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리즈
야마나 테츠시 지음, 최성현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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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아닌 사람도 반야심경은 한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경전이다. 하다못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부분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있다. 불교계 유치원에 다녔던 조카가 처음으로 배운 것도 반야심경이었다. 지명도로 따진다면 기독교에서의 주기도문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경전이라 하겠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많이 들어봤고 많이 읊는 경전이지만 그 속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의미도 모른채 마치 주문이나 방언처럼 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반야바라밀'의 의미도 모르는 경우조차 있을 것이다.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이 단지 문장의 해석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미를 안다는 것은 실제로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내용과 거기서 파생되어 얻을 수 있는 혜안과 지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을 뜻할 것이다. 불경을 100번 입으로 외우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더 큰 공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했던 반야심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가르침을 배워보자


반야심경의 뜻부터 살펴보자. 반야심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반야심경이란 그 말의 뜻부터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지혜를 '반야'라고 한다.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임말로 바라밀다는 '완성'이란 뜻으로 반야바라밀다는 지혜의 완성이란 의미이다. 심은 중심, 핵심이란 의미로 반야심경은 지혜의 완성, 그 핵심을 설한 경전 이란 뜻이 된다. 지혜의 완성이란 불교 자체를 말하기 때문에 반야심경에는 불교의 정수가 모두 들어 있고, 이것을 이해하면 불교의 본질을 알았다고 할수도 있다고 한다.


반야심경은 총 265자로 경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경이다. 작아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외우고, 쉽게 읊을 수 있어서 불교 신자라면 아마 누구나가 아는 경일 것이다. 그런데 반야심경은 짧지만 그 속에 불교의 정수가 모두 들어있다고 한다. 방대한 불교 경전을 가장 짧은 글 속에 줄여넣은 것이 바로 반야심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경을 읊는 것은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읊조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 경의 참뜻을 잘 이해한 후에 읊어야 한 것이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반야의 지혜를 완성하기 위해 깊이 수행하고 있을 때
오온, 곧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하다는 걸 깨닫고 그에 따라 모든 괴로움을 극복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반야심경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설서를 읽어도 애매한 표현과 이해가 쉽지 않은 불교 용어들로 설명을 하고 있어서 그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불교용어를 쓰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반야심경을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괴로움, 공(空), 반야바라밀다 세 가지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가 반야심경의 핵심으로 이 것을 이해하지 않고는 반야심경을 아무리 읽어도 소용없다고까지 말을 한다. 괴로움으로 벗어나서 행복해질 수 있는가 라는 문제의식이 붓다의 중심테마라고 한다. 그래서 불교는 행복을 찾는 과정의 종교이지 철학이나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행복해지지 않으면 불교는 무의미하다고 까지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면 가장 먼저 활을 뽑아서 독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활을 쏘았는지, 화살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화살의 깃털은 무엇인지 따위를 알려고 하는건 무의미하고 그런 것을 따지다가는 화살에 맞은 사람은 죽어버릴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주가 영원한지, 한계가 있는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생로병사, 슬픔, 괴로움의 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을 불태우고 있다. 사람은 가장 먼저 우리에게 닥쳐 있는 문제들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닦지 않으면 안된다고 붓다는 말했다. 붓다는 깊은 철학보다 당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번뇌에서 벗어나서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파하였다.


이렇듯 반야심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 길이다. 모든 괴로움을 털어내는 길은 만사가 공하다는 것을 아는 것에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야바라밀다를 수련해야 한다고 한다. 반야바라밀다를 수련하는 데는 이른바 8정도라는 여덟 가지 길이 있는데 그 중 책에서는 '정념'과 '정정'을 권한다. 정념과 정정을 일상의 언어로 바꾸면 바른 알아차림과 바른 마음의 통일이다.


우선 정념이란 일상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 일체를 의식화해 가는 훈련을 뜻한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고, 대소변을 볼 때도, 걸을 때, 설 때, 앉을 떄, 잠잘 때, 깨어 있을 때, 이야기할 때, 가만 있을 때도 살아서 하는 모든 모든 행동 일체를 의식해서 그것을 행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무자각한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이 얼마나 의식하지 못하고 일어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걸 알아채는 것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다. 그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를 통해 지켜보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훈련은 '지금, 여기'훈련이라고도 하는데,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집착과,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을 던지고 지금 현재 지금, 여기에 신경을 쓰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정은 명상을 뜻한다. 명상의 목적은 일상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흔히 잡념을 버리라고 하는데 잡념이란 버리려고 한다고 해서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머리속에서 멋대로 온갖 것을 끊임없이 생각해 내기 때문인데 조건 지어진 사고는 근본없는 논리로 진행된다. 그런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머리를 쉬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오는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 사실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상에는 잡념을 없애는 훈련도 있지만 잡념이 올라오는 대로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방법도 있다. 흘러가는 생각을 그저 물끄럼히 보기만 하면 생각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하던 행동을 멈출 수 있다. 정념과 정정. 이 두가지는 불교의 두가지 훈련법이다. 두 가지 모두 최종적으로는 반야의 지혜를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야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념과 정정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붓다는 '나'를 바꿈으로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바꾸는 시작이다. 저자는 반야심경을 외우며 자신에게 관한 부정적인 믿음을 지워가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조건 지어져 있던 무자각적이던 모든 부벙적인 사고와 감정으로부터 점차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을 받아들일 때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서는 안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라는 긍정적인 주문이 필요하다. 반야심경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주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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