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식사 - 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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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식문화는 그 나라의 사회와 정치, 문화와 밀접하게 연동되며 함께 변화해 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식문화는 그 나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게 된다. 우리의 식탁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식문화는 굴곡진 근현대의 역사와 함께 지난 100년동안 빠르게 변화해왔다. 특히 조선이 외국에 문을 열게된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1876년부터 한국의 식탁에는 다른 나라의 음식이 본격적으로 도입이 되며 식문화의 형태도 과거와는 많이 바뀌었다. 이 책은 세계 식품체제의 형성과 한반도 편입이라는 프레임을 적용하여 한국사의 주요 시기에 이루어진 한국인의 식생활과 세계 식품체제와의 접점을 살펴보며 개항 이후 145년 간의 한국 음식의 변천사에 대해 알아본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반까지의 한국의 근현대사를 개항, 일제강점기, 전쟁, 냉전, 압축성장, 세계화라는 여섯 시기로 나누어 한반도가 세계 식품체제에 편입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처음 다섯 시기는 한국이 세계의 식품체제를 받아들이고 거기 편입되는 과정이었다면 21세기 현재의 세계화 시기는 한국에서 생산된 이른바 K푸드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한국이 세계 식품체제의 한 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식품의 취향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적 산물로서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145년간 이어져온 한국의 식생활의 변천사를 통해 한국 음식문화가 만들어지는 역사를 알아본다.


개항의 시대는 외국 문물이 쏟아져들어오던 시기였다. 쏟아져들어온다고는 해도 현재의 문화 유입의 속도만큼 빠르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의 식품이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이나 중국만큼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조선으로 들어오던 서양인은 조선의 음식이 입에 맞을지 걱정을 했고 그래서 자신들이 먹을 것을 가득 싣고 왔다고 한다. 조선 황실은 서양인을 접대하기 위해 무려 서양인 요리사 까지 초빙하여 서양 손님들에게 서양 음식을 대접했고, 한국인 특유의 사대정신 때문인지 소위 관료와 상류층들은 서양의 테이블 매너를 익히는 것이 필수교양처럼 생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부터 벌써 서양의 우이쓰기(위스키)와 맥주가 들어왔고, 젊은 양반들이 독한 위스키를 즐겨마셨다고 한다. 고종이 고비 즉 커피를 즐겨마셨다는 것도 유명하다.


이 당시 세계의 식품의 유입은 어떤 면에서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조선의 황실이 조선으로 (처)들어온 서양인의 입에 조선 음식이 맞지 않을까 걱정하여 제국주의자들을 대접하기 위해 서양음식을 만들고, 그들의 식사 예법을 받아들인 것에서 시작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를 집어먹기 위해 조선으로 들어온 열강의 입맛까지 신경쓰다니 우리네 조상들은 참으로 속도 좋았다. 서양인을 모셔놓고 한국식 만찬(코스요리)를 맛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한국의 음식이 외국으로 건너가는 일은 없이 일방적으로 외국 식품을 받아들이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외국의 음식이 전파되고 퍼지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이런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유입이 더욱 심해졌다. 당시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서양의 과학기술과 문물을 받아들였는데 그로 인해 이미 서양식 음식이나 기술적으로 대량생산한 식품들이 많이 있었다. 일본은 그런 식품들로 조선의 입맛을 일본식으로 바꾸려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아지노모토, 바로 미원이었다.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20주년 기념으로 청사를 짓고 조선박람회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서 미원을 처음 선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애드벌룬도 띄우고, 신문에 광고도 때리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모양이다. 이때부터 한국의 외식산업은 미원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장유, 일본식 간장도 식당을 중심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본 손님이 많은 조선요리옥에서는 왜간장으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이를 본 김재은이라는 인물은 스키야키가 신선로를, 후쿠진즈케라는 절임식품이 짠지를, 양과자가 다식을, 정종이 소주를 정복했다며 조선의 요리 독립까지 잃어버렸다고 한탄하였다고 한다. 1930년대가 되자 조선사람 중에서도 일본의 식민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이들 중엔 일본이 전파한 각종 신문물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일본은 바로 그것을 노리고 조선인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꺾기 위해 신문물을 계속 퍼트렸다. 경복궁에 밝혀진 전등불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카페와 선술집에는 모던보이들이 재즈를 들으며 커피와 양주를 마셨다. 그로 인해 조선은 근대와 전통이 마구 뒤섞여 혼재되었다.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인의 입맛과 식문화가 이 때부터 일본식으로 많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지만 사람들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식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는데 흉작으로 인해 부유층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한국은 극단적인 식량 부족의 시대를 겪게 되었다. 최악의 식량 부족 상황에서 유엔군의 구호물자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최고급 요릿집이 손님으로 붐볐다고 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때는 워낙 먹을 것이 없다보니 후방의 사람들은 쌀 대신 감자나 국수 같은 대용식을 먹자는 운동이 벌어졌고, 쇠고기 국물 대신 멸시 육수를 내는 것도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고, 영양식인 메뚜기를 잡아먹자고 장려했다고 한다.


메뚜기와 함께 유행한 것이 바로 뻔데기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목화농사를 장려하여 경상도 쪽에 잠업이 성행했다고 한다. 그 목적은 싸고 좋은 명주실을 수탈해가서 일본에서 비단 제조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로 인해 경상도 쪽에는 번데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고, 이미 영양가 높은 번데기를 많이들 먹었다고 한다. 외국인 기피 식품 1위인 고단백 영양간식 뻔데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소면도 쌀을 대신한 대용식으로 유행했다. 함경도 피난민들이 메밀가루를 구하지 못해 밀가루로 냉면처럼 만든 것이 부산의 소울푸드 밀면이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렇게 배고프고 못살던 시대를 지나 냉전시대가 되면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소위 미국의 원조인데 전쟁기간 중에 긴급원조를 받고,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61년까지 본격적인 원조(aka 무상제공)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62년부터 93년까지는 차관 전환 시기였다. 잉여농산물은 미국에서 대량생산된 밀, 보리, 콩 같은 양곡 중 미국에서 자체적으로 소비하지 못하는 남는 것들을 말한다.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미국에게서 무상으로 받은 밀가루를 자신의 이름을 붙혀서 국민들에게 지급하며 미국이 준 구호품으로 온갖 생색은 자기가 다 내었다.


이 시기는 쌀이 부족해서 술을 빚을 때는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혼분식 장려운동(이라 쓰고 강제라고 읽는다)으로 한국인의 분식 소비가 늘어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억지로 계속 밀가루를 먹게 하니 입맛이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그리고 쌀소비를 줄이기 위해 식당의 밥그릇 크기를 작게 균일화 시켜버렸다. 멋대로 개인이 하루 먹을 양을 결정해버린 것이다. 이 무렵 한국의 제분공장은 모두 파괴되어 미국에서 보내온 밀을 밀가루로 만들수가 없었다. 그래서 밀을 일본에 보내서 밀가루를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일본은 수익을 얻게 되었다. 여러모로 한국전쟁이 일본의 경제 회복을 앞당기게 해주었던 것이다.


냉전이 끝나고 88서울 올림픽은 한국의 국제화, 세계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위 공산국가인 중국과 소련과의 교류도 시작된다. 말그대로 본격적인 세계화라는 조류에 올라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반대 급부로 이때부터 미국과 서유럽의 쌀시장 개방 압력도 강해지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쌀시장을 부분개방했는데 이로 인해 국민들의 지지를 급격하게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화 국제화가 이뤄지면서 식품 분야에서도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바나나 자몽 같은 열대과일이 붐을 일으키고, 육류 소비의 증가와 브로콜리, 셀러리, 피망, 파프리카 등의 서양 채소의 소비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한국은 압축성장 시기를 지나며 식품과 외식의 산업화를 이루었고 80년대의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유사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국민소득 증가는 식품 소비 욕구를 자극하여 외식산업과 유흥업은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나 97년 IMF를 맞으며 외식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실직자와 퇴직자들은 떢볶이, 김밥, 라면, 치킨, 제과제빵 등 체인점 사업에 뛰어들었고, 2000년 이후 농수축산물 시장이 완전이 개방되자 곡물의 식량 자급률마저 쌀을 제외하고 10% 이하로 떨어졌다. 식량자급률이 낮아지면서 국내 식량 공급이 해외 시장에 종속되는 식량안보에 위기가 온 것이다.


현재 한국의 식탁은 수입산으로 가득하다. 수입연어나 랍스터 같은 외산 식품의 수요가 늘어났고, 러시아산 명태나 칠레산 홍어처럼 한국의 식품이지만 원재료는 수입을 해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은 세계의 식품이 일방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일명 한국의 맛과 식문화가 역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매운맛.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매운라면 먹기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매운 음식이 젊은 이들의 문화처럼 널리 퍼졌고, 정을 나눈다는 캐치플레이즈로 유명한 초코파이나 메로나, 도시락 컵라면은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통해 짜파구리는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개항에서부터 K푸드의 세계화까지 세계의 식품이 어떻게 한국으로 편입되었는지 세계 식품체제의 한반도 편입의 시각에서 알아봤는데 단순히 세계 식품의 국산화라는 측면 뿐만 아니라 21세기 K푸드를 만들어낸 힘과 식량 주권이나 거대한 공장식 농수축산물 산업, 건강한 먹거리, 팬데믹 시대의 식생활 등 당장 우리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짚어보며 앞으로의 100년의 먹거리 산업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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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자 - 설형 문자에서 이모티콘까지 지양청소년 과학.인문 시리즈 1
비탈리 콘스탄티노프 지음, 이미화 옮김 / 지양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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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페로몬(향기), 움직임, 표정, 소리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중 동물들은 복잡한 소리 체계를 발전시켰는데 특히 유인원은 부드러운 소리를 내기 좋은 조음기관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가지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유인원의 뇌가 커지고 진화하면서 점차 문화와 기술의 발전도 함께 진행되었는데 인간은 몇 십만 전에야 비로소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백 개의 소리를 수천 개의 낱말로 만들어서 말을 하게 된 것인데 이 소리 하나하나가 언어가 되어 오늘 날 전 세계에는 7000개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소리는 언어가 되고, 언어를 그림과 기호, 조각으로 표현하다가 그것이 문자로 발전하게 된다. 고래나 말 등을 그린 동굴벽화 역시 초기 형태의 문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문자가 없는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의 민족들은 나무조각이나 동물의 가죽에 기호로 된 편지를 적어 보냈는데 집으로 초대하거나 연예편지를 쓰는 등 기호로도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듯 하다. 현재의 우리의 눈에는 단순히 조카가 그린 낙서처럼 보이는 동굴 벽화도 당시에는 나름대로의 문자체계를 가지고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는 문자로서의 기능을 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7만 년 전에 최초의 조형 그림과 작은 조각품들, 돌과 뼈에 새긴 무늬가 등장했고, 4만 년 전에는 동굴에 벽화를 그렸으며, 문자로 추측되는 기호들을 새겼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그냥 그림과 낙서처럼 보이지만 앞서 말할대로 과거에는 문자의 기능을 하며 충분한 의사소통의 기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때는 지금보다 생활 패턴이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문자가 필요하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그러다가 목축과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을을 만들어 살게 되고, 도시가 생기면서 세분화된 직업이 등장하면서 그에 따라 점차 복잡한 문자가 필요해졌을 것이다. 즉, 문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을 해 온 것이고 반대로 문자는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책에는 쐐기문자라고 일컫는 설형문자부터 이집트의 상형문자,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문자, 히브리문자, 그리스문자, 로마자, 룬문자, 아랍문자, 인도문자, 이모티콘과 유니코드까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전 세계의 문자체계를 알아본다. 하나의 문자를 한두페이지로 소개하고 있어서 깊이있는 설명을 하진 않지만 문자의 대략적인 구성이나 문자의 형태, 특징과 기원, 발전과정 등을 한번에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지금껏 한번도 보지 못했고, 그다지 관심을 두지도 않았던 여러 나라의 문자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비교하며 살펴보며 새삼 세계에는 수많은 문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문자를 창조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지금까지 문자를 창조한 인물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전세계적으로 우리 세종대왕 한 분 밖에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굉장히 많은 창조자들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다만 과거에 사라진 언어이거나 소수 원주민의 언어가 아닌 현재까지 존재하는 한 나라의 언어로는 한글이 유일하다. 역시 갓세종이시다. 그런데 책에 표현된 세종대왕은 무슨 중국사람처럼 그려져있어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에 찌들어있는 서양의 시각을 보여준다.


특이하게 영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클링온족의 언어도 소개되는데 이 언어는 언어학자 마크 오크랜드가 만든 것으로 영화 상에서 클링온족이 사용한 언어인데 작중의 설정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어휘, 문법, 발음체계가 잘 갖추어진 언어라고 한다. 그래서 국제표준화기구로부터 언어로서 인정받았다고 하는데 스타트렉의 팬인 트레키들은 이 클링온어로 대화하는 일도 많은 것 같다.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예로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작가인 톨킨이 창조한 엘프어도 클링온어처럼 대화가 가능하다고 하니 언어학자들의 덕력은 대단하다고 하겠다.


책은 재미있는 그림체와 간결한 글의 그래픽노블로 되어 있어서 복잡하고 어려운 문자 체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러문자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이 조금 더 눈에 잘 들어오고 가독성도 높은 것 같다. 가령 같은 문자를 사진으로 실어놓았다면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오래 보지 않고 대충 훑어보고 말았을 것 같다. 하지만 사진과는 다른 특징을 잡아낸 손그림이 주는 특유의 질감 때문에 눈길이 가고 집중해서 보게 된다. 여러 문자를 특성과 유형에 따라 분류하여 잘 정리해놓아서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재미있게 보고 세계의 문자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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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
박인조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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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해 있다. 하루키는 죽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죽음을 경험하지만 누구도 그 경험을 이해하고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불경한 것으로 여긴다. 죽음은 실체를 아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불분명한 것이지만 반드시 사람에게 찾아오는 인생에서 가장 분명한 경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이자 커다란 두려움이고, 삶의 마지막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그런데 죽음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사람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방식은 크게 달라진다. 슬픔, 두려움, 분노, 허무함 등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감정이 개입되는데 그 결과 화가들이 그림에서 죽음을 표현하는 태도도 크게 달라진다.


우리는 다양한 시각으로 죽음을 다룬 그림들을 통해 여러가지 태도로 죽음을 간접경험할 수 있게 된다. 책은 명화 속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24편의 예술가의 명화를 소개하고 있다. 화가들은 직접적으로, 때로는 상징으로서 죽음을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작품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리고 죽음이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메세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이들 명화를 통해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사유의 시간을 거치며 죽음이란 순간을 삶 속의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삶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고 경험해보도록 만든다.


이 책은 단순히 죽음을 다룬 그림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림이 담고 있는 죽음에 집중한다. 책을 통해 죽음을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슬프고, 추하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 무서운 존재쯤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어 현실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의 희열을 느끼자고 한다. 죽음 이야기로 삶을 생각하고 삶 속의 하나의 사이클로서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마지막 순간은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남을 삶의 순간이므로 더욱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지난 세월을 응축하는 아름답고 따뜻한 모습이길 기원한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의 챕터가 끝날 때마다 '나의 그림 속 죽음 이야기'라는 코너를 만들어 놓고 명화를 통해 새롭게 경험하고 느끼게 된 삶과 죽음을 되짚어보며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죽음의 경험과 이미지 등을 생각해보고 그림으로 표현해보도록 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가장 먼저 그것과 관련된 죽음에 대한 문학작품의 한 구절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품을 보여주며 작품해설을 하는데 작품을 각 그림을 파트별로 나누어서 그림의 각 파트들이 가진 상징과 의미는 무엇인지, 전체적인 느낌은 어떤지, 죽음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림의 배경설명 등 비교적 상세한 묘사와 해설을 담고 있다. 그림에 대한 설명 후에는 작가에 대한 소개와 화풍, 작가의 일생, 그림의 특징, 당시 그림의 사조 등 광범위한 해설을 이어간다. 그리고 특이하게 작가가 경험한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데 그런 작가의 경험이 그림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죽음이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는 그림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수도 있지만 저자가 진짜 하고 싶었던 죽음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덧붙인다. 죽음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나 영화를 인용하기도 하고, 죽음을 주제로 한 문학가의 잠언이나 학자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개인적 경험 또는 역사적 사건 등을 말하며 여러가지 테마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제한적이고 불가역적이다. 그 시간이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라도 그 시간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만들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 지금 내가 누리는 그 시간이 모두가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특별히 주어진 시간이라고 인식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


우디앨런은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을 알기에, 인간은 진정으로 느긋할 수 없으리라'고 말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시간이 지날 때마다 우리는 죽음에 한발자국씩 더 다가가게 된다. 그것을 인식한다면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발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이란 영원하지가 않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이는 현재의 모습에만 집착하고 거기에만 매달린다면 시간이 지나서 절망에 빠지고 말 것이다. 지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도 변화를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삶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죽음을 인식했을 때 그런 성숙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림 속에 죽음은 어떤 모습으로 담겨 있는가? 그 그림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느끼면 좋을까? 죽음을 보며 삶을 생각하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죽음으로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과 다가올 죽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삶과 죽음의 사유를 다루는 인문학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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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 - 하루 1작품 내 방에서 즐기는 유럽 미술관 투어 Collect 5
이용규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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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유럽 각지의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한 5명의 저자들이 하루에 하나씩 자신들이 아끼는 작품을 소개하는 컨셉의 책이다. 우선 도슨트라는 것이 생소해서 찾아보니 미술관에서 안내하고 작품을 설명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큐레이터는 많이 들어봤는데 도슨트와 큐레이터와의 차이점은 큐레이터는 기획, 디스플레이, 리플렛 제작 등 전시회의 전반에 관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도슨트는 관람객에게 미술품을 감상할 때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통해 이해를 도와주는 프로이야기꾼, 설명꾸러기인 셈이다. 5명이 각자 활동한 나라와 미술관별로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서 안방에서 유럽의 미술관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실제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것처럼 하루 1작품 씩 유럽 미술관의 작품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영화나 음악 등의 대중문화는 따로 해설이 없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취향에 따라 좋고 나쁨이 바로 결정된다. 물론 여러 인문학적 지식이 있다면 영화나 문학을 좀 더 색다른 관점으로 읽어내고 다양한 함의를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런 지식이 없어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회화는 다른 대중예술과는 다르게 관련 지식이 없다면 그것을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다. 회화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 그림과 관련된 뒷이야기, 그것이 그려진 시대상 등 다양한 지식이 없다면 그림을 통해 얻어지는 즐거움과 감동이 제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회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회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설가의 설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책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그 외지역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여러 미술관에 보관 중인 미술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5명의 도슨트들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각 나라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초이스하여 하루 하나씩 소개하는데 제각기 작품을 선정한 이유와 방식이 달라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가령 고전 미술보다 현대 미술 작가 위주로 선정했다거나 우리에겐 생소한 화풍의 작품들을 소개한다는 식이다.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도 작가의 이력과 성향에 집중하거나 화법이나 구도 등 작품 자체의 해설위주로 소개하는 파트도 있고, 작품의 뒷이야기나 때론 자신이 맨 처음 그 작품을 접했을 때의 느낌을 전하며 자신이 받은 인상비평을 하기도 한다. 작품 설명 가장 마지막에는 그 작품의 감상 팁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 작품을 읽어내면 좋을지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 감상팁은 정확히 그림의 해석에 대한 감상팁이라기보다는 작품과 관련된 트리비아 같은 내용들이라서 재미있는 상식을 얻을 수는 있고,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5명의 도슨트가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고, 앞서 말했듯 각자 다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설명을 하고 있어서 다양한 기준으로 선택된 그림을 각기 다른 다양한 방식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접하니 재미있고 흥미롭게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똑같은 형태의 해설이 반복되었다면 자칫 지루하거나 너무 이론적으로 들릴 수도 있었을텐데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매번 달라지니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책을 읽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설명도 있고, 약간은 부족하게 느껴지거나 자신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 해설방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중복되는 화가들이 몇 명 있는데 렘브란드, 고흐, 피카소, 프란시스코 고야, 페테르 파울 루벤스 이 다섯명의 화가들은 중복되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한명의 도슨트가 일방적으로 초이스를 한 경우라서 너무 편중되게 선택이 되었다는 인상도 있다. 물론 오히려 이들의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서양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이긴 하지만 너무 편중되게 소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분명 있다. 반대로 이 나라, 이 미술관에 가면 적어도 이 그림 정도는 반드시 봐주어야 한다는 도슨트의 압력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대단한 작품이고 도슨트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작품이란 뜻일테니. 뭐 나 역시 고흐나 렘브란트 같은 특정 작가를 편애하는 만큼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고흐와 렘브란트는 특이하게도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화가의 고향이 아닌 다른 나라의 미술관에 작품들이 흩어져 있고 각기 다른 나라의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책에서 고야나 피카소의 작품은 스페인의 미술관에 소장중인 작품들만 소개되고 있는데 그것은 스페인에서 일했던 도슨트가 고야와 피카소의 고향땅인 스페인에 왔으면 이들의 작품을 꼭 봐야지 않겠냐며 특별히 소개하기 위해 선정한 것일 뿐 다른 곳의 미술관에도 피카소의 작품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화가의 작품이 어느 나라의 미술관에 전시가 되어 있었는지 같은 것은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작품은 누가 구매했느냐에 따라 소장하는 곳도 달라지는 건 당연하니 꼭 화가의 고향의 미술관에 있을 이유는 없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화가의 작품이 일본이나 중국에 가 있다면 그건 굉장히 불편한 일처럼 느껴질 것 같다.


[절망 또는 희망]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있는 밀밭
고흐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흔히 고흐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까마귀 떼는 불길함을 나타내고, 갈림길과 끊어진 길이 암울하고 고립된 느낌을 주기 때문인데 요즘은 이 그림이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을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도슨트도 그런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데 황금빛 밀밭에서는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고, 까마귀는 봄을 알리는 새라는 것이다. 그리고 갈림길 중 하나는 지평선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아버지를 향한 애증]
빈센트 반 고흐, 성경이 있는 정물화
고흐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고흐 역시 한때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가 파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에는 기독교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너무 강한 소명의식 때문에 고흐의 삶이 힘들어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고흐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이 그림은 아버지가 사망한 후 하루만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성경은 아버지가 좋아한 구절이 보이게 펼쳐져 있지만 촛불이 꺼져서 읽을 수가 없고, 고흐가 사랑한 소설, 하지만 아버지는 싫어했던 애밀 졸라의 생의 기쁨이 초라하게 성경 아래 테이블 끝에 놓여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끝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외로움과 반발심 등이 복잡하게 담겨 있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알고 그림을 보니 그림이 새롭게 보인다.


[처절한 외로움의 눈빛]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고흐는 외로움과 가난으로 평생을 힘들어 했고, 우울증과 망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이력 때문에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것도 우울증이나 정신병력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같은 고씨 종친인 고갱과 함께 동거를 하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불화로 싸움을 한 후 정신 분열 상태에서(욱해서?) 면도칼로 귀를 잘랐는데 이 일로 고갱은 고흐를 떠나고 만다. 사랑받고 싶어서 가장 사랑받지 못할 행동을 해버린 우리의 고흐. 그림을 볼 때 우리는 당연히 귀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볼텐데 도슨트는 귀가 아닌 눈을 봐달라고 한다. 허공을 보는 텅빈 눈. 그 눈에서 우울과 절망을 느낄 수 있다.


[같지만 완전히 다른 작품]
빈센트 반 고흐, 낮잠 / 밀레, 한낮
대중문화계에서는 흥행한 영화를 리메이크 하거나 선배 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 하는 일이 많은데 미술계에서도 이런 일이 많이 있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다른 작가의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키며 모사, 패러디, 오마주하는데 고흐는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고흐의 낮잠은 밀레의 한낮을 오마주 하여 그린 그림이다. 좌우만 바뀌었지 자세나 풍경 등은 모두 똑같이 그려졌다. 다만 고흐만의 독특한 터치로 디테일은 많이 다르다. 밀레는 파스텔화인데 고흐의 그림은 유화라고 하는데 두 작가의 그림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가며 감상하면 재미있게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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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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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스페인의 지역 교회의 벽화를 그 지역의 화가가 복원했다가 엉망으로 만들어서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19세기의 예수 벽화인데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원숭이 그림이 그려졌던 사건이다. 처음에는 82살의 여성화가에게 역사상 최악의 복원이란 비난이 쏟아졌지만 오히려 그 그림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리면서 교회는 돈방석에 앉았고, 그 여성화가도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 그런데 정말 이것이 해피앤딩일까? 교회 입장에서는 관광객을 유치해서 큰 수익을 얻게 되었겠지만 19세기의 예술작품은 완전히 훼손되어버렸다. 심지어 그 사건 이후로 같은 목적으로 예술 작품을 훼손시키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돈 때문에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미술품 복원(혹은 훼손)은 논외로 하면 일반적으로 미술품은 굉장히 과학적으로 관리된다고 한다. 미술품은 제작된 그 순간부터 작품에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시간에 따른 작품의 변화조차 작품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감상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퇴색이 작품의 가치를 더하고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한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분명히 있다. 이런 보관과 복원의 과정들은 보존가와 보존과학자라는 조금은 생소한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작업은 철저히 과학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미술작품은 화가의 손에서 탄생해서 과학자의 손으로 보존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생소한 직업인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존과학은 미술품을 연구하는 학문의 한 분야로 미술 작품의 미학적 관점보다는 그 물성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작품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고 한다. 국내에는 10여명의 보존과학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들의 일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인사동 스캔들'이란 드라마에 이 직업이 나온 모양인데 여느 드라마와 같이 비쥬얼적이고 세련만 모습으로만 그려져서 실제와는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이 책에서는 실제 현장에서 보존과학자들이 미술작품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그리고 보존과학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에 대해 알아본다.


보존과학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직접 작품을 다루고 상처를 치료하는 보존가와 보존가의 활동에 필요한 과학적 정보를 연구하는 보존과학자가 그것이다. 즉 보존가는 직접 훼손된 작품의 복원작업을 담당하고, 보존과학자는 작업의 밑바탕이 되는 과학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미술품의 보존을 위한 과학적 실험과 분석은 중요하지만 보존가가 과학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보존가는 작품의 보존 처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과학적 지식을 교육받고, 보존과학자는 과학자로서의 전문 지식을 미술 보존이라는 분야에 적용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보존 처리는 보존가의 영역에서, 분석은 과학자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같은 목적으로 서로 융합하고 있는 것이다.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은 바로크를 대표하는 걸작이자 서양미술의 4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런데 빛의 화가란 별명이 붙은 렘브란트가 '야간'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해진다. 여기에는 과학적 사정이 있다. 렘브란트는 애초에 이 그림을 밝은 낮을 배경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야간순찰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나면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바니시'(한국에서는 니스라고 불리는 바로 그것)를 바르게 되는데 이 바니시는 시간이 지나면 열, 산소와 반응해서 누렇고 검게 변하게 된다. 렘브란트의 그림 역시 그림을 보호하고 화면에 균일함을 주기 위해 바른 바니시가 자체산화하면서 검게 변한 것이었다. 그것이 낮을 밤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940년 렘브란트의 그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보존가들이 심하게 색이 변한 바니시를 제거하고 새로 칠해주는 과정에서 숨어있던 렘브란트의 빛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림은 렘브란트가 의도했을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복원작업이 언제나 이렇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역작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가 장장 15년 동안의 보존처리를 끝마치고 대중에게 공개되자 기존보다 밝아진 벽화를 반기는 사람들과 역사의 흔적은 지워버렸다며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으로 양분되었다고 한다. 너무 깨끗해진 그림을 보고 단순히 그림의 때만 닦아낸 것이 아니라고 의심을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원래 입혔던 색들도 함께 닦여나갔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습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검은 음영을 표현할 땐 건식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했을 거라는 의견인데 말하자면 그림의 검은 부분이 때가 아니라 건식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음영인데 그것까지 다 닦아버려서 원래 그림과는 다르게 입체감을 잃어버렸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처음에는 모두 올누드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후 카톨릭이 보수적으로 변화면서 미켈란젤로 사후에 그의 제자가 옷을 덧칠하여 입혀넣었다고 한다. 만약 복원작업으로 미켈란젤로의 의중대로 그림을 처음으로 되돌리려면 그 덧칠된 옷까지 벗겨내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옷을 덧칠한 상태까지 복원을 시켰다고 한다. 이는 완벽하게 미켈란젤로가 처음 그린 그림대로 복원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복원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작품의 원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인지 보존과학자에게는 끝없는 숙제 같은 일이라고 하겠다.
 

미술관에는 스플링쿨러가 없다고 한다. 화재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미술관에 스플링쿨러가 없다니 의외였는데 미술품은 불에 타는 것보다 물에 젖는 것이 더 치명적이라고 한다. 컨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습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종이나 나무판에 그려진 그림도 마찬가지인데 습도가 높으면 늘어나고 습도가 낮으면 다시 수축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켄버스나 종이 속 섬유의 셀룰로스 즉 섬유질 때문인데 셀룰로스는 물과 쉽게 결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습도에 따라 화면이 울거나 틀어지게 되지만 완전히 젖어버리면 급격하게 줄어든다고 한다. 그대로 건조되면 줄어든 상태로 유지되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캔버스가 확 줄어들었다면 그 위의 물감은 거의 망가져버린다. 그야말로 그림 전체가 망가져버리는 것이다. 화재는 그림의 일부를 태우겠지만 물은 그림 전체를 망가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에는 습도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는데 그것과 더불어 빛과 벌레의 공격에도 신경을 쓴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의 예술작품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의 노력이 계속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화재 관리에 너무 소극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날림으로 보수하고 관리가 소홀하여 문화재가 상했다는 뉴스를 자주 듣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늙어감에 따라 주름이 많아지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인것처럼 미술작품 역시 시간의 변화에 의해 퇴색되고 시간의 때가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화가가 그려내었던 상태를 최대한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 또한 필요한 것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되니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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