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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해적
시모다 마사카츠 지음, 봉봉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5년 9월
평점 :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점은 아이들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다소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독자로 삼는 경우, 작가는 본의 아니게 엄격한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된다.
예컨대, 이런 이야기도 괜찮을까, 이 부분은 너무 정도가 심한 것은 아닌가, 교육상 영향에 대해 비판을 받지 않을까, 너무 어둡고 음침한 것은 아닌가 등등.
따라서 대부분들의 그림책은 자기만의 개성을 잃어버리거나, 너무 안전지향적인 문안한 이야기로 전락하거나,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교과서 같은 책이 되거나, 한없이 밝기만 하고 세상의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측면은 모두 제거된 비현실적인 스토리가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과감하게 단조 음악 같은, 어둡지만 깊이 있는 줄거리를 엮어 나가고, 괴기함과 상상력 사이의 절묘한 중간 지점에서 긴장감 있게 줄타기 하며, 다른 그림책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와 죽음이라는 주제까지 다룬다.
끝이 없는 것 같이 계속 침잠하는 해적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심해라는 미지의 세계가 독자로 하여금 잠시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유도한다.
아울러 바닷속에서 만나는 여러 캐릭터들은 광대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상징을 품고 있고, 짙고 암흑적인 색채의 위트와 개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반복되는 패턴이 있지만 흥미롭게 변주되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어, 반복성과 의외성을 동시에 좋아하는 아이들이 아주 좋아할 만하다.
그리고 이런 여러 장점들이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강점은 이야기에 녹아져 있는 주제이다.
한없이 침잠해가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가는 주인공 해적은 점점 비로소 세상을 관조하게 되고, 자신의 본질만 남게 되는 최종 단계에서는 아이들 독자들로 하여금, 존재와 사라짐, 세상과 자아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안내한다.