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광고 카피 도감
오하림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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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카피는 상품이나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짧고 인상적으로 전달하는 홍보 문구다. 아무리 구구절절 제품에 대해 설명해도 사람들은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지만, 광고 카피는 짧은 문장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각인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그리고 보통 이런 광고 카피에는 상품의 기능이나 이미지, 브랜드가 추구하는 콘셉트가 비교적 분명하게 담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침대는 과학입니다” "국물이 끝내줘요” 같은 소위 잘 만든 한국의 광고 카피만 보더라도, 그 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강조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건 한국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전 세계 광고의 공통점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카피에서 강조되는 것은 대개 상품과 브랜드 자체다. 하지만 일본의 광고 카피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제품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도 스토리와 감정의 맥락을 통해 그것을 전달한다. 직접 설명하는 대신 전혀 다른 말과 장면을 제시함으로써, 그 제품이나 브랜드를 간접적으로 연상시키는 방식이다.


[일본 광고 카피 도감]은 멋짐이 담긴 일본의 광고 카피 70가지를 소개하는 책이다. 광고 카피를 보여주고 그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기본 정보와 해당 카피가 나오게 된 배경, 그리고 카피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 속에 담긴 함의를 풀어낸다. 여기에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도 덧붙여져 있는데, 사실 이런 배경 설명을 보지 않더라도 카피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앞서 말했듯 일본의 광고 카피에는 정서를 움직이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한마디로 철학적이고 서정적인 문장이 많아, 짧은 한 줄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점이 많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서 해당 카피의 배경까지 읽고 나면 생각할 거리가 한층 더 풍성해진다. 막연히 의미를 짐작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배경 설명을 통해 이 카피에는 이런 철학이 담겨 있구나, 혹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 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문구가 더 깊이 다가오고 가슴속에 스며든다.


전반적으로 꽤 멋진 글들이라서 순수하게 감탄하게 되는 카피도 있고, 제법 감동적인 것들도 있다. 이런 말이 호들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려서 그런지 꽤 인상 깊게 느껴진다. 일단 어떤 홍보를 위한 카피인지를 의식적으로 보지 않고, 우선은 카피 그 자체만 놓고 문장 자체를 즐겼다. 그런 다음 무엇에 관한 카피인지 확인하고, 다시 그 문구를 대입해 메시지를 읽어내면 전혀 다르게 읽히는 재미가 있다. 그냥 읽을 때는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갈 수 있는 문장도, 광고 제목이 더해지는 순간 미싱 링크가 맞춰지듯 하나의 원이 완성되는 느낌이 들고, 그때 느껴지는 쾌감이 꽤 짜릿하다. 한때 유행했던 하상욱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인데 이건 좀더 고오급스런 버전이라 하겠다. 가령 "별이 되어도, 달을 걷고 있을 거야"라는 문구만 보면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없는데, 이것이 마이클 잭슨 유품 전시회 광고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정도면 그냥 미친거다. 또다시 호들갑처럼 들리겠지만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이처럼 멋진 문구가 또 있을까?


이 책은 광고나 홍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흔히 말하는 영감, 인스피레이션을 줄 만하다. 단선적이고 직접적인 홍보는 제품이나 브랜드를 알리는 데는 분명 효과적이지만, 이런 감성 광고는 이야기를 통해 감정에 먼저 닿고, 그 결과 소비자를 설득한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광고는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브랜드를 한층 가깝게 느끼게 만든다. 잘은 모르지만, 감동적인 카피를 접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 브랜드 자체를 다시 보게 되는 효과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에 실린 카피들을 쭉 읽다 보면 어떤 경향성이나, 잘된 카피가 갖는 공통된 특징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광고나 홍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또 광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나처럼 일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꽤 유용하다. 광고 카피라는 특성상 문장이 길지 않고, 대부분 하나의 의미로 깔끔하게 완결되어 있어 읽고 익히기 부담이 없다. 게다가 다양한 분야와 주제를 다루고 있어 자연스럽게 폭넓은 어휘와 표현을 접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실제로 쓰이는 말들로 구성되어 있어 교과서적인 일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표현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멋진 문구들은 기억해 두면 언젠가는 꼭 한 번쯤 쓰이게 된다. 대화 중이든, 커뮤니티에서 글을 쓸 때든 그 문장 자체이거나, 혹은 그것을 살짝 변형한 표현을 사용할 순간이 분명히 온다. 그럴 때 이런 문장을 자연스럽게 섞어 쓰면 말이나 글이 한층 있어 보이고, 센스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차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이런 카피들을 참고해 응용하는 창조적 우라까이가 꼭 나쁜 일만은 아니고, 오히려 표현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이런 문장들을 곱씹다 보면 그 안에 담긴 메시지나 의미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 자체가 생각의 깊이를 조금은 더 깊게 만들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 카피가 주는 감각적인 울림과 철학적인 여운, 그리고 짧지만 깊이 남는 감동은 길게 쓰인 철학책 못지않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래서 이 책은 광고나 홍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가볍게 읽으면서도 깊은 사유와 여운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도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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