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밤의 미술관 - 하루 1작품 내 방에서 즐기는 유럽 미술관 투어 Collect 5
이용규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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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유럽 각지의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한 5명의 저자들이 하루에 하나씩 자신들이 아끼는 작품을 소개하는 컨셉의 책이다. 우선 도슨트라는 것이 생소해서 찾아보니 미술관에서 안내하고 작품을 설명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큐레이터는 많이 들어봤는데 도슨트와 큐레이터와의 차이점은 큐레이터는 기획, 디스플레이, 리플렛 제작 등 전시회의 전반에 관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도슨트는 관람객에게 미술품을 감상할 때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통해 이해를 도와주는 프로이야기꾼, 설명꾸러기인 셈이다. 5명이 각자 활동한 나라와 미술관별로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서 안방에서 유럽의 미술관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실제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것처럼 하루 1작품 씩 유럽 미술관의 작품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영화나 음악 등의 대중문화는 따로 해설이 없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취향에 따라 좋고 나쁨이 바로 결정된다. 물론 여러 인문학적 지식이 있다면 영화나 문학을 좀 더 색다른 관점으로 읽어내고 다양한 함의를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런 지식이 없어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회화는 다른 대중예술과는 다르게 관련 지식이 없다면 그것을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다. 회화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 그림과 관련된 뒷이야기, 그것이 그려진 시대상 등 다양한 지식이 없다면 그림을 통해 얻어지는 즐거움과 감동이 제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회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회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설가의 설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책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그 외지역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여러 미술관에 보관 중인 미술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5명의 도슨트들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각 나라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초이스하여 하루 하나씩 소개하는데 제각기 작품을 선정한 이유와 방식이 달라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가령 고전 미술보다 현대 미술 작가 위주로 선정했다거나 우리에겐 생소한 화풍의 작품들을 소개한다는 식이다.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도 작가의 이력과 성향에 집중하거나 화법이나 구도 등 작품 자체의 해설위주로 소개하는 파트도 있고, 작품의 뒷이야기나 때론 자신이 맨 처음 그 작품을 접했을 때의 느낌을 전하며 자신이 받은 인상비평을 하기도 한다. 작품 설명 가장 마지막에는 그 작품의 감상 팁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 작품을 읽어내면 좋을지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 감상팁은 정확히 그림의 해석에 대한 감상팁이라기보다는 작품과 관련된 트리비아 같은 내용들이라서 재미있는 상식을 얻을 수는 있고,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5명의 도슨트가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고, 앞서 말했듯 각자 다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설명을 하고 있어서 다양한 기준으로 선택된 그림을 각기 다른 다양한 방식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접하니 재미있고 흥미롭게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똑같은 형태의 해설이 반복되었다면 자칫 지루하거나 너무 이론적으로 들릴 수도 있었을텐데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매번 달라지니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책을 읽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설명도 있고, 약간은 부족하게 느껴지거나 자신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 해설방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중복되는 화가들이 몇 명 있는데 렘브란드, 고흐, 피카소, 프란시스코 고야, 페테르 파울 루벤스 이 다섯명의 화가들은 중복되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한명의 도슨트가 일방적으로 초이스를 한 경우라서 너무 편중되게 선택이 되었다는 인상도 있다. 물론 오히려 이들의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서양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이긴 하지만 너무 편중되게 소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분명 있다. 반대로 이 나라, 이 미술관에 가면 적어도 이 그림 정도는 반드시 봐주어야 한다는 도슨트의 압력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대단한 작품이고 도슨트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작품이란 뜻일테니. 뭐 나 역시 고흐나 렘브란트 같은 특정 작가를 편애하는 만큼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고흐와 렘브란트는 특이하게도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화가의 고향이 아닌 다른 나라의 미술관에 작품들이 흩어져 있고 각기 다른 나라의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책에서 고야나 피카소의 작품은 스페인의 미술관에 소장중인 작품들만 소개되고 있는데 그것은 스페인에서 일했던 도슨트가 고야와 피카소의 고향땅인 스페인에 왔으면 이들의 작품을 꼭 봐야지 않겠냐며 특별히 소개하기 위해 선정한 것일 뿐 다른 곳의 미술관에도 피카소의 작품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화가의 작품이 어느 나라의 미술관에 전시가 되어 있었는지 같은 것은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작품은 누가 구매했느냐에 따라 소장하는 곳도 달라지는 건 당연하니 꼭 화가의 고향의 미술관에 있을 이유는 없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화가의 작품이 일본이나 중국에 가 있다면 그건 굉장히 불편한 일처럼 느껴질 것 같다.


[절망 또는 희망]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있는 밀밭
고흐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흔히 고흐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까마귀 떼는 불길함을 나타내고, 갈림길과 끊어진 길이 암울하고 고립된 느낌을 주기 때문인데 요즘은 이 그림이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을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도슨트도 그런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데 황금빛 밀밭에서는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고, 까마귀는 봄을 알리는 새라는 것이다. 그리고 갈림길 중 하나는 지평선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아버지를 향한 애증]
빈센트 반 고흐, 성경이 있는 정물화
고흐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고흐 역시 한때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가 파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에는 기독교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너무 강한 소명의식 때문에 고흐의 삶이 힘들어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고흐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이 그림은 아버지가 사망한 후 하루만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성경은 아버지가 좋아한 구절이 보이게 펼쳐져 있지만 촛불이 꺼져서 읽을 수가 없고, 고흐가 사랑한 소설, 하지만 아버지는 싫어했던 애밀 졸라의 생의 기쁨이 초라하게 성경 아래 테이블 끝에 놓여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끝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외로움과 반발심 등이 복잡하게 담겨 있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알고 그림을 보니 그림이 새롭게 보인다.


[처절한 외로움의 눈빛]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고흐는 외로움과 가난으로 평생을 힘들어 했고, 우울증과 망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이력 때문에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것도 우울증이나 정신병력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같은 고씨 종친인 고갱과 함께 동거를 하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불화로 싸움을 한 후 정신 분열 상태에서(욱해서?) 면도칼로 귀를 잘랐는데 이 일로 고갱은 고흐를 떠나고 만다. 사랑받고 싶어서 가장 사랑받지 못할 행동을 해버린 우리의 고흐. 그림을 볼 때 우리는 당연히 귀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볼텐데 도슨트는 귀가 아닌 눈을 봐달라고 한다. 허공을 보는 텅빈 눈. 그 눈에서 우울과 절망을 느낄 수 있다.


[같지만 완전히 다른 작품]
빈센트 반 고흐, 낮잠 / 밀레, 한낮
대중문화계에서는 흥행한 영화를 리메이크 하거나 선배 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 하는 일이 많은데 미술계에서도 이런 일이 많이 있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다른 작가의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키며 모사, 패러디, 오마주하는데 고흐는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고흐의 낮잠은 밀레의 한낮을 오마주 하여 그린 그림이다. 좌우만 바뀌었지 자세나 풍경 등은 모두 똑같이 그려졌다. 다만 고흐만의 독특한 터치로 디테일은 많이 다르다. 밀레는 파스텔화인데 고흐의 그림은 유화라고 하는데 두 작가의 그림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가며 감상하면 재미있게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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