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통조림 2 잡학사전 통조림 2
엔사이클로넷 지음, 주노 그림,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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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잡학사전 통조림]에서 통조림의 뜻은 제대로 된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통째로 조목조목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라고 한다. 흔히 영어 단어를 암기할 때 문장을 통째로 외우라는 말을 하는데 지식을 쌓을 때도 통째로 습득하라니 그게 어떤 의미인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식이야 뭐가 됐건 그냥 머리 속에 때려넣으면 되는 건데 통째건 토막이건 큰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런데 영어 단어를 통째로 암기하듯 책을 읽을 때도 통조림 방식을 활용하니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편한 것을 체감하게 된다. 책에서 소개하는 통조림 지식 습득법은 이렇다. 우선 세부적인 내용에 집착하지 말고 큰 틀에서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중심이 되는 내용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그런 후에 세부적인 내용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공부하라는 것


학교 다닐 때도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라고 조언하던 교수님이 많이 계셨는데 처음부터 개별적인 내용을 하나씩 무조건 외우려고 들면 이해도 잘 안 되고 어렵게 외운 것도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는 거다. 요는 부분부분을 쌓아서 전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틀을 만들어놓고 살을 붙여나가라는 것인데 만약 처음부터 세부적인 내용을 암기하려고 하면 각 파트 간의 관계나 맥락을 놓치게 되고, 파트가 많아지면 정리가 안되고 뒤섞여버려서 중간에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심지어 공부를 할 때는 목차를 먼저 쭉 읽고 시작하라는 말을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통째로-조목조목의 순서대로 책을 읽는다면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도 큰 틀에서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세부적인 내용을 아무리 읽어도 감이 잘 안 오기 때문에 가능하면 통째로 전체적인 의미를 이해한 다음 세부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보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편이라서 이 통조림이라는 말에 공감이 된다.


이 책은 12가지 테마로 총 427가지의 잡학 상식을 모아놓은 그야말로 잡학사전이다. 신체, 감각, 경제, 사물, 생물, 물리와 화학, 지구와 우주, 지리와 역사, 인물과 역사, 먹을거리, 문화와 스포츠, 관습과 규칙, 세상사 등 정말 다양하고 광범위한 분야의 지식을 모아놓았다. 책에서 다루는 테마 자체가 너무 전문적이거나 어려운 영역의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일상의 영역에서 만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지식들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다루고 있어서 부담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번쯤 왜 그럴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해봤음직한 내용이거나 평소엔 특별히 인식하진 못했지만 질문을 듣는 순간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질문들로 채워져 있어서 가볍게 읽으면서 다양한 분야의 상식을 쌓아갈 수 있다. 질문 자체가 전문적이거나 학술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답도 한페이지가 안되는 것들이 많고 그래서 아주 가볍게 읽으면서 다양한 상식을 쌓을 수 있다.


한페이지가 안 되게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길고 복잡한 해설이 아니라 핵심만을 요약해서 정리해놓았고, 설명도 전문용어 같은 건 없이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여 굉장히 쉽게 해놓아서 (물론 애초에 질문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 정도의 짧은 설명만으로도 충분한 답이 된다. 길고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 것보다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숏 콘텐츠가 대세인 요즘 트렌드에도 잘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짧다고는 해도 400가지가 넘는 내용이 담겨있다보니 책이 두꺼운 편인데 만약 짧은 형식이 아니었다면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짧고 가벼운 숏독 콘텐츠라서 그만큼 다양하고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으므로 오히려 지식의 가성비가 좋다고 하겠다. 특별히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흥미있는 파트를 읽던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가볍게 읽기에도 좋다.


평소 당연한듯 생각하고 있던 현상이나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고도 무심히 지나쳤던 사물들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은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막상 질문을 받고보니 왜 그런지 마구 궁금증이 생기는 질문들도 있고, 그간의 상식을 뒤집는 질문들과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질문들 까지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있다. 해설도 쉽게 되어있는데다가 마치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 환경의 모든 것들에 대해 궁금해하며 '왜?'라는 질문을 하듯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현상들을 '왜?'라는 과학적 사고를 통해 그 기저에 있는 원리를 알아보며 지식호기심을 채워나갈 수있게 도와주고 있어서 아이와 함께 읽기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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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명카피 핸드북 - 家族は、面倒くさい幸せだ。 가족은 귀찮은 행복이다 일본어 명카피
정규영 지음, 오가타 요시히로 감수 / 길벗이지톡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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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광고 카피라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개하고 판매하기 위한 메시지로 소비자의 주목을 끌어야 하는 만큼 짧은 문구 안에 함축적이고 임팩트 있는 내용이 담기게 된다. 그리고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문구로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많은데 이 말은 그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고, 시대정신과 정서가 포함되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사회·문화의 변화, 그에 맞춰 계속 바뀌는 사람들의 인식과 정서를 가장 선도적이고 압축적으로 모아놓은 것이 광고 카피라는 뜻이다. 그래서 짧은 문구지만 그 속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과 인식, 정서, 문화, 사고방식. 트렌드 등을 엿볼 수 있으므로 일본어로 된 광고 카피는 일본인의 정서와 생각, 일본 사회의 변화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단순히 단어, 어휘, 문장을 공부하는 것을 넘어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공부까지 한번에 할 수있게 되는 셈이다. 흔히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그 나라와 사람, 문화까지 공부하고 이해해야 진짜 제대로 된 언어를 알게 된다고 말하는데 광고 카피는 그런 공부버에 잘 부합하는 것 같다.


[일본어 명카피 핸드북]은 매년 그해 최고의 커피를 선정하는 카피 연감 중에서 200개의 명카피를 엄선하고, 해설을 곁들인 책이다. 인생, 사랑, 꿈, 일, 관계 다섯 가지 테마로 다양한 브랜드와 상품의 광고 카피를 담아 놓았다. 한 페이지마다 하나의 카피가 소개되는데 한국어 해석과 일본어 원문, 그리고 언제 어떤 광고의 카피였는지 광고 기업의 정보를 소개해 놓은 후 관련 배경과 일본 문화에 대한 해석 및 일본어에 대한 해설을 달아놓았다. 가장 마지막에는 사용된 단어를 정리하여 놓아서 따로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알차게 공부를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카피는 원래가 짧은 문구로 되어 있어서 설명 또한 길지 않고 덕분에 부담없이 공부하기 좋다. 카피는 평소 자주 쓰는 쉬운 단어와 표현, 패턴으로 되어 있어서 가볍게 읽다보면 현지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활용도가 높은 일본어를 배울 수 있다. 특히 단순히 어휘와 표현을 해석해놓는데 그치지 않고 뉘앙스를 설명해놓아서 그 문구에 담긴 정서와 숨은 의미를 정확히 이해시켜 주는 점이 아주 좋다. 기계적으로 어휘의 뜻을 암기하는 것보다 이렇게 함축적인 카피를 통해 뉘앙스를 이해하니 그 어휘와 표현의 쓰임이 더 잘 이해된다.


책 속의 문구와 표현들을 알아두면 적절하게 실회화에서 써먹기도 좋을 것 같다. 이런 감각적인 인스타 감성의 문구들을 일상 대화를 할 때 쓱 하나씩 섞어주면 센스있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그만큼 회화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표현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또 앞서 말했듯이 광고 카피는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것들이 많아서 한장한장 읽다보면 그 기발함에 감탄하게 되는데 재미와 울림이 있어서 책을 읽는 그 자체로도 꽤나 즐겁다. 만화 같은데서 자주 보게 되는 일본 감성 특유의 감동적이고 느낌있는 명언, 명대사 같은 문장이 잔뜩 나와있어서 그걸 읽는 재미에 공부라는 인식이 없이 그냥 술술 읽힌다. 그 중에는 생각하게 만드는 카피도 있고, 뭔가 깨우치게 해주는 글이나 소위 말하는 힐링계나 위로와 공감을 담은 감성글도 있어서 단순한 재미 뿐만 아니라 꽤나 힐링이 되기도 한다. 카피를 읽고 과연 어떤 광고글인지 맞춰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人間をさぼるな 인간임을 게을리하지 마라. 이런 글귀가 참 멋있는 것 같다. 굉장히 짧지만 뭔가 큰 울림이 있다. 카도카와문고의 책 광고다. 저자는 인간임을 게을리하지 마라고 해석했지만 직역해서 인간을 게을리하지 마라도 괜찮은 것 같다. 人生になっかたものしか、人生は変えられない 인생에 없던 것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혼다 TV 광고. 인생에 없던 혼다를 사라는 뜻인 것 같은데 다른 상황에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문장이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이다는 말도 있던데 변하지 않는 생각과 변하지 않는 행동으로는 인생이 변하지 않는다는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법칙. 이런 걸 간략한 한마디 문장으로 인상 깊게 말할 수 있다니 너무 멋있다. 似ているところを探して、似てないところを好きになる 닮은 점을 찾았는데 닮지 않은 점이 좋아진다. 오츠카 이온워터 포스터. 사실 이 문구가 포카리스웨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멋진 말이다. 夏はハタチで止まってる 트로피컬 산토리 광고. 너무나 일본스러운 캐치프레이즈다. 처음에는 열아홉으로 하려고 했는데 술광고라서 스무살로 바꿨다고 한다. 그럴싸하다. 이런 감성이 너무 좋다. 지금까지 문구를 보면 전부 아는 단어에 쉬운 표현들이라서 아마 일본어를 조금만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전부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일 거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단어와 어휘들로 깊이 있는 문장이 나온다는 게 너무 감탄스럽다.


失敗じゃないよ成功の途中 온워드 온라인 광고라는데 뭐하는 회사인지는 모르겠다. 베가본드에 이것과 비슷한 대사가 나와서 기억하고 있는데 누군가를 위로할 때 써먹으면 좋을 말이다. 家族は面倒くさい幸せだ 가족은 귀찮은 행복이다. 시나노마이니치신문사 광고. 멋진 말이기는 한데 마이니치 신문과 어떤 관련이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히 가족은 있으면 귀찮을 때가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손주들이 오면 좋고, 가면 더 좋고 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大人になって知ったこと。 誠意は結局金額だいうこと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된 것. 성의는 결국 금액이라는 것. JT Roots 광고라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어른이 되고 보니 이 말이 딱 맞다는 걸 느낀다. 이제 설이라서 조카들 용돈을 얼마줄지 고민인데 사랑하는 만큼 주려니 사랑만큼 돈이 많지 않아서 고민하는 중이다. 결국 금액인데 참 힘든 고민이다. 大人になりたい。 だけどあなたのようにはなりたくはない。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도 당신같이 되고 싶지는 않다. 뉴발란스. 요즘 온라인 상에도 이런 말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땐 이 문장을 기억했다가 해주면 되겠다. 私の人生に登場してくれてありがとう 내 인생에 등장해 줘서 고마워요 그냥 가슴이 짠해지는 말이라서 꼽아봤다. 내 인생에 누군가가 등장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기적같은 일이다. 그 사람에게 옐로카드를 줘서 퇴장시키는 일은 없어야할텐데..


분명 일본어 공부를 위한 책이다. 일어 문장이 있고, 그에 대한 해석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공부보다는 그 문장, 글귀에 빠져들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슴이 짠해지기도 하고, 생각도 많아지고, 괜시리 흐뭇한 미소가 번지기도 한다. 그래서 책후기도 일본어 공부의 측면보다 책에 나오는 인스타 감성의 문구들을 소개하는 쪽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그만큼 책에 소개된 카피들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어 학습을 위한 교재로서도 충분히 제값을 한다. 앞서 말했듯이 문장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고 쉬운 단어와 표현들로 만들어져 있어서 문장을 이해하고 암기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쉬운 표현으로 깊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문장을 배울 수 있어서 실용적이고 가성비 높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다. 지금까지 노래 가사나 드라마 대사로 공부하는 건 있었지만 이렇게 카피를 활용해서 공부할 생각을 왜 안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만족스럽고 가능하면 시리즈로 계속 다음 책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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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도감
묘엔 스구루.사사키 히나.마나코 지에미 지음, 이지수 옮김 / 서교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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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좋은 사람 도감]은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좋은 사람을 발견하여 수록한 도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어떤 크리에이티브 팀이 좋은 사람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반응이 좋아서 물 들어온 김에 노젓는다고 전시회에 사용된 작품들을 책으로 까지 만든 것 같다. 어떠한 기준으로 좋은 사람을 선정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그냥 자신들이 느끼기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선정한 것 같다. 책에서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정확히는 어떤 특정 인물이 아니라 어떤 좋은 행동을 하는 누군가라는 뜻으로 보면 되겠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좋은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 평소 잘 인식하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좋은 사람 혹은 그들의 사소하지만 좋은 행동에서 행복함을 느껴보자는 그런 컨셉인 것 같다. 확실히 요즘처럼 각박하고 혐오와 분노가 많아진 시대에는 좋은 사람이 선행을 베푸는 글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뭉클해지는 걸 느끼게 되고, 또 나 역시 그런 좋은 사람이 되어보자는 반면교사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필요한 책인 것 같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착한 사람이나 예의바르고 친절한 사람 정도가 떠오르는데 책에 소개된 좋은 사람은 뭐랄까 그런 것보다 조금 더 소소하고 작은 행동을 하고 있어서 뭐 이런 것까지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싶은 것도 나온다. 정말로 이런 행동들이 좋은 사람의 좋은 행동인데 그걸 좋다고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런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무시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일본과 한국의 정서적 차이인지 아무리해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고, 이건 좋은 행동이 아니라고 반대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이 정도의 행동이라면 따라 해도 나쁠 건 없겠다고 느껴지는 선하고 착한 행동들이다. 책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굳이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일부러 그런 수고를 하는 사람, 상대의 기분과 감정을 배려하는 사람 정도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매너가 있다고 말해지는 사람, 흔히 말하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총 4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직장·학교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 취미·놀이 활동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 밥 먹을 때 만나는 좋은 사람, 생활하며 만나는 좋은 사람으로 묶어서 좋은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렇게 구분을 해놓기는 했는데 딱 이 분류에 정확히 맞게 구분된건 아니라서 그냥 편하게 보면 되겠다. 도감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간단한 일러스트로 되어 있고, 좋은 행동을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러저러한 좋은 사람이라고 제목에 명시해놓고 POINT로 정확히 그게 어떤 행동인지를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또 일러스트에 추가적인 설명이 들어가는데 그 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의 심리나 성향 이 사람은 이런 일까지도 해주더라 하는 식의 추가적인 설명인데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성향이겠구나 또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일까지 해주겠구나 싶어서 대체적으로 공감이 된다.


정수기 물통을 나서서 갈아주는 사람, 사무실 복사기 용지가 다 떨어지기 전에 넣어주는 사람, 월초에 달력을 뜯어주는 사람. 이런 건 솔직히 해본 사람만이 아는데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첫직장 신입이었을 때 총무팀이어서 이런 일을 했었는데 사람들은 응당 당연히 내가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이런 일을 한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고맙게 여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왜 미리 해놓지 않았냐며 짜증을 내기가 일쑤였다. 근데 사실 알고보면 업무적으로 꼭 내가 하게끔 되어 있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저걸 한번 두번 알아서 해주는 사이에 어느샌가 내가 해야만 하는 일로 굳어져버린 것이었다. 이게 문제다. 누군가가 선의를 가지고 일을 하면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데 저건 당연히 저 사람이 하는 거니까 일이 안 되어 있으면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을 닥달하고 욕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런 이기적인 사람들이 대다수이다보니 선의로 일을 하는 좋은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고로 정수기 물통을 나서서 갈아주고, 복사지 용지가 떨어지기 전에 넣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맞다.


바쁠 때라도 말을 걸면 일단 키보드 치는 손을 멈추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별 것 아니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차원에서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 요즘은 특히 키보드 뿐만 아니라 폰을 하는 중에 말을 걸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매너가 아님에도 의외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당장 나부터도 폰을 하면서 대화를 하는 일이 굉장히 많은데 꼭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 간의 기본적인 예절을 지키기 위해서라더도 책을 보니 이런 점은 고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 침이 튈까봐 빵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든가 영화관에서 소리나지 않게 조심해서 팝콘을 먹는다든가 이런 건 너무나 기본적인 매너인데 이런 기본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말하자면 자기 멋대로 맘대로 편한대로만 하려는 무개념이 많아져서 아주 기본인 이런 걸 지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버린 세상인 것이다.


계산대 앞 발자국 마크에 정확히 발을 맞추고 기다리는 사람도 좋은 사람이라고 해놓았는데 이걸 보니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무렵 마트에 갔었는데 그땐 모든 곳에서 거리두기를 하라고 했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줄을 설 때도 앞뒤 사람이 떨어져서 줄을 서라고 했는데 그날도 난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내 뒤에 있던 노인이 앞으로 빨리 붙으라고 잔소리를 하며 화를 냈었다. 붐비지도 않는 한적한 시간 서너명의 사람이 줄을 서고 있어서 딱 붙지 않으면 복잡해서 움직일 수 없다던가 다른 사람이 어영부영 줄 사이에 끼어들 상황도 아니었다. 앞 사람 계산이 끝났는데도 앞으로 가지 않고 계속 서 있던 것도 아니고 앞 사람이 한창 바코드를 찍고 있던 중이었음에도 앞으로 가서 바짝 붙지 않는다고 쨍알거렸던 것이다. 나는 계산대 앞의 발자국 마트에 정확히 발을 맞추고 기다리고 있었으니 난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한국사회는 좋은 사람이 되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여유가 없고 지나치게 공격적이 되버린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아주 감동적이거나 가슴이 훈훈해진다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깨우쳐주는 지점은 분명 있다. 나도 여기 있는 것을 따라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건 오바일 수도 있겠고, 여기 소개된 행동들을 한다고 남들이 날 좋은 사람으로 봐주거나 또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될리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크게 어렵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은 작고 소소한 행동들로 우리의 일상을 채운다면 매우 보람있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은 든다.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는 사람, 상대의 고마움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사람간의 관계에서 기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쩌면 여기 소개된 작은 일들을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작은 실천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해볼 점도 많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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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진의 시대유감 - 나는 고발한다, 당신의 뻔한 생각을
정영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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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정영진이란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무슨 이상한 빅데이터 전문가라고 소개되며 언론에 나왔을 때였는데 이상한 직함하며 모든 게 딱 사기꾼인줄 알았다.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해선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후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펼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 정영진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차근차근 상대를 설득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굉장하다고 느꼈는데 꼭 말을 하고 토론을 하는 기술 뿐만 하니라 어떤 사안에 있어서 핵심이 무엇이고, 어떤 것에 집중을 해야하는지 맥락을 짚어내는 기술도 뛰어나서 게스트가 나와서 어려운 말을 할 때면 중간중간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통해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할 수 있게 이끌어내는 기술도 상당한 것 같다. 또 때로는 상대의 개소리를 합리적인 주장으로 깨부수는 걸 보면서 시원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이 사람 참 매력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 사람의 생각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팟캐스트 방송들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정영진의 시대유감]은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교양 등 지금의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정영진의 냉철하지만 약간은 냉소적이로 딴지가 섞인 시선으로 솔직하게 풀어보는 일종의 정영진식 즉문즉답이라고 하겠다. 요즘엔 이런 하나의 이슈에 대해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는 즉문즉답 형식(?)의 컨텐츠가 참 많은데 대부분 그 기저에는 위로와 공감 따위의 것들을 깔아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통해 힐링을 주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런 컨텐츠는 너무 많고 사실 별로 위로가 되지도 못한다.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과 까칠한 목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는데 항상 공감만을 외치는 게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너무 거슬린다. 그런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기라도 하듯 정영진은 식상하고 획일화된 사람들의 생각에 딴지를 건다.


책은 세파트로 되어 있는데 각각 모순, 가식, 소신의 명제를 가지고 있다. 명제는 각기 다르지만 뻔한 생각이 아닌 삐딱한 생각이라는 주제의식은 같다. 행복, 죽음 같은 철학적 문제에서부터 치킨 값, 통신 요금, 먹방, 개식용 등의 최근의 사회·문화적 이슈 그리고 정치, 성, 세대론, 계급 등 민감한 주제에까지 과감히 문제제기를 하고 소신있는 발언을 이어간다. 일단 책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이 상당히 민감하고 의견이 찬반 양극단으로 나뉘는 논쟁적인 이슈들이라서 그 자체로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관련된 주제들로 설전이 자주 오가는 걸 볼 수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주장들이 정제되지 않고 불필요한 곁가지와 비방이 많아서 그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데 귿지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런데 책을 통해 잘 정리된 그리고 커뮤에서 흔히 보는 뻔한 내용이 아닌 색다르고 독특한 의견을 듣다보면 찬반 어떤 입장이건 간에 자신의 생각의 폭을 확장하는데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을 읽을 때 정영진과 같은 입장이건 반대의 입장이건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중심에 놓고 정영진의 주장과 비교하며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책을 통틀어 가장 공감하며 마음에 와닿았던 주제는 "세상 한심한 단어 공감 능력"이었다. 공감 능력이라는 게 세상 한심한 말이라는 것에 공감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이건 평소에 나 역시 정말 늘 생각하던 의견이었기 때문에 아무튼 그랬다. 요즘은 어딜 가나 공감 타령을 하고 공감을 요구하고 강요하고, 자기 말에 조금이라도 반박하면 소시오패스 취급까지 받는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공감능력이란 사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 편을 들어라는 것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책에는 그것을 공감 능력이 아니라 "편들기 능력"이라고 명명하고 있고 이것은 사춘기 이전의 공감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갑질하는 사람들은 이 편들기 능력에 길들여진 사람일 거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몇가지 상황을 더 제시하면서 이 공감 능력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하는데 평소 똑같이 공감 능력을 강요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이렇게 논리적이고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하도록 체계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답답해했었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니 속이 뻥 뚫린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주장도 굉장히 흥미롭다. 가령 약자가 착한 사람이라는 오해라거나 성 상품화가 잘못이라거나 잘못된 경어 문화 같은 것을 꼬집는 파트들은 분명 의견은 갈리겠지만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보통 다수의 의견에 편승하면 속편하다. 소수의 입장에 섰을 경우 다수의 힐난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많은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생각하는 대신 그냥 쉽게 다수의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 자기 생각이 없거나 자기도 다수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스스로 믿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 그러하니까 그냥 그것을 따르는 것과 자신의 생각이 정말 그렇기 때문에 그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많은 경우 다수의 의견을 거스르지 못하고 기존의 틀에 박힌 뻔한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며 살아간다. 여기에 반박을 하고 감히 불만을 가진다는 것은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불편한 질문이 던져졌을 때에만 비로서 자신의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진짜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남의 시선이나 권위에서 벗어나서 주도권을 쥐는 삶을 살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의외로 글의 수위가 쎈 편이다. 가령 성이나 젠더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반대편에 있는 소위 페미들의 주장을 가져와서 그것을 통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까는 식이다. 꼭 어떤 특정인의 발언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고 그 집단이나 세력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하는 표어나 문구들을 인용하는데 그걸 반박하면서 하는 말들이 단세포적이라거나 한심함을 넘어 절망을 느낀다거나 하는 식으로 꽤 수위가 높다면 높다. 그리고 먹방에 미쳤다거나 기념할 것도 더럽게 없다는 둥 제목도 약간 공격적인 것들이 보이지만 사실 자극적인 문구와는 달리 전체적인 내용은 차분하고 이성적이다. 그러니까 프로 불편러의 대책없는 전방위 모두까기나 억까가 아니라 나름의 주장을 가지고 불편을 질문을 던지며 기존의 의견에 반박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있게 전개해나가는 때로는 인문학적이고 때로는 철학적인 정영진의 생각을 모아두었다고 하겠다. 이렇게 다양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정영진의 사고와 철학의 깊이에 감동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너무 획일화되고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대중의 생각과 다르면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가지려는 거냐고 설교하고 비판하고 따돌리려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똑같은 것을 똑같이 보고 똑같이 느끼도록 강요당하며 거기서 벗어나는 생각을 하는 것을 차단당한다. 그래서 나처럼 반골기질이 있는 사람은 정영진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각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주장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물론 단순히 삐딱하게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그런 결과를 도출해가기 까지의 이성적인 판단이 뒤따르고,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냉소적인 시선, 획일화된 사고에 와사바리 거는 의견 같은 걸 너무 좋아하지만 그 생각을 체계적이고 설득력있게 정리해서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 하던 그 삐딱한 생각을 잘 정리해서 대신 말을 해주니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 아주 시원하고 큰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이유로 책을 읽는 시간이 상당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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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
센님(정세영) 지음 / 길벗이지톡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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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일본어 공부를 꽤 오래했었다. 대학 다닐 때 일본어에 맛이 들어서 열심히 교재를 읽고, 문제풀이를 하며 꽤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공부"를 안 하고 있는데 왜 "공부"라는 단어를 강조하냐면 난 옛날 사람이라서 "공부"라고 하면 교재를 읽고, 문제풀이를 하는 전형적인 입시용 학습법을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법을 익히고, 문제를 풀고 그런 식의 형태가 아니면 왠지 공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무튼 예전에는 열심히 일어공부를 했지만 이후로는 교재를 읽고, 문제풀이를 하는 형식의 공부는 하지 않고 일어 문고본을 읽거나 영상 등을 통해 간접적인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원서를 읽고 영화를 보는 것으로는 일본어 실력이 늘어나기는 커녕 유지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아무튼 지금은 공부를 안 하지만 일본어에 빠져서 열심히 공부를 했던 시절에도 아주 수준급으로 일본어를 구사하진 못했다. 말했듯이 당시에는 교재를 읽고 문제를 푸는 형식의 공부를 했는데 문법에 치우쳐서 공부를 하다보니 문제는 풀 수 있지만 틀 안에 갇혀서 프리토킹, 히어링은 상대적으로 취약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게시판을 보면 자신은 따로 책을 보고 문제풀이를 하는 공부를 하지 않고도 좋아하는 애니나 일드만 보고도 일본어를 마스터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런 글을 보면 좀 짜증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나는 "공부"를 했는데도 일본어를 잘 못하는데 왜 저 사람은 "공부"도 안 하고 어떻게 일본어를 마스터했다는 건지 짜증이 나면서도 궁금했었다.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는 바로 그 짜증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독학으로 일어를 공부해서 3년 만에 능력시험 1급을 따고 지금은 일본에서 한국어 강사로 생활하며 일본어 유튜브도 돌리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뽕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마도 가장 부러운 테크트리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는 일뽕이 없음에도 저자의 행보가 굉장히 부럽다. 사실 그동안 일어 공부를 위해 일드나 애니 같은 것을 좀 보기도 했는데 이게 생각만큼 크게 공부가 된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실제로도 별로 실효성이 없었다. 그저 일드나 애니만 본다고 공부가 되진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애니를 봐야 일본어를 잘 하게 될까? 저자의 비법을 한번 들어보자.

애니나 일본 만화 좀 본 사람이라면 책의 제목부터가 덕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요즘 일본 애니에서 아주 많이 보이는 스타일의 제목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저자가 애니 좀 본 덕후구나 하고 딱 느낌이 온다. 책은 총 8파트로 덕질을 시작으로 저자 본인이 애니를 보며 공부를 한 방식 같은 것을 단계별로 하나씩 설명하고 그러다가 능력시험을 치고 마지막으로는 퇴사하고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공부를 해왔던 수기 형태의 글이라서 실제로 일본어를 익히려는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실용적인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저자가 일어를 익혀가면서 써먹었던 공부법(물론 전통적힌 형태의 "공부"는 아니지만), 실수담, 공부를 위한 환경 만들기,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용한 방식 등 저자가 말해주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독자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과적으로 일본어와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저자의 방식이 절대적이고 꼭 그것을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에서 자신만의 솔루션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애니나 일드에 취미를 붙이기가 힘들었다. 애니라는 그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크게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는 장르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소위 덕질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저자는 덕질에 스며들기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스포츠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볼게 없어서 하도 유명하다고 떠들어대던 하이큐!!를 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별루라고 생각이 되다가 점차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어느 한 작품에 스며들기 위한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니고 일단 한번 시도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인가보다. 재미가 없고 지루해도 그래서 흥미를 잃어도 일단 계속 읽어봐라. 그러면 그러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덕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유명한 원피스를 보려고 펼쳤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1권은 고사하고 1회도 다 끝내지 못하고 던져버린 경험이 있다보니 결국 덕질로 가는 길은 일단 가속이 될 때까지는 지루해도 계속 정주행을 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발동만 걸리면 덕질 프로세스는 자동으로 발동이 된다고 하니 초반에 좀 지루해도 꾹 참고 원피스건 뭐건 한번 읽어봐야겠다

J-pop으로 공부하기에 대한 팁도 나오는데 역시 그냥 듣는 것만으로는 귀가 트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노래로 공부하는 것에 대한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떤 식으로 노래를 들으면 공부가 될지 나름의 방법을 제시한다. J-pop을 통해 배우기 좋은 건 발음이라고 한다. 어휘나 표현은 문학적이라서 실제 회화적인 표현과는 다르기 때문에 노래는 일상 회화가 아닌 일본의 감성과 발음을 배우는데 적합하다는 것. 그러면서 감성적인 노래, 신나는 노래, 운동할 때 듣기 좋은 노래 등 저자가 추천하는 리스트가 소개되어 있는데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J-pop을 한창 듣던 건 벌써 한참 오래된 일이니까.. 아무튼 일어 공부를 할 때 중요한 포인트는 귀가 트여야 하는 건데 이때는 노래건 애니건 듣기 교재건 뭐가 됐건 무조건 많이 들으라고 밑줄까지 쳐가면서 조언한다. 저자는 이 단계까지 온 다음에야 문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히라가나부터 외우고 문법을 하고 회화로 넘어가는 기존의 순서와는 정반대인데 어쩌면 정해진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공부를 한 것이 일본어를 잘하게 된 비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어느 것을 먼저 하건 어느 순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반드시 그냥 외워야만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 중 처음으로 암기해야 하는 것은 히라가나·카타가나이다. 이건 답이 없다. 그냥 외울 수 밖에 없고 외워야만 한다. 그런데 이렇게 그냥 무조건 외워야 하는 것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쉽고 편하게 외울 수 있게 다양한 암기법과 공부법을 소개해놓고 있다. 이쯤되면 저자는 그냥 애니만 보고 일본어를 잘하게 된 게 아니라 나름 일본어를 잘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다양하게 시도하며 엄청 열심히 공부를 한 거라고 봐야한다. 아무튼 저자는 애니나 J-pop 등을 보고 들으며 듣기 훈련을 하고 또 끊임없이 일본어로 혼잣말을 하며 말하기 훈련을 하면서 일본어를 익혀나갔다고 한다. 기존의 문법을 딸딸 외우고, 문제풀이를 하던 전통적인 주입식 암기형 공부법이 아니라서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일본어 공부가 가능했던 것 같다. 심지어 애니를 보면서도 이것도 공부다, 일본어를 배우기 위한다는 생각으로 애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덕질을 위해 애니를 본다는 마음으로 봤다고 하는데 학습 또는 공부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애니를 봤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일본어 공부를 위해 드라마를 볼까? 라고 생각하고 드라마 보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좋아하던 드라마도 그게 공부라는 이름으로 보게 되니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저자와 같은 마음가짐이 참으로 중요할 것 같다.

그 후에는 일본어를 장착하고 나서 떠나는 일본여행, JLPT 능력시험 도전기, 크리에이터로서의 활동 영역을 넓히며 일본어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게 되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떠나게 된 인생 경험 등이 소개되는데 일본어를 잘하기 위해서 꼭 이 부분까지는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한가지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정도의 열정과 노력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덕질로 일본어를 익히라는 것의 핵심은 결국 끊임없이 계속해서 일본어를 접해라는 뜻인 것 같다. 공부라는 형식은 쉽게 지루해지고 어느 순간 벽에 막혀버리게 된다. 하지만 애니나 일드 같은 것을 보고 즐기며 덕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접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거기서 조금만 보는 방법을 달리하면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익히게 된다는 매커니즘인 것 같다. 사실 애니나 일드로 공부를 해볼 생각은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잘 안되었는데 저자가 알려주는 여러 방식을 참고해서 다시 한번 일본어를 마스터할 수 있게 공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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