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 내 여자의 엇갈린 속마음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나지윤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남자와 여자는 화성인과 금성인만큼이나 서로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지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서 남녀 갈등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책이었는데 이 책의 타이틀만큼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쉽고 명징하게 정의하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유전자와 호르몬의 영향으로 여러 능력과 생각, 언어에 있어 큰 차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차이가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 쪽이 더 우월하다거나 다른 성의 우위에 선다는 뜻은 아니지만 분명 남녀는 모든 면에서 많이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사고방식, 가치관, 취향, 대화코드, 행동 패턴, 감정의 표현방식, 논리적 사고의 체계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남자는 해결을 원하고 여자는 공감을 기대한다. 남자는 목표지향적이고 여자는 관계지향적이다. 남자는 동굴로 들어가고 여자는 이야기를 한다. 흔히 이러한 것들이 남녀의 차이에 대한 예시로 말해지는데 책에서는 해결남 공감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남자는 해결하고 싶어하고, 여자는 공감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남자는 어떻게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쏟는 반면, 여자는 그 사건을 두 사람의 연대와 공감의 기회로 가진다. 문제해결 보다는 우선 결속과 연대감으로 공감하고 함께 하고 있다는 정신적 교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실제로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많이 경험한 일이고, 그래서 이런 차이에서 오는 상호간의 불이해로 인해 트러블도 많이 발생했었다.


이처럼 화성남과 금성녀, 해결남과 공감녀는 내면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둘의 대화방식과 표현방법 등에 있어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표현하고 이해하는 언어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 문제 해결 대화를 선호하는 화성 남자들은 실체적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왜’를 던지고, 심지어 ‘문제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추궁’하기도 한다. 이런 면 때문에 공감녀들은 상처받고 관계는 무너진다.


똑같은 말이라도 남자와 여자가 받아들이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예컨데 저자는 '연애'라는 말을 듣고 여자는 '결혼, 가족'과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남자는 오로지 '섹스'를 떠올린다고 단언한다. 물론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오로지 '섹스'라는 것은 남자라는 종을 너무 틀에 박힌 시선으로 보는 건 아닌가 싶다. 위에서 언급한 남녀의 차이를 사회적 성관념고정화에 비롯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말하자면 남자는 이런 성향이고, 여자는 이런 성향이라고 차이를 지어서 틀 안에 가두는 것이 성고정화태도라고 보는 의견도 있는 것이다. 오로지 '섹스'라니... 이런 식의 편협하고 일방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젠더문제에 있어서는 삼가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어쨌건 남성과 여성의 다툼이 남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패턴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서로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기술적으로 접근한다면 오해와 분쟁은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이런 차이는 남자가 더 유능하다거나, 여자가 더 지혜롭다거나 하는 식의 우월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젠더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고,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행동과 사고방식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오해가 이해로 바뀐다고 했지만 자신의 기준에서는 상대의 심리와 행동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임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해가 안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럴 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이해가 안되면 외워라는 것인데, 상대의 행동과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되면 그냥 외우고 기술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방법이다.


책은 '말투, 인간관계, 연애, 사고방식'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해결남과 공감녀의 차이를 비교분석한다. 남자의 성향은 이렇고, 여자의 성향은 이렇다라고 둘의 차이점을 VS라는 형태로 제시하고, 일반적인 사례를 들거나, 심리학 실험 내용 및 심리학의 이론적 분석 등을 소개하면서 그 명제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둘의 차이점을 두고 어떤식으로 대응하면 좋을지 솔루션을 제시한다. 전체적으로는 깊은 설명이나 이론적인 해석은 피하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소개하는 수준으로만 이야기를 풀어간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인지와 수용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 해결남은 이렇구나, 공감녀는 이렇구나 하고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된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 오히려 이해하려하면 이해가 안되서 새롭게 트러블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해결남은 객관적으로 필요한 말만 하며, 물으면 답하고 과장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또 표현이 서툴고 심사숙고하는데 반해 공감녀는 주관적으로 끝없이 계속 말을 하고, 주도적으로 말을 하며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표현을 잘하고, 재미가 없어도 잘 웃으며 말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그리고 해결남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지만 공감녀는 의견을 바꾸기도 한다. 남자는 객관적으로 말하므로 남자의 진심을 알고 싶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여자는 주관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제3자의 의견을 끌어내 객관성을 부여하라고 한다. 또 필요한 말만 하는 남자에게는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남자가 얘기를 하도록 유도하고, 끝없이 말하는 여자에게는 틈틈이 여자가 하는 말을 정리해서 집중해서 듣고 있음을 어필하라고 한다. 책에 소개된 남녀의 말투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이라 공감되고, 남자는, 혹은 여자는 왜 그렇게 말을 하는지 속마음과 심층심리를 알 수 있게 되어서 오해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알려주는 오해를 풀 수 있는 팁도 알아두면 대화에서 실제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관계와 연애, 사고방식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는 이해할만하지만 부분부분 개인적인 경험과 주위의 사례를 비추어 봐도 약간은 현실과 다르거나 너무 일방적으로 남녀의 성향을 일반화하여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부분도 보인다. 가령 수수한 남자와 화려한 여자, 지저분한 남자와 청결에 민감한 여자, 하나만 잘하는 남자와 몇 가지를 잘하는 여자 등 공감되지 않는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경험과 주위의 이야기를 통해 얻게 된 좁은 표본 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책에서 소개한 내용들이 너무 일방적인 부분이 있고,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약간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아마 저자가 일본사람이라서 일본의 경우를 산정하고 책을 썼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국민적 정서의 상이함에서 오는 차이인지, 세대차의 시각에서 오는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하게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저자가 구별해놓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는 공감이 가고, 저자가 설명한 차이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는 되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다가가면 더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나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책에서 알려주는 다양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남녀의 서로 다른 심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안다면 그동안 수많은 남녀 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해온 사람들도 더 이상 감정 소모를 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일반적인 심리와 행동 양식을 이해할 수 있어 꼭 연애 뿐만 아니라 회사나 학교 등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상대의 심리를 읽는데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유용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마트 베이스볼 - 현대 야구를 지배하는 새로운 데이터
키스 로 지음, 김현성 옮김, 허구연 감수 / 두리반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구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하는 스포츠란 말이 있다. 공하나 던질 때마다, 방망이 한번 휘두를 때마다 벤치에서 작전이 내려가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 물론 다른 스포츠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전을 짜고 지시를 내리지만 직관적으로 움직일 때가 더 많은반면 야구는 한땀 한땀 쌓여진 데이터로 운용되는 매 순간이 데이터와의 싸움이고 그래서 다른 스포츠에 비해 데이터가 더 많이 작용한다. 그래서 확실히 야구의 지식과 데이터를 잘 아는 사람은 야구를 볼 때에도 더 넓은 시각으로 경기를 바라보고 더 디테일하게 경기를 읽어낸다. 선수 교체 시기나 수비위치의 변화, 번트 시기 등 경기를 깊고 폭넓게 이해하며 볼 수 있게 된다.


또 감독의 지시나 경기의 흐름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데이터는 선수의 능력치, 스탯을 알려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일반 야구 팬에겐 이것이 더 크게 작용할텐데 타율, 타점, 홈런률 같은 타격 지표나 투수의 전적 같은 데이터는 그 선수를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야구를 잘 모르는 팬들도 타율 타점이 높은 타자, 홈런을 많이 때리는 타자, 도루를 많이 하는 타자라는 식의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인 데이터로 선수를 판단하게 된다. 경기 중간에 선수 기용이나 선수의 스탯에 따른 작전 변화 등을 이해할 수도 있고, 경기 외적으로는 트레이드나 선수 영입 할 때 그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감독이 어떤 점을 고려했는지 등을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런 데이터는 경기장의 전광판이나 티비화면에서 끊임없이 제공되고 있다. 해설자들도 계속 데이터를 읊으며 정보를 전달해준다. 선수 개인의 스탯, 팀간의 전적, 각종 지표와 평가방법들 등 수많은 축적된 데이터를 접하게 된다. 그것에 따라 작전이 달라지고, 경기 운영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경기를 보면서 감독의 작전을 예측을 해볼 수도 있고, 흐름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것을 알고 야구를 보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야구에 관심이 많고 잘 아는 사람들은 이런 데이터를 읽을 수 있어서 그 내용을 통해 경기를 예측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타율이나 방어율이 높고 낮다는 식의 직관적인 수준에 그친다. 아니면 타율이 높다거나 도루를 잘하고 홈런을 몇 개쳤다는 기본적인 데이터만 소비하는데 겨우 그 정도만으로도 야구를 보는 재미는 배가된다. 만약 데이터를 읽고 이해하는 법을 안다면 데이터를 분석해가며 경기를 읽어낼 수가 있기 때문에 더욱 큰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많은 야구 사람들이 오래된 스탯 분석법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야구 역사는 140년이 넘었고 그동안 수많은 데이터가 쌓였고, 현제재는 선수의 경기력을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데이터 분석법이 많이 있음에도 아직까지 과거의 스탯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과거의 스탯이란 선수의 지난 시즌의 타율, 타점, 홈런, 출루율 장타율, 투수의 방어율, 세이브, 평균자책점, 탈삼진과 같은 데이터를 뜻한다. 난 이런 데이터만 읽을 수 있어도 경기를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데이터 분석법이 올드한 방식이고 선수의 능력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한다니 혼란스럽다.


과거의 전통적인 스탯은 결함도 많고, 그 스탯으로 선수를 평가하기엔 한계도 분명하다. 대표적으로 '승리투수'라는 개념. 이 개념은 아직도 많이 쓰이고 투수의 지표를 말할 때 아주 널리 쓰이는 스탯이다. 박찬호가 20승을 했다느니, 류현진이 승리투수가 되었다느니, 경기를 하면서도 승리투수의 요건을 갖추었다거나 하는 식의 해설을 굉장히 많이 듣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 승리투수 개념이 전체적인 야구의 수준이 낮았던 과거의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투수 혼자 공을 잘 던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거다. 아무리 투수가 공을 잘 던지더라도 공격과 수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투수가 실투를 하고도 공격에서 맹활약하면 승리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투수는 굉장히 잘 던졌음에도 패전투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즉 승리는 팀 전체의 승리지 투수의 승리가 아니고, 이런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다보니 꼭 승리 투수라는 것이 공을 잘 던졌다는 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과거에 사용되던 스탯은 결함과 한계가 분명했다. 그래서 지금은 평균 자책점, 출루율, 장타율, OPS 등의 새로운 스탯이 나왔지만 사람들은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다승, 타율, 타점, 세이브 등과 같은 과거의 과거의 올드한 분석법으로 데이터를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한국 야구에서도 해설가들이 해설할 때 평균 자책점, 출루율, 장타율, OPS 같은 방식의 데이터를 많이 말하고 있어서 이런 용어들이 익숙하긴 하지만 야구를 깊이 알지 못하는 팬들은 새로운 방식의 스탯은 들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좀더 직관적인 예전 스탯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야구 데이터는 미국에서 비롯된만큼 전부 영어 약자거나 일본식 조어라서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데이터의 이해는 커녕 그 용어 자체의 의미조차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실 그리 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초보 팬들은 타율 등의 할푼리 개념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리고 요즘 많이 쓰이는 OPS같은 내용도 잘 모를 것이다. 당연히 비교적 최근에 나온 WAR, WPA, wOBA, wRC+, UZR, dRS 같은 스탯은 무슨 약자인지도 짐작도 가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야구를 좋아하긴 하지만 데이터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부족하여 이런 새로 나온 스탯은 전혀 알지 못한다.


책에서는 전통적인 스탯의 결함과 한계를 실제 데이터를 통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짚어보며,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스탯은 무엇인지, 왜 나왔고, 왜 쓰이는지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저자는 이를 각각 덜 스마트한 베이스볼, 스마트한 베이스볼이라고 명명한다. 과거의 스탯이 완전 엉망이라거나 가짜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역시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한 내용이지만 한계가 있으므로 선수의 능력치를 더 잘 나타내고, 숨은 내용까지 잘 반영할 수 있는 좀 더 스마트한 분석법을 활용하자는 의미이다. 그리고 새롭게 알아본 지표들로 과거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를 분석해보고, 새로운 데이터가 스카우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 현재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야구 이슈나 데이터 야구의 미래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스탯을 아는 만큼 야구를 더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야구를 더욱 깊이있게 즐기고자 하는 야구팬들에게 매우 유용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박현준 지음 / M31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책 제목 때문이다. 우린 언제나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한다. 옛 생각에 빠지고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짓거나, 아련한 마음이 된다. 이젠 두번 다시 오지 못할 그 시간들. 과거는 무조건 아름답다고 한다. 어떤 거짓말도 3년만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추억보정. 그것이 설령 가짜라고 해도 과거의 행복감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옛기억을 찾아 헤매인다. 과거의 기억에만 빠져있느라 현실을 무심하게 흘려버리는 날도 많은데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될 것이다. 먼 훗날 돌아가고 싶은 오늘을 회상했을 때 멍하니 과거에만 매달리고 있는 한심한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게 멋진 오늘을 살아야한다. 어쨌건 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서른이 되면 스무살을, 마흔이 되면 서른 때를 추억하게 된다. 책은 스물을 지나고 서른이 된 우리가 지나온 보통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그 때 우리의 이야기를 추억하는 내용이다. 정말 별 거 아닌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이지만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이 함께 공유했던 그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은 평범하게 그리고 무심히 흘러가던 스무살의 일상 속에서 저자가 느꼈던 감성과 그 짧은 찰라의 기분을 글로 옮겨놓았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스무살 시절. 평범했지만 가장 빛나던 시간. 비추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던 청춘. 작은 것들도 크고 깊게 느끼던 그 시절의 소회를 풀어내었다. 스물에서 서른으로 겨우 10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우리 마음에선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 때의 감정, 그 때의 기분, 그날의 생각, 그리고 감성. 많은 것이 바뀐다. 감정은 무뎌지고, 과거만큼 나이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앞의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자 내 안에서도 많은 것이 바뀐다. 바뀌어버린 나의 시간, 시간이 뺏어간 청춘, 그 시간을 돌아본다.


책은 너무나 평범하다.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고, 뛰어난 성과를 내었다는 이야기나, 긴박하고 짜릿한 순간의 기록도 없고, 너무나 애절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구구절절한 사연도 없다. 책으로 내는데 이야기들이 이렇게 평범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이 다 그렇다. 뭐 특별할 것이 없는 그저 그런 이십대의 하루를 쌓아올리고 서른이 된다. 그게 인생이고 그게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물론 좀 더 추억이 진하게 배인 향기로운 추억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겠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추억을 공유하고,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그 이야기들이 평범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그 일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아빠와 동네 목욕탕에 가서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거나,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사먹은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별것 아닌 소소한 이야기지만 거기 추억이 담긴다면 그 감흥은 엄청나게 폭발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공공의 기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걸어온 시간의 회상에만 집중한다.


저자는 음악과 술을 좋아하고, 사람과의 관계보다 외로움과 고독을 자처하며 혼자 예술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혼자 부유하다 홀로 침잠했던 자신의 이야기, 음악 이야기, 윤상 이야기, 술 아야기, 영화 이야기, 사소하디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들. 당연히 어떤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완벽히 감정이입하여 공감하긴 어렵다. 혹은 누군가의 너무나 개인적이고 평범하고 사소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가 그리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가 공감대가 많이 없는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윤상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남자들이 윤상을 그렇게 좋아했던가? 윤상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타입의 가수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윤상을 좋아한다고 해도 마치 오래전 좋아한 가수를 공유했던 동지애적인 반가움이 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동시대를 살아오며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시대정신도 없고, 비슷한 걸 향유한 공감대도 별로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군데군데 비슷한 감정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스무살 때는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지만 서른이 되면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나 역시 내 인생 중 죽음의 시간과는 많이 멀었던 그 시절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앞으로 다가올 죽음과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해야할지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때보다 죽음에 더 가까워진 지금음 오히려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저자는 이십대를 죽을 것 같았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그것 아니면 죽을 것 같았고,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mp3플레이어가 없으면 죽어도 거리를 다니지 못할 것 같다고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고보니 전혀 죽을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이다. 왜 아니겠는가. 죽을 것 같다는 마음은 그만큼 열정이 넘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었으리라.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고, 고집도 꺾이고, 좋은게 좋은거란 생각을 하게 되면서는 죽어도~라고 생각하는게 조금 줄었다. 이십대 때에는 모든 감정이 극적이었다. 감정들이 나를 극한으로 내몰고 나도 그 감정에 동조하여 극적으로 행동했었다. 그것이 아마 젊은 혈기라는 것일테다.


청춘은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랬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고통을 서불리 피력하지 말라고 한다. 우린 상대방에게 내가 이렇게 아프니 자신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투정부리기 일쑤인데 애초에 상대방의 진심 어린 공감은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저자는 상대방이 나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상대도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될 때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 같은 똑같은 아픔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내 아픔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설픈 생각이다. 사람의 마음은 상대방이 나와 비슷한, 혹은 똑같은 아픈 경험을 했다고 하면 그 사람이 나의 아픔을 알아주고 힘든 것을 받아주길 원한다. 반대로 자신이 상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너도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너도 그런 아픔이 있다면 내 마음을 알테니 너만은 내 아픔을 알아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고, 날 케어하고 이해해줄 여력이 없다. 그래서 상대가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진다고 상대에게 고통을 피력하고 이해받길 원하는 순간 서운함과 원망스러움도 생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고통은 자기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감내는 셀프다.


저자의 일상은 나의 일상과는 달랐다. 좋아하는 가수도, 술에 대한 호불호도 다르다. 같은 시대를 걸어왔다 뿐 같은 아픔이나 비슷한 일상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대적 공감대가 아니라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것 같다. 정서적으로 느끼는 바가 비슷하고, 이십대의 아픔과 공허함, 삼십대가 되어 이십대를 바라볼 때의 느낌 등에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같은 시대정신을 가지고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어떤 무언가가 이어져있는 것 같다. 덕분에 친구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이십대는 어떠했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 중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의 가사 한구절이 생각난다. [오늘은 낡은 책상 서랍에서 십년이나 지난 일기를 꺼내어 들었지. 왜 그토록 많은 고민의 낱말들이 그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 젊은 시절은 참으로 고민이 많았다. 지나고보면 별 것아닌 고민들이지만 그땐 심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그런 고민을 나만 한게 아니었다. 어쩌면 그건 특정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고민이 아니라 이십대의 고민인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스무살 시절에는 그런 고민과 방황을 하게 되나보다. 그런 고민 많고, 수없이 방황하던 이십대를 되돌아보면 여전히 많은 고민을 껴안고 방황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내 마음은 아직 스무살의 꿈에 머무르는 가 보다. 다시 10년이 지나서 지금을 돌아보면 돌아가고 싶은 날이 되어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일이 있다. 그 중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직종도 있고, 가치있고 보람된 일도 있으며, 무의미하고 지루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일 또한 있다. 어느 것이 더 힘든지,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 따지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가치없고, 무의미한 일로 취급당하는 일을 꼽을 수는 있다. 바로 집안일, 가사노동이다. 가치없는 일이 아니라 가치없는 일로 취급당한다는 표현을 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집안 일, 가사노동을 한다는 것은 집에서 놀고 먹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집안일에는 쉽고 하찮고 가치없고 편하고 여자가 응당 해야만 하는 놀고먹는 일처럼 인식되어졌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집안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집안일처럼 힘든 일도 없다.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나지만 하루만 손을 멈추면 금세 안한 티가 난다. 해도해도 끝이 없고, 잠시도 쉴 시간이 없다. 도무지 집안일 하는 사람에게 집에서 논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번이라도 제대로 집안일을 해보고서나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가사노동이 정말로 힘이 드는가 아닌가 하는 노동 강도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노동 강도에 대한 오해보다 노동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 책에선 다양한 관점에서 주부라 불리는 사람들의 집안일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 속에 숨겨진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살펴본다.


이 책은 여자들, 주부들은 왜 열심히 일을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집에서 논다'는 말이 자신의 일상을 부정당하는 말이라고 해석한다. 방금까지도 집안일에 매달려있었는데 그런 주부에게 집에서 놀고 있다는 말을 한다면 하루종일 했었던 가사노동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되고, 그 일을 했던 자신을 깎아내리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겨우 말 한마디에 과민하게 반응한다거나, 별 것도 아닌 말에 왜 화를 내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차별은 가장 먼저 언어에 스민다고 한다. 집에서 논다는 그 말은 단순히 여성의 가사노동이나 그 노동의 주체자인 여성을 왜곡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여성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문제시 하는 것이다. 그 말이 단순히 육아, 요리, 빨래, 청소, 설거지 등 고된 노동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그것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남성들의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여성과 여성의 가사 노동에 대한 차별적이고 폄하하는 마음이 기본으로 깔려있다가 그런 차별이 말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런 차별적 인식은 비단 여자를 향한 남자들의 시선만은 아니다. 저자가 둘째를 임신하여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하고 있을 때 고교동창이 전화를 하여 '너 요즘 집에서 논다며?'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같은 여자끼리도 가사일을 노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이미 사회적으로 집안일을 하는 것을 집에서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져버린 것이다. 지독히 뿌리 깊은 차별의 인식들. 그리고 고정관념. 사회의 성적 고정관념에 의해 만들어진 인식에 여성들 스스로도 전도되어 버린 것이다.


저자는 여성의 가사노동이 남성 근로자의 노동력 재생산에 미치는 절대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힘들게 가사노동을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가사 노동은 왜 이렇게 폄하 당하게 되었고 이런 현상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애환과 고충의 감정적인 토로나 언어적인 배려와 공감의 감성보다 더 구체적인 해답이 필요하며 경제적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문제의 핵심은 '돈'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뒷바침하기 위해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레슬리 베네츠의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 카트리네 마르살의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낸시 폴브레의 [보이지 않는 가슴],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 [혁명의 영점],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등의 수많은 저서를 인용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며, 이기적 욕망에 충실하기만 하면 그 욕망의 결과물들이 모여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상태를 만들어낸다는 말을 하였다. 여기엔 경제적 인간이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는데 인간은 여러모로 잘 따져보고 자기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합리적 결정을 내린다는 가정이 그것이다. 이 경제적 인간이라는 개념 속에서 인간들은 경제적 이익 실현을 욕망하여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 경제적 인간이라는 개념에는 경제적 이익 실현만을 따지지 않고 가족을 위해 온갖 노력으로 저녁 밥상을 차린 어머니의 존재를 빼놓았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인간인 노동자가 자기 이익에 충실해서 아무리 경제적 이익 실현을 하였어도 이익을 생각치 않고 저녁 밥상을 차린 어머니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 어떤 노동자도 저녁을 먹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모든 노동자의 저녁을 차리는 어머니의 가사노동을 경제 요인에 포함시켰다면 경제학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 단언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노동자는 가치생산을 하는 존재를 말하는데 어머니는 경제적 이익 실현을 하지 않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명절이 되면 종편 방송에서 수많은 여성 변호사들이 나와서 여성들의 가사 노동을 비용으로 따져서 얼마정도 만큼의 값어치를 한다고 강변하는데 정말로 가사노동이 그 정도의 경제적 비용으로 치환되는지는 모르겠고, 또 그런 주장으로인해 여성의 노동가치가 그만큼의 인건비에 해당하는 노동으로 인정받게 될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경제학에서 생략되었던 어머니의 손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시도는 계속 되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형법스케치 총론 (양장) - 부장검사를 역임한 변호사의 형사법 입문서
이임성 지음 / 미래와사람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이 있다.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만 살면 경찰서 갈 일 없고, 송사에 휘말릴 일이 없다는 뜻이지만 세상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나쁜 일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이라는 것은 아는 만큼 도움이 된다. 평소 법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갑작스럽게 트러블이 발생해도 당황하지 않고 잘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법률적 상황은 대부분이 민법일 것이다. 정말로 악의적으로 사건, 사고를 내지 않는 이상 우린 이 형법과 마주할 일이 거의 없다. 꼭 스스로 형법에 적용되는 것을 산정하지 않고도 상식적으로 형법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면 뉴스 등을 볼 때도 조금 더 이해하기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생각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책을 펼쳤지만 책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말 그대로 법률책이라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우선 형법은 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률이다. 흔히 민형사상으로 책임을 진다던가, 민형사상 조치를 취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법은 민법과 형법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형법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이고, 민법은 생활, 특히 재산에 관한 법률이다. 민법은 당사자간의 분쟁에 적용되는 법률이나 형법은 국가의 의해서 적용되고 처벌하는 법률이다. 즉 체감적으로는 민법이 우리 생활과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법률이고 보통 우리가 송사에 휘말린다고 하면 민법에 따르는 것이 많겠지만 의외로 형법에 적용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장 쉬운 예로 음주운전 등도 형법의 영역이다. 그 외에도 싸움과 정당방위에 관한 버률, 미수범, 교사범, 방조범, 과실범 등 알게 모르게 형법의 영역에 포함된 일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뉴스를 보거나 법에 관한 영화 등을 봐도 민형사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형법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은 형법에 대한 개략적인 아웃라인을 스케치 하듯 정리하고 있다. 형법책에 나오듯이 아주 구체적이고 세세한 내용까지 다루지는 않고 있지만, 형법의 개념과 기초이론, 적용범위 등의 서론, 각종 범죄론, 형벌론에 대한 큰 줄기를 그려놓고 있다. 그래서 목차 순서대로 읽어보면 형법에 대한 기초 실력을 습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형법총론의 요체라고는 하지만 어려운 법을 다루는 내용이라 그렇게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제1편 형법서론에서는 형법의 내용인 범죄와 형벌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 사전지식으로 알아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형법이 무엇인가 하는 형법의 개념, 기능, 적용범위 등을 알아본다. 형법은 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으로 범죄를 범한 자에게 형벌을 과하는 국가법규범의 총체를 일컫는다. 형법은 사회규범 중 하나로 살인하지 마라, 절도하지 말라는 식의 단언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형법은 형벌을 가함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단순히 잘못한 사람을 벌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본보기를 보여서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범죄율을 보면 그다지 효과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제2편 범죄론에서는 개별적인 범죄를 다루지 않고 전체적인 틀에서의 범죄만을 다루고 있어서 내용이 추상적이고 이론적이다. 여기서는 설명하려는 각각의 범죄에 대한 사례를 들어 해당 범죄의 의의와 해석을 설명하고 있으며, 관련 법률의 실제 대법원 판결로 추가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실례를 가져와서 법 조문을 설명을 하고 있어서 이론적인 법률 내용 뿐 아니라 실무적으로 해당 법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3편 형벌론에서는 형벌의 의의와 종류, 양형, 집행유예와 선고유예, 가석방 등에 대해 알아본다. 이 부분이 뉴스를 보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부분인데 사실 이런 내용에 대해서 지식이 없어서 대략적인 느낌으로만 뉴스를 소비하였다. 가령 형벌의 종류에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 등의 9가지 형벌이 규정되어 있는데 사형과 징역은 알지만 구류, 금고 같은 것을 정확히 구별하진 못하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식으로 넘어갔던게 사실이다. 그리고 뉴스를 보면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고 전하며 징역 몇 년에 집유 몇 년. 이런식의 말을 많이 하는데 듣긴 많이 들었지만 이게 정확히 어떤 처벌인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조 모르고, 그저 비리를 많이 저지른 사람이 집유를 받았다면 재판관을 욕하기에 바빴다. 나처럼 선량한 시민이 형법에 대해 모르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상식적으로 이런 내용들은 알고 있는 것이 정치와 사회문제를 소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분명 어려운 내용이지만 형법 총론의 개관으로서 형법서론, 범죄론, 형벌론이 순서대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어서 형법의 전체적인 틀과 개략적인 내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법조인이 아닌 이상 세부적이고 자세한 법률 내용을 아는 것은 불필요하고 책에 소개된 정도의 수준이면 상식적으로 형법을 이해하는데는 충분할 것이다. 형법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형법의 틀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입문서가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