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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미식 생활
이다 치아키 지음, 장하린 옮김 / 이아소 / 2026년 1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인스타그램의 책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자신이 먹고 마시며 보낸 일상의 순간들을 일러스트로 기록하는 컨셉으로 마치 사람들이 자신이 먹은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듯 저자는 그 장면들을 일러스트로 그려 한 페이지씩 책에 담아 놓은 것이다. 다만 이 책은 단순한 SNS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보다 훨씬 넓은 지면을 활용할 수 있고, 사진이 아니라 머릿속 이미지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가 마치 자랑하듯 먹거리 그 자체를 결과물로 올려놓았다면 여기서는 일상의 미식 경험이 단순한 자랑이나 기록을 넘어, 하나의 이야기와 흐름을 가진 서사로 확장된다. 단순히 자기가 먹은 먹거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먹거리를 둘러싼 자신의 일상과 기분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고 그 일상을 공유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인스타그램과 닮아 있으면서도, 그보다 더 스토리 있고 알찬 구성으로 읽히는 미식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약간 인스타 확장판의 느낌이다.
작가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그림체로 인기있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집이나 생활 잡화, 소녀 같은 것들을 자주 그리는데, 딱 보면 이 작가 그림이라는 게 바로 느껴질 정도로 스타일이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가의 '집이 좋은 사람'이란 책도 가지고 있는데 그림체가 이쁘고 소녀 감성이라 보고 있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특별히 뭔가 대단한 내용이 없어도 그냥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좀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색감도 전반적으로 파스텔톤 위주라서 자극적이지 않고, 눈이 편하고, 오래 보고 있어도 부담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림 자체는 꽤 정교하고 현실적인 편이라서, 너무 동화 같거나 과장된 느낌은 또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현실이 갑자기 일러스트처럼 포근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마음이 좀 느슨해진다. 그래서 힐링계라고 생각하는 건데 아무튼 이런 편안한 그림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느긋하고 별일 소소한 일상이라는 컨셉이랑 잘 맞는 것 같다. 만약 이걸 사진으로 전부 찍어놓았다거나, 다른 그림체의 이미지로 꾸며놓았다면 지금처럼 소소한 일상을 편하게 즐긴다는 느낌은 없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심플하다. 매일 먹고 마시는 일상다반사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작가의 일상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책으로, 일상 속 미식생활에서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을 찾는 컨셉에 가깝다. 하루 세 끼 식사뿐 아니라 차나 커피, 디저트와 간식, 그리고 먹거리를 담는 컵과 접시까지도 모두 미식생활의 일부로 다룬다. 흔히 말하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예쁜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는 보여주기식 미식이 아니라, 평일 낮 동네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혼자 밥을 먹고, 일을 끝낸 뒤 남편과 하이볼을 마시며 안주를 고민하고,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어 먹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커피를 내려 조용히 티타임을 갖거나, 도자기 공방에서 직접 접시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동네 직판장에서 누군가가 키운 야채를 사고, 백화점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비싼 차잎을 고르기도 한다. 이렇게 미식생활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하루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며 취미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도 이어진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하고 싶을 때만 요리하고, 가족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취향대로 메뉴를 고르고, 마음에 드는 식기로 식탁을 꾸미는 모습은 가만 보면 요즘 여자들이 바라는 전형적인 인스타용 삶과도 겹쳐 보인다.
책은 상당히 얇은 편이다. 게다가 일러스트북 형식이라 텍스트의 비중도 크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굉장히 빨리 읽힌다. 이런 점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면 내용이 조금 부실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보통 에세이 책은 여기저기 읽을거리도 많고 곱씹을 부분도 있는데, 이 책은 에피소드 수 자체도 적고 글도 많지 않다 보니 다 읽고 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남는다. 표현하자면 팔도비빔면 하나 끓여 먹은 것처럼 어딘가 모자란 기분에 가깝다. 물론 그림을 보는 재미는 충분하다. 그림 하나하나가 예쁘고 보는 맛이 있어서, 글이 적다는 아쉬움을 어느 정도는 채워준다. 하지만 이왕이면 책의 분량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페이지가 더 많았다면 작가의 그림도, 이야기도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또 처음에는 이 책에 간단한 레시피 같은 내용도 들어 있을 거라고 혼자서 기대를 했었다. 작가가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이나 디저트의 레시피를 일러스트로 풀어 놓았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애초에 이 책은 레시피북이 아닌 에세이집이었으니 없는 내용을 기대한 쪽이 잘못이긴 하지만, 만약 레시피까지 함께 담겨 있었다면 작가의 미식생활을 따라 해 보면서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