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랑을 위한 산책 - 헤르만 헤세가 걷고 보고 사랑했던 세계의 조각들
헤르만 헤세 지음, 김원형 옮김 / 지콜론북 / 2025년 4월
평점 :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글의 주제와 장르는 그 글의 수준을 결정한다.
책에서부터 교훈을 얻었다는 주제를 지닌 중고교 시절 독후감은 아무리 잘 써도 인상적인 내용과 그에 대한 생각을 쓴 감상문 수준을 넘을 수 없고,
때때로 쓰게 되는 기행문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에 남는 풍경과 그에 대한 찬사를 나열한 일기 수준을 넘을 수 없다.
이는 대개의 경우, 필자의 나이와 상관 없고, 글쓰기 역량과도 관계 없다.
아무리 필력이 좋은 베스트셀러 작가여도 독후감은 그저 평범한 독자의 글이 되고, 기행문은 여행과 감상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헤르만 헤세 정도가 되면 그런 제약쯤은 보기 좋게 무위로 돌린다.
우선 책 전체에서 품어져 나오는 사색과 성찰이 독자를 압도한다.
단지 농가를 거닐고, 산길을 산책하며, 마을과 도시를 유람하는 것이지만,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약속을 발견하고, 내면과 세상의 불화를 화해시키며, 오래된 기억과 불확실한 기대를 동시에 바라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만이 독점하는 빼어난 자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에게만 빼곡히 밀도 있는 시간이 허락 되는 것도 아니다.
그 비밀 중 하나는 세속적인 것들 속에서 항상 신성한 것들을 향해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입으로만이 아니라, 영혼으로 눈으로 온몸의 피부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미소는 이 세속의 세계로부터 올라오는 신성한 향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더 연약하고, 더 고요하고, 더 깊숙하고, 더 관대하고, 더 고양된 감각을 그에게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