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순간들 - 마이 페이보릿 시퀀스
이민주(무궁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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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다수는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지만 그 만들어진 이야기가 누군가에는 현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영화 속의 장면이 나의 삶과 정확히 싱크로 되면 그 감동은 폭발하고, 그 이야기는 심금을 울리게 된다. 그래서 내 가슴을 울리는 장면, 뇌리에 박히는 대사 한줄은 잊혀지지 않고 마지 정지버튼을 누른 상태처럼 머리 속에 계속 각인된다. 영화는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그 장면, 그 대사는 계속 머무르며 가끔씩 그 장면이 불쑥 떠오를 때면 그에 관련된 나의 드라마의 기억도 오버랩되어 펼쳐진다. 그것이 영화의 힘이고, 우리가 영화를 소비하고 추억하는 방식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기억을 담는 무언가가 있다. 영화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노래나 책이 될 수도 있다. 내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위 인생영화, 추억영화. 그리고 나의 마음을 그렇게나 움직이고 잡아 끌었던 장면들. 영화를 보다가 그런 장면들이 나오면 실제로 정지 버튼을 눌러놓고 그 화면을 보며 그 장면을 곱씹어보거나, 영화가 끝난 후에도 머리 속에 정지 버튼으로 정지시켜 놓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그 속에 빠져드는 일이 허다하다. 영화 같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도 있고, 그 장면으로 돌아가서 내 마음대로 편집하고 스토리를 바꾸고 싶어하며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건 인생에서 정지 버튼을 누른 장면들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가슴 속에 기억된다. 그 기억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게 하는 반성이 되기도 한다.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이나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생각의 근원이 될 때도 있다. 영화에서 나의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이고, 영화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리와인드 하여 재생하여 봤기 때문이다.


책에는 26편의 영화 이야기, 혹은 누군가가 현실에서 직접 마주했을 이야기가 담겨 있고, 영화 속의 인상에 남는 대사와 영화장면을 담은 삽화 그리고 영화 소개글과 영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아놓았다. 책에 나오는 영화를 전부 보진 못했다. 그리고 본 영화들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영화가 아닌 것도 있다. 오히려 공감하지 못하고 악평을 쏟아낸 영화조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인생영화라는 것은 사람의 취향, 살아온 인생, 겪었던 풍파에 따라 전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허무맹랑한 소리가 누군가에겐 진실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공감이 안되는 지루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겐 격공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 다르기에 저자가 소개한 그 영화들을 저자가 느꼈던 똑같은 수준으로 감동하고 감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와 같이 나만의 영화 이야기를 찾아보고,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자와는 성별도 나이대가 달라서 그런지 공감대가 다르다. 저자가 초이스한 영화들도 내가 한창 영화를 많이 보던 시절의 영화와는 겹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난 옛날 사람이라 내가 젊었을 적의 감수성으로 그 때의 시대정신을 가지고 봤던 영화들과는 결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나오는 새로운 영화들은 지금의 젊은 감수성의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고, 그들이 주인공이고, 그들만이 공감하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이 조금 슬프게 다가온다. 말하자면 어쩌면 이젠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나이가 아니라 오래전 이야기를 회상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난 나만의 영화가 있고, 내 기억 속엔 정지 버튼을 누른 인생의 장면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다시 리와인드 해서 재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가치가 있다. 책이 주는 즐거움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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