 사실여부를 따져보하는 첫번째 파트이다. 고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인 자신의 귀를 자른 이야기일 것이다. 책은 고흐는 정말 자신의 귀를 잘랐는가? 그리고 고흐는 정신병자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팩트체크를 하고 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확실한 사실관계를 알 수 없지만 여러 정황들을 고려해 고흐에 관련된 이 의문들에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도록 유도한다.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갇혔다는 것 때문에 고흐가 광기의 화신, 비운의 천재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 내용들이 사실인지 합리적으로 추론해보며 어쩌면 광기에 빠진 화가라는 이미지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아니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며 잘못된 신화를 깨려고 한다. 또 마지막 유작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는 고흐의 정신적인 불안과 공포가 반영되었고, 이 그림이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다는 세간의 평가도 억측이라며 작가 나름대로의 근거를 들어 오히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새로운 전조를 알리고 불행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고흐의 예술의 근원은 광기가 아니라 신앙심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고흐의 대표작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그 속에 숨어있는 기독교적 의미를 찾아내는 3부도 눈여겨볼만 하다.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해바라기'. 고흐는 유독 해바라기를 많이 그렸고 자신의 해바라기 그림에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이 팔리지 않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해바라기를 그리는 형식이나 색상 등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파리에 있을 땐 화병이 아닌 바닥에 놓인 채 꽃잎은 시들고, 줄기로부터 잘려진 해바라기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으로 화폭에 담았다. 이는 해바라기가 자신을 의미하며 화가로서의 소명이 시들해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다 아를로 간 이후로는 강렬한 노란색을 사용해 생동감있게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태양의 색을 닮은 노랙색은 영원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파리에서의 해바라기는 슬픔과 버려짐이고, 아를에서의 해바라기는 희망과 환희였던 것이다. 저자는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에서 고독과 좌절, 미음과 소망, 사랑과 소명을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네덜란드 성경책 요한복음 1장에는 그리스도를 해바라기로 나타내었다는데 고흐도 이런 상징에 익숙했을 것이고 해바라기에 그런 상징성을 담아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고흐의 또 다른 역작 '별이 빛나는 밤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을 보며 고흐가 정서적으로 혼란한 상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 그림은 생 레미 요양원에 들어가 있을 때 그린 그림이라 그런 주장이 일견 타당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림 가운데 있는 교회엔 불이 꺼져 있어서 이 무렵 고흐는 교회에 대한 소망을 잃은 상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스스로 귀를 자른 광기 어린 천재라는 이미지 속에서 그림을 보려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로 저자는 이 작품에 사용된 소재들은 상당히 종교적이라고 말한다. 마을 중앙의 교회, 사이프러스 나무, 올리브 동산, 밤하늘의 빛나는 별은 고흐의 작품에서 항상 종교적인 상징으로 사용된 소재였다고 한다. 우선 만약 교회에 대한 소망을 잃었다면 굳이 불꺼진 교회를 그릴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란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 교회는 그림을 그린 그 지역 교회가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가 사역했던 누에넨의 예배당이라고 한다. 또 하늘의 별을 향해 솟아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의 재료이기도 하다. 지상에서 하늘에 맞닿아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교회의 종탑은 영원에 대한 고흐의 갈망이자, 이 세상과 하늘의 가교가 되어주고 있다. 또 하늘에 빛나는 별은 열 두개인데 예수의 열 두 제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너무나 유명해서 많이 봤었고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이었지만 이 그림들에 이런 종교의 의미가 숨어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붓터치가 멋지고, 색이 강렬하고, 검은 색을 쓰지 않고도 밤하늘을 표현했고 라는 일반적인 시각적인 감상만을 했었는데 종교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니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고 고흐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지 약간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흐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색다른 관점의 평가로 고흐의 작품세계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