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박현준 지음 / M31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책 제목 때문이다. 우린 언제나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한다. 옛 생각에 빠지고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짓거나, 아련한 마음이 된다. 이젠 두번 다시 오지 못할 그 시간들. 과거는 무조건 아름답다고 한다. 어떤 거짓말도 3년만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추억보정. 그것이 설령 가짜라고 해도 과거의 행복감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옛기억을 찾아 헤매인다. 과거의 기억에만 빠져있느라 현실을 무심하게 흘려버리는 날도 많은데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될 것이다. 먼 훗날 돌아가고 싶은 오늘을 회상했을 때 멍하니 과거에만 매달리고 있는 한심한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게 멋진 오늘을 살아야한다. 어쨌건 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서른이 되면 스무살을, 마흔이 되면 서른 때를 추억하게 된다. 책은 스물을 지나고 서른이 된 우리가 지나온 보통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그 때 우리의 이야기를 추억하는 내용이다. 정말 별 거 아닌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이지만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이 함께 공유했던 그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은 평범하게 그리고 무심히 흘러가던 스무살의 일상 속에서 저자가 느꼈던 감성과 그 짧은 찰라의 기분을 글로 옮겨놓았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스무살 시절. 평범했지만 가장 빛나던 시간. 비추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던 청춘. 작은 것들도 크고 깊게 느끼던 그 시절의 소회를 풀어내었다. 스물에서 서른으로 겨우 10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우리 마음에선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 때의 감정, 그 때의 기분, 그날의 생각, 그리고 감성. 많은 것이 바뀐다. 감정은 무뎌지고, 과거만큼 나이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앞의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자 내 안에서도 많은 것이 바뀐다. 바뀌어버린 나의 시간, 시간이 뺏어간 청춘, 그 시간을 돌아본다.


책은 너무나 평범하다.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고, 뛰어난 성과를 내었다는 이야기나, 긴박하고 짜릿한 순간의 기록도 없고, 너무나 애절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구구절절한 사연도 없다. 책으로 내는데 이야기들이 이렇게 평범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이 다 그렇다. 뭐 특별할 것이 없는 그저 그런 이십대의 하루를 쌓아올리고 서른이 된다. 그게 인생이고 그게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물론 좀 더 추억이 진하게 배인 향기로운 추억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겠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추억을 공유하고,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그 이야기들이 평범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그 일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아빠와 동네 목욕탕에 가서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거나,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사먹은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별것 아닌 소소한 이야기지만 거기 추억이 담긴다면 그 감흥은 엄청나게 폭발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공공의 기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걸어온 시간의 회상에만 집중한다.


저자는 음악과 술을 좋아하고, 사람과의 관계보다 외로움과 고독을 자처하며 혼자 예술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혼자 부유하다 홀로 침잠했던 자신의 이야기, 음악 이야기, 윤상 이야기, 술 아야기, 영화 이야기, 사소하디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들. 당연히 어떤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완벽히 감정이입하여 공감하긴 어렵다. 혹은 누군가의 너무나 개인적이고 평범하고 사소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가 그리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가 공감대가 많이 없는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윤상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남자들이 윤상을 그렇게 좋아했던가? 윤상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타입의 가수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윤상을 좋아한다고 해도 마치 오래전 좋아한 가수를 공유했던 동지애적인 반가움이 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동시대를 살아오며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시대정신도 없고, 비슷한 걸 향유한 공감대도 별로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군데군데 비슷한 감정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스무살 때는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지만 서른이 되면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나 역시 내 인생 중 죽음의 시간과는 많이 멀었던 그 시절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앞으로 다가올 죽음과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해야할지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때보다 죽음에 더 가까워진 지금음 오히려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저자는 이십대를 죽을 것 같았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그것 아니면 죽을 것 같았고,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mp3플레이어가 없으면 죽어도 거리를 다니지 못할 것 같다고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고보니 전혀 죽을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이다. 왜 아니겠는가. 죽을 것 같다는 마음은 그만큼 열정이 넘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었으리라.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고, 고집도 꺾이고, 좋은게 좋은거란 생각을 하게 되면서는 죽어도~라고 생각하는게 조금 줄었다. 이십대 때에는 모든 감정이 극적이었다. 감정들이 나를 극한으로 내몰고 나도 그 감정에 동조하여 극적으로 행동했었다. 그것이 아마 젊은 혈기라는 것일테다.


청춘은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랬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고통을 서불리 피력하지 말라고 한다. 우린 상대방에게 내가 이렇게 아프니 자신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투정부리기 일쑤인데 애초에 상대방의 진심 어린 공감은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저자는 상대방이 나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상대도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될 때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 같은 똑같은 아픔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내 아픔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설픈 생각이다. 사람의 마음은 상대방이 나와 비슷한, 혹은 똑같은 아픈 경험을 했다고 하면 그 사람이 나의 아픔을 알아주고 힘든 것을 받아주길 원한다. 반대로 자신이 상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너도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너도 그런 아픔이 있다면 내 마음을 알테니 너만은 내 아픔을 알아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고, 날 케어하고 이해해줄 여력이 없다. 그래서 상대가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진다고 상대에게 고통을 피력하고 이해받길 원하는 순간 서운함과 원망스러움도 생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고통은 자기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감내는 셀프다.


저자의 일상은 나의 일상과는 달랐다. 좋아하는 가수도, 술에 대한 호불호도 다르다. 같은 시대를 걸어왔다 뿐 같은 아픔이나 비슷한 일상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대적 공감대가 아니라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것 같다. 정서적으로 느끼는 바가 비슷하고, 이십대의 아픔과 공허함, 삼십대가 되어 이십대를 바라볼 때의 느낌 등에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같은 시대정신을 가지고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어떤 무언가가 이어져있는 것 같다. 덕분에 친구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이십대는 어떠했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 중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의 가사 한구절이 생각난다. [오늘은 낡은 책상 서랍에서 십년이나 지난 일기를 꺼내어 들었지. 왜 그토록 많은 고민의 낱말들이 그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 젊은 시절은 참으로 고민이 많았다. 지나고보면 별 것아닌 고민들이지만 그땐 심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그런 고민을 나만 한게 아니었다. 어쩌면 그건 특정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고민이 아니라 이십대의 고민인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스무살 시절에는 그런 고민과 방황을 하게 되나보다. 그런 고민 많고, 수없이 방황하던 이십대를 되돌아보면 여전히 많은 고민을 껴안고 방황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내 마음은 아직 스무살의 꿈에 머무르는 가 보다. 다시 10년이 지나서 지금을 돌아보면 돌아가고 싶은 날이 되어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