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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진의 시대유감 - 나는 고발한다, 당신의 뻔한 생각을
정영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정영진이란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무슨 이상한 빅데이터 전문가라고 소개되며 언론에 나왔을 때였는데 이상한 직함하며 모든 게 딱 사기꾼인줄 알았다.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해선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후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펼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 정영진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차근차근 상대를 설득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굉장하다고 느꼈는데 꼭 말을 하고 토론을 하는 기술 뿐만 하니라 어떤 사안에 있어서 핵심이 무엇이고, 어떤 것에 집중을 해야하는지 맥락을 짚어내는 기술도 뛰어나서 게스트가 나와서 어려운 말을 할 때면 중간중간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통해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할 수 있게 이끌어내는 기술도 상당한 것 같다. 또 때로는 상대의 개소리를 합리적인 주장으로 깨부수는 걸 보면서 시원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이 사람 참 매력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 사람의 생각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팟캐스트 방송들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정영진의 시대유감]은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교양 등 지금의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정영진의 냉철하지만 약간은 냉소적이로 딴지가 섞인 시선으로 솔직하게 풀어보는 일종의 정영진식 즉문즉답이라고 하겠다. 요즘엔 이런 하나의 이슈에 대해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는 즉문즉답 형식(?)의 컨텐츠가 참 많은데 대부분 그 기저에는 위로와 공감 따위의 것들을 깔아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통해 힐링을 주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런 컨텐츠는 너무 많고 사실 별로 위로가 되지도 못한다.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과 까칠한 목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는데 항상 공감만을 외치는 게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너무 거슬린다. 그런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기라도 하듯 정영진은 식상하고 획일화된 사람들의 생각에 딴지를 건다.
책은 세파트로 되어 있는데 각각 모순, 가식, 소신의 명제를 가지고 있다. 명제는 각기 다르지만 뻔한 생각이 아닌 삐딱한 생각이라는 주제의식은 같다. 행복, 죽음 같은 철학적 문제에서부터 치킨 값, 통신 요금, 먹방, 개식용 등의 최근의 사회·문화적 이슈 그리고 정치, 성, 세대론, 계급 등 민감한 주제에까지 과감히 문제제기를 하고 소신있는 발언을 이어간다. 일단 책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이 상당히 민감하고 의견이 찬반 양극단으로 나뉘는 논쟁적인 이슈들이라서 그 자체로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관련된 주제들로 설전이 자주 오가는 걸 볼 수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주장들이 정제되지 않고 불필요한 곁가지와 비방이 많아서 그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데 귿지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런데 책을 통해 잘 정리된 그리고 커뮤에서 흔히 보는 뻔한 내용이 아닌 색다르고 독특한 의견을 듣다보면 찬반 어떤 입장이건 간에 자신의 생각의 폭을 확장하는데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을 읽을 때 정영진과 같은 입장이건 반대의 입장이건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중심에 놓고 정영진의 주장과 비교하며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책을 통틀어 가장 공감하며 마음에 와닿았던 주제는 "세상 한심한 단어 공감 능력"이었다. 공감 능력이라는 게 세상 한심한 말이라는 것에 공감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이건 평소에 나 역시 정말 늘 생각하던 의견이었기 때문에 아무튼 그랬다. 요즘은 어딜 가나 공감 타령을 하고 공감을 요구하고 강요하고, 자기 말에 조금이라도 반박하면 소시오패스 취급까지 받는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공감능력이란 사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 편을 들어라는 것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책에는 그것을 공감 능력이 아니라 "편들기 능력"이라고 명명하고 있고 이것은 사춘기 이전의 공감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갑질하는 사람들은 이 편들기 능력에 길들여진 사람일 거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몇가지 상황을 더 제시하면서 이 공감 능력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하는데 평소 똑같이 공감 능력을 강요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이렇게 논리적이고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하도록 체계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답답해했었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니 속이 뻥 뚫린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주장도 굉장히 흥미롭다. 가령 약자가 착한 사람이라는 오해라거나 성 상품화가 잘못이라거나 잘못된 경어 문화 같은 것을 꼬집는 파트들은 분명 의견은 갈리겠지만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보통 다수의 의견에 편승하면 속편하다. 소수의 입장에 섰을 경우 다수의 힐난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많은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생각하는 대신 그냥 쉽게 다수의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 자기 생각이 없거나 자기도 다수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스스로 믿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 그러하니까 그냥 그것을 따르는 것과 자신의 생각이 정말 그렇기 때문에 그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많은 경우 다수의 의견을 거스르지 못하고 기존의 틀에 박힌 뻔한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며 살아간다. 여기에 반박을 하고 감히 불만을 가진다는 것은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불편한 질문이 던져졌을 때에만 비로서 자신의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진짜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남의 시선이나 권위에서 벗어나서 주도권을 쥐는 삶을 살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의외로 글의 수위가 쎈 편이다. 가령 성이나 젠더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반대편에 있는 소위 페미들의 주장을 가져와서 그것을 통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까는 식이다. 꼭 어떤 특정인의 발언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고 그 집단이나 세력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하는 표어나 문구들을 인용하는데 그걸 반박하면서 하는 말들이 단세포적이라거나 한심함을 넘어 절망을 느낀다거나 하는 식으로 꽤 수위가 높다면 높다. 그리고 먹방에 미쳤다거나 기념할 것도 더럽게 없다는 둥 제목도 약간 공격적인 것들이 보이지만 사실 자극적인 문구와는 달리 전체적인 내용은 차분하고 이성적이다. 그러니까 프로 불편러의 대책없는 전방위 모두까기나 억까가 아니라 나름의 주장을 가지고 불편을 질문을 던지며 기존의 의견에 반박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있게 전개해나가는 때로는 인문학적이고 때로는 철학적인 정영진의 생각을 모아두었다고 하겠다. 이렇게 다양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정영진의 사고와 철학의 깊이에 감동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너무 획일화되고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대중의 생각과 다르면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가지려는 거냐고 설교하고 비판하고 따돌리려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똑같은 것을 똑같이 보고 똑같이 느끼도록 강요당하며 거기서 벗어나는 생각을 하는 것을 차단당한다. 그래서 나처럼 반골기질이 있는 사람은 정영진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각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주장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물론 단순히 삐딱하게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그런 결과를 도출해가기 까지의 이성적인 판단이 뒤따르고,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냉소적인 시선, 획일화된 사고에 와사바리 거는 의견 같은 걸 너무 좋아하지만 그 생각을 체계적이고 설득력있게 정리해서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 하던 그 삐딱한 생각을 잘 정리해서 대신 말을 해주니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 아주 시원하고 큰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이유로 책을 읽는 시간이 상당히 즐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